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틀러 생가를 경찰서로? "네오나치 몰릴라"

입력 2023-11-20 15:43


오스트리아의 마을 브라우나우암인(Braunau am Inn)에 위치한 히틀러 생가를 정부가 경찰서로 바꾸기로 해 논란이 일고 있다고 19일 뉴욕타임스(NYT)가 보도했다.

아돌프 히틀러는 1889년 오스트리아 북부 오버외스터라이히주에 위치한 이 건물 맨 위층 셋집에서 태어났다. 이후 몇 년 지나지 않아 가족 전체가 독일로 이사 가면서 그가 실제로 이 지역에 머문 기간은 얼마 되지 않는다. 그러나 나치 집권 후 히틀러가 태어난 건물은 일종의 '성지'이자 관광지로 변모했다.

2차 대전에서 나치가 패퇴하자 건물은 원래 주인에게 되돌아갔다. 2011년까지 정부가 임대해 장애인 단체로 사용하다가 단체가 나간 후 정부가 2017년 건물을 강제 매입할 수 있는 법안을 만들어 소유권을 가져왔다. 오스트리아 정부는 이 건물을 81만2천유로(약 11억원)를 들여 매입 후 활용 방안을 고심해왔다.

정부는 '아돌프 히틀러 생가의 역사적으로 올바른 처리를 위한 위원회'까지 만들어 건물을 철거하거나 박물관, 연구소 등을 세우는 방안을 수년간 논의한 끝에 2019년 이 집을 경찰서로 전환하겠다고 밝혔다. 위원회는 건물 철거에 반대하며 "오스트리아는 이 장소가 지닌 역사를 부인해서는 안된다"고 주장했다.

단, 박물관 등 역사적 의미를 띤 장소가 될 경우 계속 히틀러를 연상시킬 수 있다며 "건물이 지닌 인지도와 상징적 힘을 없애기 위한 충분한 건축적인 재설계"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이에 정부는 히틀러 생가를 지역 경찰서로 바꾸고 그 뒤에 건물 두 채를 새로 지어 경찰관을 위한 인권 교육장으로 활용하겠다고 밝혔다.

공사는 지난 달부터 시작된 상태지만 마을 주민들은 이 장소의 역사적 의미를 지우는 결정이라며 비판하고 있다고 NYT가 전했다.

지역 역사 교사인 아네테 포머(32)는 NYT에 자신과 마을 주민 다수는 해당 건물이 나치의 탄생과 활동에 오스트리아가 어떻게 가담해 어떤 역할을 했는지를 탐구할 수 있는 박물관이나 전시 공간이 되길 바랬다고 말했다. 그는 "이 장소는 어떻게 히틀러라는 사람이 만들어질 수 있었는지에 관한 공간이 됐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오스트리아 정부는 1972년 민간 소유였던 이 건물이 네오나치 추종자들의 근거지로 악용되는 것을 막기 위해 이 건물을 직접 주인으로부터 임대해 1977년부터 2011년까지 장애인 복지 시설로 사용했다.

지역 역사가인 플로리안 코탄코는 NYT에 많은 주민들이 건물이 다시 장애인 복지에 쓰이는 것을 원한다면서, 그것이 장애인을 박해했던 히틀러의 뜻에 반하는 일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히틀러 생가는) 아무도 원치 않는 유산이지만, 우리가 마주하고 대처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경찰서로 바꾸면 히틀러와 네오나치 추종자들이 인근에서 불법 행위를 하다가 체포돼서 경찰서 안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길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현재 히틀러 생가 앞에는 1989년 브라우나우암인 시장이 설치한 "평화, 자유, 민주주의를 위해. 파시즘이 다시 도래하지 않도록. 수백만 명의 죽음은 그 경고"라는 문구의 비석이 세워져 있다. 그러나 히틀러의 생일 등에는 네오나치 추종자들이 찾아와 초나 화환을 가져다 놓기도 한다고 NYT는 전했다.

(사진=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