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교육 업체가 대학수학능력시험 출제·검토 등에 참여한 일부 교사들에게 접근해 돈을 주고 모의고사 문항을 산 사실이 드러났다. 교육당국은 본수능 문제 유출 가능성은 낮다고 판단했지만 일부 교사들의 도덕적 해이가 교육계에 불러일으킬 파문이 클 것으로 보인다.
19일 교육부에 따르면 사교육 업체에 모의고사 문항을 판매하고, 수능·모의평가(한국교육과정평가원 주관) 출제·검토에도 참여한 것으로 드러난 교사는 이제까지 24명이다. 이들은 적게는 모의평가 출제에 1번, 많게는 수능·모의평가 출제에 5, 6회가량 관여한 것으로 파악됐다.
소위 '일타강사'로 불리는 유명 학원강사, 계열사를 다수 거느린 대형 입시학원도 교사들로부터 돈을 주고 문항을 산 것으로 드러났다. 이들은 인맥과 학맥 등을 총동원해 수능·모평 출제 경험이 있는 교사들을 파악했다.
이들은 서울대 등 최상위권 대학 출신으로 국어·영어·수학 등 주요과목을 가르치는 교사들을 학맥을 통해 추려낸 후, 그 중 출제경험이 있는 것으로 알려진 이들에게 접근했다. 이들로부터 출제 경험이 있는 다른 교사를 소개받기도 했다.
통상 수능 출제위원이 되려면 모의평가 출제 경험이 있어야 하는 점, 모의평가와 수능을 출제할 때는 일정기간 외부와 연락을 끊고 합숙에 들어가는 점 등을 단서로 삼아 출제 경험이 있는 교사를 찾아냈다.
사교육 업체들은 이들 교사에게 여러 차례에 걸쳐 모의고사 문항을 사면서 많게는 5억원에 가까운 고액을 지불한 것으로 파악됐다. 이들이 사들인 문제에는 초고난도 문제를 뜻하는 '킬러문항'이 상당수 포함됐을 것으로 추정된다.
다만 교육부는 수능 문제의 유출 가능성에 대해서는 선을 그었다. 수능이나 모의평가 1회 출제·검토에 500명가량이 투입되는 점에 비춰, 사교육 업체와 거래한 수능·모평 출제 교사는 극히 일부분이라는 설명이다.
또 출제 기간에 문항을 계속 수정·보완하기 때문에 특정인이 출제하려고 의도한 문제가 실제로 수능과 모의평가에 똑같이 나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는 설명이다.
교육부 관계자는 "(사교육업체에 대한 영리행위를) 자진신고한 교사 322명 중 24명이라고 하면 많아 보이지만, 한 학년도에 수능(1회)·모의평가(2회)에 투입되는 인원이 누적 1천500명에 달한다는 점을 생각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2017학년도부터 따지면) 7개년간 1만명 가운데 24명인 셈"이라며 "또한, 24명 모두가 수능 출제에 참여했던 것은 아니다"고 했다.
이어 "본인의 전공이 있으니 (어떤 문제를 낼까) 고민은 하고 들어가지만, 여러 차례 문제를 만들고 폐기하고 검토하는 과정에서 (문제에) 변화가 생긴다"며 "사교육 카르텔·부조리 집중신고기간 접수된 (유출 의심) 사례도 상당수는 EBS에서 연계된 사례였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이들 교사들을 통해 수능·모평과 비슷한 문제가 사교육 업체로 유출됐을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교육부의 다른 관계자는 "일반적으로 문제가 유출되려면 출제한 후 시험 전에 유출돼야 하는데 (출제진이 시험이 끝날 때까지) 감금되는 현행 구조에서는 나갈 수 없다"면서도 "수사를 의뢰하는 상황에서 (문제 유출이) 없었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또 해당 업체 사교육을 받은 학생들이 시험에서 더 유리했던 것은 부정할 수 없어 보인다. 사교육 업체가 수능 출제 경험이 있는 교사들에게 문제를 산 뒤 수강생들에게 이를 모의고사 형태로 되팔았기 때문이다.
경찰 수사 과정에서 출제 교사들이 사교육 업체에 판매한 문제가 수능 출제 문항과 유사한 것으로 드러나 논란이 일 가능성도 있다.
교육부는 사교육 업체에 문항을 판매한 교사들을 수능·모평 출제에서 원천적으로 배제하는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혔지만, 사교육 업체에 문제를 판매한 사실을 교사 본인이 숨긴다면 이를 밝히기가 매우 어려워 실효성이 있을지는 미지수다.
교육부는 "2024학년도 수능 출제진 구성 시 감사원과 협의해 사교육 업체 문항 판매자를 철저히 배제하고, 올해 하반기에는 문항 판매자의 수능·모의평가 출제 참여를 원천 배제하는 제도 개선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사진=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