# 패션, 유통, 레저 사업을 하는 이랜드 그룹의 지주회사 격인 이랜드월드가 연말마다 송년회 단체 공연에 직원 수백명을 동원해 고용노동부가 특별근로감독에 들어갔다.
송년회 공연 때문에 직원들은 업무 시간에 춤 연습을 하고 밀린 업무를 처리하려 야근을 해야 했다. 또 그룹 회장이 매장을 방문한다고 하면 이틀 동안 밤새 매장 정리를 하고 옷을 다시 꺼내 다림질까지 해야 했다.
고용부가 직장 내 괴롭힘 의혹으로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기업에 대해 특별근로감독에 나선 건 벌써 올해만 다섯번째 입니다.
올 초 지난 30대 직원이 상사로부터 수없이 모욕적인 말을 듣는 등 직장 내 괴롭힘을 주장하며 스스로 목숨을 끊어 전북 장수군 농협을 대상으로 특별근로감독을 실시한 것이 시작이었습니다.
이후 5월엔 창업주가 자격증을 두 개 이상 취득하라는 지시를 이행하지 못한 직원들에게 폭언을 남발하고, 그도 모자라 '엎드려뻗쳐'를 시킨 후 몽둥이로 폭행을 한 인력파견업체 '더케이텍'이 특별근로감독을 받았습니다.
이어 9월엔 "뚱뚱하면 여자로서 매력이 없다"는 등 성희롱이 만연했던 반도체 패키지기판 테스트 전문업체인 '테스트테크', 동료 직원을 신발로 때리고 사표까지 강요하며 직장 갑질 괴롭힘 의혹이 제기된 순창 순정축협에 대해 연이어 감독이 이뤄졌고요.
이처럼 괴롭힘, 차별, 성희롱 등 직장내 고충은 많아지고 다양해지고 있습니다.
지난달 중앙노동위원회가 처음으로 일반인과 중노위원·조사관을 상대로 진행한 설문조사 결과를 통해 직장내 고충 실태를 낱낱히 파헤쳐봅니다.
● 여성, 3·40대, 평사원…"직장 내 고충 관심 많아요"
이번 설문조사엔 약 1천여명의 일반인이 참여했는데, 성별로는 남성 46.6%, 여성 53.4%이었습니다.
연령대별로는 30대 이하가 40.2%로 가장 많았고 50대 24.6%, 40대 20.9%, 60대 이상 14.2% 순이었습니다.
직위별로는 평사원 직장인 51.8%로 절반 이상을 차지했고 관리자급 직장인 23.9%, 사업주 11.5%였습니다.
즉, 여성과 3·40대 및 평사원급 직장인이 괴롭힘 등 직장내 고충에 관심이 많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직장 내 고충 관련 사건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중노위원과 조사관에겐 직장내 고충이 많아지고 다양해진 원인에 대해 물었는데요.
'근로자 권리 의식 향상'(45.7%%)과 '일에 대한 가치관 변화'(37.5%%)가 주요 원인으로 꼽혔는데, 최근 MZ세대의 직장 진입으로 일과 삶을 분리하는 경향이 반영된 것으로 풀이됩니다.
● 따돌림 등 괴롭힘이 가장 '골치'…자체해결은 어려워
직장 내부에서 가장 해결이 어려운 고충은 '따돌림 등 괴롭힘'이었습니다.
일반인과 위원·조사관 모두 10명 중 4명 이상이 따돌림 등 괴롭힘을 선택했습니다.
또 차별적 처우(일반인 32.6%, 위원·조사관 40.4%)도 좀처럼 풀기 힘든 애로사항으로 꼽혔는데요.
다만 노사위원과 평사원 직장인은 다른 직위와 달리 차별적 처우(37.9%)가 따돌림 등 괴롭힘(35.7%)보다 더 해결하기 어렵다고 답했습니다.
이렇듯 직장생활의 고충은 많아졌지만 직장 내에서 자체적으로 해결되는 비율은 매우 낮았습니다.
일반인을 대상으로 '근무하고 있는 직장에 고충의 신고나 처리 결과통보에 대한 제도가 있는지'에 대해 물어보니, 2명 중 1명은 '있다'고 답했지만, 직장 내 고충이 회나 내부 제도를 통해 잘 처리되고 있는지’에 대해선 응답자 5명 중 1명(19%)만이 동의했습니다.
결국 직장생활의 고충이 내부 고충처리제도를 통해 잘 해결된다고 응답한 비율은 약 10%에 불과해, 부정적 평가가 대부분(90%)이었습니다.
고충처리제도가 잘 운영되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으로는 ‘공정한 고충 처리 과정'이 우선적으로 꼽혔습니다.
이와 함께 고충신고에 대한 부정적 인식 개선과 고충처리 담당자의 전문성, 신속한 고충 해결도 도움이 될 것이라는 응답도 많았습니다.
이처럼 내부 고충처리제도가 제대로 작동되지 못하면서 민간 전문가의 도움이 절실하다는 목소리도 높은 것으로 나타났는데요.
일반인들은 민간 전문가가 직장 내 고충 해결에 나설 경우 '공정한 조정을 통해 합리적인 합의안을 마련하는 데 지원(44%)'해줘야 한다는 요구가 가장 많았습니다 .
또 민간 전문가는 고충 해결 방안을 최종 결정하는 중재자 역할이나 당사자의 직접 의사소통을 돕는 가교 역할을 담당했으면 하는 바람도 많았습니다.
● '일방통행식' 선을 넘는 행위가 '직장 내 괴롭힘'
이번 설문조사 결과가 실린 '노동분쟁해결 가이드북 조정과 심판 겨울호'엔 직장 내 괴롭힘 대응법도 담겨 눈길을 끌었는데요.
조영식 인천지방노동위원회 조사관은 업무상 적정 선을 넘는 행위가 '직장 내 괴롭힘'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직장 상사는 업무상 지시를 할 수 있는 경계가 있고, 이 경계를 넘어서면 위계를 이용한 폭력이 될 수 있다는 겁니다.
직장 내 괴롭힘은 상사만 하는 건 아닌데요. 하급자라 하더라도 관계에 있어 우위를 점하고 있고 하급자로서의 경계를 넘어서게 되면 괴롭힘에 해당됩니다.
지난해 12월 노동위원회가 그룹원 19명(다수의 하급자)이 그룹장(상급자)을 대상으로 한 사임 요구 피케팅, 현수막 거치, 홍보물 배포, 연판장 작성 등의 행
위는 업무상 적정 범위를 벗어난 것으로 직장 내 괴롭힘에 해당한다고 판정한 사례도 있고요.
이러한 직장 내 괴롭힘의 원인이 되는 선을 넘는 행위를 하지 않으려면 '일방통행'식 태도를 지양해야 한다고 조 조사관은 조언했습니다.
상급자는 행동하기 전에 상대방의 수용 범위, 즉 '적정한 선'을 먼저 파악하는 게 순서이고, 그렇다 하더라도 일방적으로 하지 말고 상대방 입장을 고려해 업무지시를 내릴 줄 아는 태도가 필요하다는 겁니다.
하급자 역시 자신의 경계가 어디까지인지를 분명히 신호로 보낼 수 있어야 하고, 자신의 경계를 침범당했을 때는 상대방이 알아들을 수 있도록 불편함을 표현하는 게 현명하다고 했는데요.
이때 불편함을 전달하되 직설화법 대신 상대 입장을 고려해 감정적 표현은 자제하고, 당시의 상황과 자신의 감정을 사실대로 전달할 수 있게 말해야 한다고 조언했습니다. 돌려서 말하다 보면 오히려 오해를 키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