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년 주담대가 뭐길래…가계대출 잔액·연체율 '급증'

입력 2023-09-03 07:19
수정 2023-09-03 07:27


5대 은행의 가계대출이 1년 9개월 만에 가장 큰 폭으로 뛰고, 전체 대출 연체율마저 급증하면서 금융당국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3일 금융권에 따르면 5대 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의 지난달 말 가계대출 잔액은 680조8천120억원으로 집계됐다. 7월 말(679조2천208억원)과 비교해 한 달만에 1조5천912억원 늘었다 5월 이후 4개월 연속 증가세다. 8월 증가 폭(1조5천912억원)은 2021년 11월(2조3천622억원) 이후 1년 9개월 만에 최대 기록이기도 하다.

최근 가계대출 증가세를 주도하는 주택담보대출의 경우 8월에만 2조1천122억원(512조8천875억원→514조9천997억원)이나 뛰었다. 2조원대 주택담보대출 월별 증가액은 2022년 12월(2조3천782억원) 이래 8개월 만에 처음이다.

이에 따라 전체 은행권과 금융권의 가계대출 증가세도 4월 이후 8월까지 5개월 이어졌을 것이 확실시된다. 지난달 은행권과 금융권 가계대출은 각 6조원, 5조4천억원 불어난 데 이어 8월 증가 폭이 더 커졌을 가능성도 있다.

8월 가계대출 급증에는 50년 만기 주택담보대출 논란이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는 게 은행권의 분석이다.

우선 5대 은행의 50년 만기 주택담보대출 잔액이 7월 말 8천657억원에서 지난달 24일 2조8천867억원으로 2조원 넘게 불었다. 이례적으로 이들 은행의 주택담보대출이 8월 25∼31일, 단 5영업일 만에 513조3천716억원에서 514조9천997억원으로 1조6천281억원 급증했는데, 상당 부분이 50년 만기 상품 대출로 추정된다.

지난달 10일 당국이 50년 만기 주택담보대출을 최근 가계대출 증가의 주범으로 지목한 뒤 은행권은 스스로 50년 만기 상품에 '만 34세 이하' 등 연령 제한을 두거나 아예 잠정적 판매 중단 방침을 밝혔다. 같은 달 하순에는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산정 기준 조정에 따른 50년 만기 상품의 실제 한도 축소가 임박했다는 소식까지 더해지면서 당장 필요하지 않은 주택담보대출 수요까지 몰렸다.

이처럼 가계대출이 빠르게 다시 늘어나는 가운데 연체율 등 건전성 지표까지 계속 나빠지면서 부실 위험에 대한 우려와 긴장이 더 고조되고 있다.

5대 은행의 7월 말 기준 단순 평균 대출 연체율(1개월 이상 원리금 연체 기준)은 0.31%(가계대출 0.28%·기업대출 0.34%)로 집계됐다. 한 달 전 6월 말의 0.29%(0.26%·0.31%)보다 0.02%포인트(p) 높아졌다. 고정이하여신(NPL)비율도 한 달 사이 평균 0.25%에서 0.29%로 0.04%p 상승했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높은 금리와 실물경기 둔화로 회복 탄력성을 상실한 한계 기업과 가계를 중심으로 대출 부실이 늘어나고 있다"며 "여러 가지 유예 등 지원 정책과 함께 이연된 부실이 시간이 갈수록 점차 현실로 드러나는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당국은 지난달 은행권 등과 여러 차례 회의를 거쳐 50년 만기 주택담보대출, 인터넷은행의 공격적 주택담보대출 영업 등을 가계대출 증가의 주요 원인으로 꼽고 해결 방안을 강구하고 있다. 50년 만기 상품을 40년 만에 갚는 것으로 가정하는 새로운 DSR 산정 방식이 이르면 이번 주부터 모든 은행에서 시행될 전망이다.

다만 시중은행 관계자는 "50년 만기 상품 수요 증가는 원인이 아니라 현상일 뿐"이라며 "주택담보대출 급증의 더 근본적 원인은 주택담보대출 LTV(담보인정비율) 상한 완화, 부동산규제지역 해제, 민간택지 내 분양가상한제 지정 해제, 특례보금자리론 도입 등 부동산 경기 경착륙을 막기 위한 정부의 규제 완화"라고 지적했다.

(사진=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