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정책에 따라 늘리거나 줄일 수 있는 재량지출 비중이 3년 만에 다시 증가하게 된다.
예산안 편성 과정에서 올해 역대급 '세수 펑크'가 충분히 반영되지 않은 탓에 지방교부세·교육재정교부금 예산이 급감했고 결국 정부 정책의 재량을 늘리는 결과로 이어졌다는 분석이다.
4일 기획재정부의 국가재정운용계획에 따르면 내년 예산안의 재량 지출 비중은 47.0%로 올해보다 0.3%포인트(p) 상승했다. 예산안 기준으로 재량 지출 비중이 상승한 것은 2021년(51.9%) 이후 3년 만이다.
재량 지출은 사회간접자본(SOC), 연구개발(R&D) 등 정부가 정책에 따라 지출 규모를 조정할 수 있는 예산이다. 반면 연금·건강보험, 사회보장지출 등 법령에 근거해 지출 규모가 정해지는 경직성 예산은 의무 지출로 분류된다.
전반적으로 고령화·성장률 하락 등 영향으로 의무 지출 비중이 높아지는 추세지만 문재인 정부 당시인 2020·2021년 예산안의 재량 지출 비중은 모두 전년보다 증가했다.
당시 9% 내외의 높은 총지출 증가율을 감안하면 재량 지출 비중 증가는 어느 정도 예견된 것이라는 분석이 많았다. 재정 총량이 큰 폭으로 늘어도 의무 지출은 법령에 지출 규모가 정해져 있어 정부가 단기에 임의로 대폭 증액할 수 없기 때문이다.
내년 예산안은 총지출 증가율이 2005년 이후 최저 수준(2.8%)이라는 점에서 문재인 정부 때와 상황이 전혀 다르다.
그럼에도 재량 지출 비중이 증가한 것은 올해 세수 펑크가 세입예산안에 반쪽만 반영되면서 의무 지출 중 하나인 지방교부세·교부금이 큰 폭으로 감소한 것과 관련이 있다.
지방교부세·교부금은 내국세 수입과 기계적으로 연동돼 자동으로 배분되기 때문에 총지출 증가율이 아닌 세입 예산안의 내국세 세수 전망에 따라 결정된다. 의무 지출로 분류되지만 다른 경직성 지출 항목과 달리 내국세 세수 전망에 따라 예산 증감 폭이 클 수 있다.
내년 지방교부세·교부금 예산이 올해 예산(151조원)보다 15조3천억원이나 줄어든 135조7천억원에 그친 것 역시 같은 기간 내국세 세수 예산 감소율(10.1%)에 기계적으로 연동된 결과다.
지방교부세·교부금 예산은 의무 지출의 약 40%를 차지하기 때문에 내국세 예산의 증감은 의무·재량 지출 비중에 영향을 끼치게 된다.
실제로 기재부는 지방교부세·교부금 예산의 급감이 내년 재량 지출 비중 증가의 주된 원인이 된 것으로 보고 있다. 내년 의무 지출 증가율(2.2%)이 총지출 증가율(2.8%)을 밑돈 반면 재량 지출 증가율(3.5%)은 총지출 증가율을 훌쩍 상회한 것 역시 같은 이유다.
정부가 내년 예산을 편성하면서 기준으로 삼은 올해 국세 세입예산은 400조5천억원, 내년 세입예산안은 367조4천억원이었다.
올해 세수는 예산 대비 50조~60조원대 줄어들 것으로 예상되지만 아직 세수 재추계가 마무리되지 않아 예산 편성 과정에서 올해 세입예산은 400조5천억원 그대로 유지됐다. 하지만 내년 세입 예산은 올해 부진한 세수 실적을 고려해 편성됐다.
결국 세수 펑크가 한쪽에만 반영되면서 내국세 세수 예산 감소 폭이 커졌고 결국 지방교부세·보조금 예산도 줄면서 상대적으로 재량 지출 비중을 늘리는 주된 원인이 됐다.
정부는 다음주 세수 재추계 결과를 발표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