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엘리제궁에서 열린 유대교 의식에 참석해 도마 위에 올랐다.
8일(현지시간) 영국 BBC 방송과 미 정치 매체 폴리티코 등에 따르면 마크롱 대통령은 지난 7일 엘리제궁에서 열린 행사에서 유럽 랍비(유대교 율법 교사) 총회로부터 반유대주의에 맞서 싸운 유럽 지도자에게 수여되는 상을 받았다.
이날 행사 중 프랑스 수석 랍비인 하임 코르시아가 단상 앞에 나와 유대교 명절인 '하누카'를 기념하는 촛불을 밝히는 의식을 진행했다. 이날은 8일간 지속되는 하누카의 첫날로, 이 기간동안 유대인들은 유대교 의식에 쓰이는 촛대인 '메노라'에 차례로 불을 붙인다.
코르사이 랍비가 촛불에 불을 붙이는 동안 마크롱 대통령은 옆에서 이를 지켜봤다.
이 영상이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공개되자 프랑스 정치인과 국민 사이에서는 마크롱 대통령이 프랑스의 오랜 정교분리(세속주의) 원칙을 어겼다는 비판이 나왔다.
중세 시대 종교 전쟁과 신·구교 갈등 등 오랜 종교 갈등의 역사가 있는 프랑스는 1905년 정치와 종교의 엄격한 분리를 규정한 세속주의 원칙을 법에 명시했다. 이는 현대 프랑스의 핵심 정체성 중 하나로 여겨진다.
프랑스 대통령 공식 관저인 엘리제궁에서 대통령이 참석한 채로 유대교 기념 의식이 진행된 것을 두고 이 같은 세속주의 원칙을 어긴 것이라는 비판이 진보와 보수 진영을 가리지 않고 이어지고 있다.
대표적인 보수 인사인 다비드 리나드 칸 시장은 "내가 아는 한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은 처음"이라며 "이는 세속주의의 위반"이라고 비판했다.
마크롱과 같은 여당 르네상스 소속 피에르 앙리에트 하원의원도 "종교적 선호에 대한 이 시도를 강하게 비판한다"며 "이 행동으로 마크롱은 국가의 중립을 보증해야 하는 자신의 역할을 깨트렸다"고 말했다.
좌파 진영을 대표하는 프랑스 사회당(PS) 소속의 캐럴 델가 의원은 "엘리제궁은 종교적인 장소가 아니다. 세속주의 원칙과 타협해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프랑스 내 유대인 단체에서도 과한 처사였다는 비판이 나왔다.
하지만 마크롱 대통령은 자신의 행동을 "전혀 후회하지 않는다"며 세속주의 위반이 아니라는 입장을 밝혔다.
마크롱 대통령은 이튿날 노트르담 성당 보수 공사 현장을 방문한 자리에서 전날 수석 랍비에게 초를 붙이도록 한 것은 "공화국과 화합의 정신" 속에서 이뤄진 행동이라며 "만약 대통령이 직접 종교적 행위를 하거나 기념식에 참석했다면 세속주의 위반이 되겠지만, 이 경우는 그런 것이 아니"라고 말했다.
앞서 마크롱 대통령은 지난 10월 하마스의 이스라엘 침공을 두고 외교적으로 일관되지 않은 입장을 보였다가 유대교와 이슬람 사회 양측 모두로부터 비난을 사기도 했다고 BBC 방송은 전했다.
(사진=엑스(X) 계정 캡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