탑건 명장면의 숨은 공신…주가 100% 오른 항공엔진 1위 기업 [바이 아메리카]

입력 2023-09-03 08:00
5년 만에 부활한 항공엔진 1위
구조조정 막바지, 제너럴일렉트릭(GE)


아슬아슬 지면에 닿을 듯한 높이에서 모래폭풍을 일으키며 치솟는 미 해군 전투기 F/A-18 슈퍼 호넷.

영화 〈탑건 매버릭〉은 대역 조종사가 다신 하고 싶지 않았다고 할 정도로 다목적 전투기를 저고도에서 기동 한계까지 몰아붙이며 관객을 화면 안에 붙잡아두죠.



세계 최강인 미 해군력을 지원하는 이 전투기가 이런 기동을 할 수 있는 건 고출력을 내는 2개의 GE 제트 엔진 덕분입니다.

바로, 니콜라 테슬라와 자주 비교되는 발명왕의 회사이자 미국 정치(레이건), 금융(JP모건), 산업계(록펠러,벤터빌트) 당대의 굵직한 인물들과 함께 20세기를 풍미한 회사의 작품이죠.



원래 전구로 시작해 전기, 발전기, 엑스레이 기술까지 뻗어나가 나중엔 문어발식 경영으로 망할 뻔하기도 했지만, 워낙 거대했던 기업 크기인 덕분인지 군수, 항공 엔진기술에선 압도적인 곳입니다.

아직도 현역인 미 공군 F16 전투기 엔진 정비물량의 80%, 고성능인 프랫&휘트니사와 5세대 전투기 F-35 차기 엔진 경쟁을 벌이고,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린 중단거리 민항기 보잉 737기는 물론 에어버스 A320에 이르기까지 기종을 가리지 않는 성능과 내구성, 효율까지 갖춘 터보엔진 항공 기술기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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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 주식시장에서 반짝이는 기업들을 들여다보는 바이 아메리카.

오늘은 혹독한 구조조정 끝에 5년 만에 부활한 옛 세계 1위 기업, 이제 수주 잔고만 30조씩 쌓아두고 온전한 항공우주 기술회사로 독립을 준비 중인 제너럴 일렉트릭(티커명:GE) 이야기입니다.



현재 시가총액 2조7천억 달러의 애플이 세계를 호령하기 전, 2000년까지만 해도 제왕은 GE였거든요. 제너럴일렉트릭은 131년, 역사만큼 거대한 이야기를 갖고 있지만, 너무 많이 알려져 지루한 회사이기도 하죠.



창업자 에디슨은 전구와 직류 발전기를 고집하며 한때 니콜라 테슬라를 견제하기도 했고, 이 과정에서 웨스팅하우스에 교류 발전 특허가 넘어가기도 했죠. 앙숙 같지만 전기차 시대엔 충전, 주행에 모두 직류-교류가 쓰이면서 두 천재들의 역사는 현재 진행형이기도 합니다.

어쨌든, 커런트워로 보면 더 재미있을 역사 얘긴 건너뛰고, 회사 이야기만 하면 이 사람을 빼놓을 수가 없어요. GE의 최연소 회장으로 고도 성장을 이끌었던 잭 웰치 회장이죠.



세상을 떠난 잭 웰치 회장은 이제 잊혀가는 인물이지만 그가 회사를 경영하는 동안 기업 가치를 50배 가량 키웠으니까 비교할 대상이 없다고 봐도 될 정도입니다. 매일매일 성과를 측정하는 '성과주의'에 '경영의 신'으로도 불렸지만 나중에 퇴임할 때 퇴직금 4,500억원, 10년간 고민해 뽑았다던 후계자인 제프리 이멜트가 썩 좋은 결말을 맺지 못한 점은 그의 오점으로도 여겨집니다.



본래 전구→발전기→터빈, 엔진 기술로 전문성을 깊이 장악하거나 가전제품 혁신으로 영역을 확장하면서 영향력을 키워온 것이 GE가 100년 넘게 살아남은 비결이죠. 하지만 GE캐피탈을 통해 금융업에 뛰어들고, 전문성없는 미디어에 한눈 팔던 과정이 결국 독이 되어 돌아옵니다.

제프리 이멜트는 GE를 항공엔진, 에너지, 의료기기로 변신시킬 기초를 닦고, 초기엔 금융사업이 기존 영역을 뛰어넘을 만큼 성과도 냈죠. 하지만 그는 참 운도 없던 경영자입니다. 금융위기의 직격탄을 맞아 금융 부문 부실이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결국 사업의 본질을 잊은 회사와 그에게 호된 시련이 찾아옵니다.



결국 회사를 정상화하지 못한 채 2017년 물러나게 되고, 뒤를 이은 존 플래너리 전 회장은 100년 역사의 가전 사업은 중국 하이얼에, 회사 상징인 전구 사업도 서번트시스템스에 넘기는 등 부실 계열사 정리만 하다 쫒겨납니다.

심지어 2017년엔 워런 버핏이 그간 투자를 모두 정리하고, 이듬해엔 1896년 창립 멤버였던 다우 지수에서 퇴출되면서 실패한 기업의 아이콘이 되고 말죠.



그런데 여기서 망했다면 지금에야 이 회사 얘길 다시 할 이유가 없겠죠.

컴퓨터 재부팅하고 리셋하듯이 재건의 희망을 본 인물이 회사 역사상 첫 '굴러온 돌' 외부인 경영자 현재의 로렌스 컬프 주니어 회장입니다. 그는 GE와 사업 형태가 비슷한 다나허에서 비용 줄이고, 일본 도요타식 경영 방식으로 연봉왕까지 올랐던 인물입니다.



2018년 최악의 시기 한껏 몸을 낮춰 첫 주주서한을 썼던 래리 컬프는 전임 회장들이 남긴 흔적과 부실들을 싹 지우고 5년 만에 회사 주축을 GE 에어로스페이스, GE 버노바, GE헬스케어 이렇게 딱 3개 축으로 가르는데 성공했습니다.

납땜 없이 3차원 프린터처럼 재료를 쌓아 정교한 항공부품을 생산하는 엔진 기술의 GE에어로스페이스, 여기에 엠파이어스테이 높이의 풍력타워와 발전소로 신재생에너지 분야에 집중하고, 원조 엑스레이부터 초전도 기술로 MRI 기기 등 의료시장 영향력을 각각키우는 전략입니다.



코로나가 잠잠해지면서 인천공항 이용객만 4배, 미국은 5년 만에 최대 전 세계 여행객이 폭발적으로 늘고 있다고 하죠. 이렇게 되면서 이제는 이 많은 사람을 실어보낼 비행기가 부족하다고 해요.

덕분에 항공기 만드는 회사들 올해들어 세계 최대 항공사인 보잉은 40%, 유럽 에어버스도 30%나 주가가 뛰었고, 여기에 필수적인 엔진 공급회사들 주가도 뛰었습니다. 연초 이후 GE 주가는 현지시간 31일 기준 약 72.6%, 1년 전과 비교해 딱 100% 넘게 상승했습니다.



전 부문이 과거처럼 완벽히 살아난 것은 아니지만 바이든 정부의 인플레이션 감축법, 기후위기에 맞춘 신재생에너지 사업, 부활 중인 항공 수요의 혜택을 받을 회사로 재평가받고 있는 거예요.

덕분에 지난해 연간 기준 매출액은 전년보다 3% 늘어난 765억 달러, 주당 순손실 0.05달러로 전년도 6달러가 넘던 것에서 적자폭을 크게 줄였습니다. 그리고 올해 늘어난 항공 수요 덕분에 2분기 매출이 159억달러로 시장 예상을 넘어섰고, 주당순이익은 0.68달러, 연간 2달러대를 회복할 전망입니다.



지금 얼마나 돈이 도는 시장인지 전세계 항공엔진 시장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항공엔진 제조회사는 제너럴일렉트릭, 프랫&휘트니 그리고 내구성에서 우위인 롤스로이스 3사가 나눠 쥐고 있는데 민항기에서 보면 역시 GE가 우위에 있습니다.

GE는 프랑스 사프란과 합작해 CFM 인터내셔널이라는 회사를 함께 두고 있는데, 이 회사를 통해 전세계에 1만대 넘게 팔리고 지금 성능개량 중인 보잉의 B737시리즈, 경쟁자인 에어버스A320 시리즈에 모두 CFM LEAP 엔진을 공급합니다.



GE항공 부문의 항공부문 매출만 지난해 260억 달러(한화 약 34조 원), 영업이익 47억 달러(한화 약 6.3조원), 영업이익률 18.3%(전년 13.5%)로 증가하면서 부활의 발판이 됐죠. 또 래리 컬프 주니어 회장이 공언한대로 현금흐름은 47.5억 달러로 작년의 2배(18.9억불) 이상으로 늘리는 등 회사 기초체력의 변화도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작년 4분기부터 깜짝 실적을 기록한 덕분에 월스트리트저널은 "투자자들이 항공주로 인식하기 시작했다"는 평가를 남기기도 했고요. 이 정도면 GE 사명을 바꿔야 하는 것 아닐까 싶은데, 올해 헬스케어, 내년 에너지부문 떼어내면 GE 에어로스페이스로 완전 재탄생할 거라고 하죠.



뼈를 깍는 구조조정을 마친 GE를 향해 시장은 이제 또 다른 기준을 가져 평가하기 시작했습니다. 월가 헤지펀드 전설 드러켄밀러 등이 여전히 GE 지분을 대량 보유 중이고 항공부문 기대주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다만 지난달들어 투자은행 오펜하이머(크리스토퍼 글린)는 주가가 너무 올랐다면서 투자의견을 시장수익률 수준으로 내렸고, 시장수익률 하회 의견을 제시한 곳도 3곳이나 되는 등 단기간 기업가치를 두고 의견이 나뉘고 있는 건 고려할 점입니다.



그럼에도 미군이 곧 발주할 차세대 전투기, 보잉과 에어버스의 민항기 개발 경쟁에 더해 달 탐사와 우주개발을 둔 국가간 경쟁에서 협력해 나갈 기술기업 중에 하나가 제너럴일렉트릭이기도 합니다.

여전히 대체하기 어려운 딱 하나의 사업에 집중하기로 한 GE, 한 고비를 넘긴 이 회사가 미 제조업을 상징하던 과거처럼, 또 한 번 성공신화를 써내려갈 수 있을까요?





(기획:김택균, 구성:김종학, 편집:이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