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속과제 삭감 우려에…연구비 안 쓰고 저축할 판

입력 2023-11-13 06:25


최근 과학기술계 연구자들 사이에 '올해 연구비 쓰지 않고 모아두기'가 유행한다고 한다.

내년 연구개발(R&D) 예산이 줄면서 이미 진행 중인 계속과제도 삭감이 될 거란 우려가 커지자 연구비가 얼마나 줄지 모르는 연구자들이 울며 겨자 먹기로 내년으로 이월이 가능한 계속과제 예산을 쓰지 않고 일단 저축하는 것이다.

이런 어려움에 직면한 연구자들이 합심해 국회에 R&D 삭감 반대 목소리를 냈다.

13일 기초연구연합회는 교수와 대학원생 등 5천563명의 소속과 직함을 담은 서명인 명부와 성명서를 최근 김진표 국회의장과 국민의힘 과학기술특별위원회 부위원장인 김영식 의원 등에 전달했다. 서명은 연합회가 9월 19일 발표한 '기초연구사업 예산 삭감 철회를 위한 성명서' 동의자를 대상으로 이뤄졌다.

이들은 특히 기초연구 계속과제 삭감 폭이 약 25%로 알려졌다며 이럴 경우 계속과제를 수행하는 2만여 연구책임자들이 연구에 차질을 빚게 된다고 우려했다.

이 경우 연구비에 연동된 인건비가 줄며 실험실 인원을 내보내야 한다는 게 이들의 설명이다.

오경수 중앙대 약대 교수는 연합뉴스와 통화에서 "과제 예산이 삭감되면 여기에 연동된 인건비도 줄어드는 만큼 현장에서는 사람을 줄일 수밖에 없다"며 "연구자 입장에서는 어떻게든 이 사람들이 안 나갈 수 있도록 돈을 모아 버텨보자는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가 국가 R&D 과제 인건비를 연구책임자별로 통합 관리하는 풀링제 확대를 대안으로 제시했지만 이것이 오히려 현장의 연구 위축을 부추긴다는 비판도 나온다.

오 교수는 "나중에 예산이 줄면 그 사람들에게 돈을 줄 수 있게끔 돈을 연구비에 쓰지 못하고 일단 풀링제에 미리 넣어두는 것"이라며 "현장이 연구가 제대로 진행되지 못하는 상황에 대한 불안감에 휩싸여 있다"고 말했다.

정부가 국립대나 과학기술원은 기관적립금 용도를 인건비로 전용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지만, 사립대는 여기에도 해당하지 않는 상황이라고 그는 덧붙였다.

이날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에서 열리는 예산결산심사소위원회에는 조성경 과학기술정보통신부 1차관과 주영창 과기혁신본부장이 참여하는 가운데 기초연구 관련 일부 예산을 증액하는 논의가 진행될 것으로 알려졌다.

오 교수는 "나라가 어렵다고 해도 지금의 삭감 폭은 현장 연구자가 받아들일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라며 "연구자 한두 명이 빠져야 하는 수준이라면 너무 큰 영향을 미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