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킹범에 법원 접근금지 명령 '효과 없다'

입력 2023-09-10 19:34


법원의 접근금지 명령을 받고도 옛 연인을 찾아가 살해한 30대 스토킹범의 범행이 유족의 엄벌 탄원으로 다시 한번 공분을 일으키고 있다.

이번 사건은 지난 7월 17일 오전 5시 45분께 인천시 남동구 아파트 복도에서 벌어졌다.

30대 남성 A씨는 전 여자친구인 30대 여성 B씨를 흉기로 찔러 살해했으며, 이 과정에서 범행을 말리던 B씨 어머니에게도 흉기를 휘둘러 양손을 크게 다치게 했다.

그는 앞선 데이트 폭력과 스토킹 범죄로 지난 6월 "B씨로부터 100m 이내 접근하지 말고 전기통신을 이용한 접근도 금지하라"는 법원의 제2∼3호 잠정조치 명령을 받고도 범행했다.

B씨는 휴대전화 번호가 112신고 체계에 등록돼 관련 신고가 접수되면 경찰이 더 빠르게 출동하는 '신변보호 112시스템'도 적용받았으나 범행을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현재 제도만으로는 스토킹범이 접근금지 명령을 어겨도 피해자의 신고가 없으면 경찰이나 사법당국이 사전에 파악하기가 어려운 구조이기 때문이다. 피해자가 긴박한 상황 속에 제때 112 신고를 하기는 어렵다

지난 6월 '스토킹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스토킹 가해자에게 판결 이전에도 위치추적 전자장치(전자발찌)를 부착할 수 있게 됐지만, 이는 공포 6개월 후인 내년 1월에나 시행될 예정이다.

전문가들은 개정안이 시행되더라도 모든 스토킹 가해자에게 전자발찌 부착 명령을 내리기는 어려워 스토킹 범죄 방지를 위한 근본적인 대책이 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스토킹 피해자에게 긴급 신고를 할 수 있는 스마트워치가 지급되지만, B씨는 살해당하기 4일 전인 지난 7월 13일 기기를 반납하면서 전혀 효과를 내지 못하기도 했다.

피해자 유족은 "(스마트워치를 받은 지) 한 달도 채 되지 않아 경찰이 가해자와 동선이 겹치지 않으면 스마트워치 반납을 해달라고 안내해 자진반납(?)을 하게 됐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앞서 경찰은 "A씨로부터 연락이 오지 않는다며 B씨가 스마트워치를 반납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피해자 유족은 지난 8일 인터넷 커뮤니티에 스토킹 범죄 예방책의 한계를 지적하는 글을 올리고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피해자의 사촌언니로 알려진 글쓴이는 "동생이 살해당하기 5일 전부터 가해자는 접근금지 명령을 어긴 채 집 앞에서 동생을 보고 있었다"며 "이런 사실은 동생이 세상을 떠난 뒤에야 알게 됐다"고 적었다.

그러면서 "접근금지명령도 형식에 불과하며 (스토킹 피해자에게 지급하는) 스마트워치는 재고가 부족한 데다 사고가 일어나야만 쓸모가 있다"며 "모든 상황이 끝나고 경찰이 출동한다고 하면 무슨 소용이 있는지 모르겠다"고 호소했다.

이어 "6살이었던 동생의 딸은 엄마 없이 세상을 살아가게 됐다"며 "부디 동생의 딸이라도 안전할 수 있게 도와주시고 스토킹 범죄와 관련해 많은 피해자가 안전해질 수 있는 실질적인 대책을 마련해달라"고 촉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