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배신 당했던 CEO…다이먼은 어떻게 황제가 되었나 [바이 아메리카]

입력 2023-10-29 08:00


'황제', '제왕'이라 부르지만 그는 한때 실패한 사람이었습니다. 마흔 셋의 나이에 자신을 키워준 은사에게서 배신을 당해 월가 최정점의 자리에서 쫒겨나고, 뉴욕 강변에서 복싱을 배우며 품 속의 칼을 갈았던 인물이죠.

그런 그는 미국의 대형 은행위기(리먼사태, SVB파산)마다 나타나 금융시스템을 지켜낸 인수합병의 지휘자로 현대 금융사에서 없어선 안 될 인물이 됩니다. "기준금리 7% 시대가 온다", "스태그플레이션을 동반한 최악의 시나리오가 올 수 있다"며 미래를 내다보는 듯한 발언은 하나하나 전 세계 정부와 금융기관, 투자자들이 귀 담아 듣습니다.

바로 올해 3분기 현재 총 자산 3조 8천억 달러의 금융 제국을 20년 가까이 이끌고 있는 수장이자 '킹 오브 월스트리트', 월가의 제왕으로도 불리는 제이미 다이먼 JP모건 & 체이스 회장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언제부터, 왜 그를 월가 황제라고 부르게 되었을까요? 왜 거대한 미국 금융 회사들 가운데 JP모건만 정부의 특별 대우를 받는 것처럼 보일까요?



제이미 다이먼이 '황제'라 불리는 건 우선 그의 절대적인 영향력, 마치 초대 모건 하우스를 이끌며 미국 정부를 구해내던 원조 황제, 존 피어몬트 모건을 연상시키는 위치에 있기 때문입니다.

다이먼은 본래 그리스인 할아버지가 뉴욕에 정착해 자리잡은 이민자 3세 출신인데, 집안이 모두 뉴욕 시어슨의 증권 브로커로 자본시장에 일찌감치 터를 닦아둔 상태였습니다.

그 덕분인지 다이먼의 아버지와 가깝던 샌디 웨일과 인연이 닿게 되죠. 바로 거침없는 구조조정과 인수합병으로 유명한 월가 거물이자, 27살에 시어슨을 창업하고, 1981년 당시 10억 달러에 아멕스에 회사를 넘긴 돈으로 훗날 시티그룹까지 만든 샌디 웨일 회장입니다.



올해 나이 90세, 샌디 웨일은 유태인 가문 출신으로 아멕스 산하 증권담당일 당시에 회계와 법률에 탁월한 다이먼을 발견하고서 멘토와 멘티, 아버지와 아들처럼 15년 넘게 지내게 됩니다.

다이먼은 웨일이 아멕스를 떠날 때 함께 퇴사하고서 따라나와 끈끈함을 보여주기도 했죠. 이후 두 사람은 대형 증권,보험사였던 트레블러스 그룹과 시티그룹의 합병을 함께 하고, 다이먼은 계열사인 살로먼스미스바니를 이끌며 최연소 월가 경영자로 이름을 날리게 되죠.



하지만 가장 빛날 그때, 다이먼은 씨티그룹에서 쫒겨납니다. 샌디 웨일의 딸 제시카 비블리오비치(Jessica Bibliowicz)가 마침 다이먼 아래에 있었는데, 승진 문제를 두고 웨일과 갈등이 벌어지고 팀원마저 모조리 뺏기는 일이 벌어집니다.

인생에서 가장 극적인 순간, 다이먼은 월가를 떠나지 않고 1년을 절치 부심합니다. 복싱을 배우고, 과거 위인들의 실패사를 찾아 읽고 '타도 시티'를 외치며 월가 복귀를 계획하게 되죠.

그리고 마치 출사표를 던지듯, 배신을 한 옛 은사를 초대해 식사자리를 하고선 그만의 드라마를 쓰기 시작합니다.

먼저 부실에 허덕이던 미국 6위이자 시카고 대형은행 뱅크원 경영자 자리를 선택했는데, 무려 7천명을 감원하는 대규모 구조조정으로 흑자 전환하는데 성공하죠.



그러고 다시 기업 가치를 낮춰 3위 은행이던 JP모건에 넘기 과정을 주도하게 됩니다. 불과 인수가격 580억 달러로 자산 1조 1,800억 달러 덩치를 갖춘 JP모건은 당시 1위 씨티은행과 자산 기준 300억 달러 차이까지 따라붙게 되죠.

이때 다이먼은 합병 기업의 수장이면서도 경영프리미엄을 낮춰준 대가로 JP모건 CEO 자리를 약정받은 것이 알려져 많은 이들에게 놀라움을 주기도 합니다. 작정하고 월가에 돌아오겠다는 걸 이미 그려뒀던 겁니다.



그 주변의 인맥과 운도 따라주기도 하죠. 공공연하게 민주당 지지자이면서 정치인과 친분을 쌓아온 제이미 다이먼은 당시에도 막후에서 뉴욕연은 총재였던 티머시 가이트너, 나중에 오바마 초대 재무장관인 이 인물과 친분을 바탕으로 결정적 기회를 얻게 됩니다.

바로 2008년 악성 주택담보대출로 무너져가던 당시의 베어스턴스, 워싱턴뮤추얼, 체이스맨해튼을 헐값에 차례로 사들여 소매금융, 저축은행 예금, 부동산까지 쥔 미국 최대 은행의 자리에 올라서게 되죠. 마치 지금의 지역은행 위기와 판박이 처럼 말입니다.

지난해 벌어진 지역은행 파산 사태 이후 다이먼은 대형은행 최고경영자들을 소집해 중견 은행에 자금을 수혈하는 방식으로 뱅크런을 막았는데, 재닛 옐런 장관의 부탁이었다고 고백하기도 했죠.



이후 JP모건은 위기에 빠진 줄로만 알았던 퍼스트리퍼블릭을 전격 인수합병하는데, 당시 거래로 JP모건은 920억 달러 예금을 그저 얻게 된데다, 올해들어 금리 인상 속에 다른 은행들보다 유난히 높은 현금 보유, 높은 보통주자본비율(CET1)을 지키며 지난 분기에도 깜짝 실적을 썼습니다.

어쩌면 이러한 탁월한 숫자 감각과 샌디 웨일에게서 배운 경영 노하우로 위기 마다 승부수를 던져온 면모가 제이미 다이먼을 황제의 자리에 올려둔 것이 아닐까 싶기도합니다.

JP모건은 올해 3분기까지 순이익만 131억 달러, 이자이익은 5분기 연속 증가하면서 4천100억 달러의 기업가치, 2위 뱅크오브아메리카와 두 배 격차를 지키고 있죠. 그리고 제이미 다이먼이 2005년부터 18년간 이끄는 기간 JP 모건 주가는 약 250% 올라, 그는 20억 달러의 억만 장자의 반열에 올라 있기도 합니다.



월가의 대변자로서 연방 정부도 연방준비제도도 그의 영향을 피해가기 어렵죠. 어쩌면 소매금융, 주식, 부동산 크고 작은 계열사로 전 세계 신경망을 깔아둔 거대 금융회사, 막강한 정치인맥. 이를 바탕으로 "연준이 100% 틀렸다"며 비판할 수 있는 자리,

제이미 다이먼은 이런 경험과 정보를 바탕으로 다음의 위기를 예고하고,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대비하고, 다시 쌓아둔 현금으로 회사를 확장해 나갈 기회를 노려왔습니다.

분기 실적 공개가 한창인 10월 마지막 주, JP모건 주가는 그가 경영자로 올라선 뒤 처음 지분 100만주를 매각하기로 하면서 흔들리고 있습니다.금융계 통치자나 다름없는 역할, 두 번의 금융위기에서 세계 금융시장을 구한 그가 JP모건을 떠나는 일이 정말 가능할까요? 그를 대신해 제왕에 올라설 수 있는 인물이 또 나타날 수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