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신 "한국, 돈 줘도 애 안 낳아"

입력 2023-09-01 16:15
수정 2023-09-01 16:21


우리나라 올해 합계출산율이 0.7명으로 역대 최저치를 기록한 가운데 한국 정부가 초저출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현금 보조금을 뿌리고 저리 대출을 제시했지만 젊은이들을 설득하기에는 역부족이라는 외신이 진단이 나왔다.

미국 일간지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지난달 31일 '부모에게 현금을 지급해도 세계 최저인 출산율이 더 낮아지고 있다'는 제목의 서울발 기사에서 한국 정부가 저출산 해결을 위해 2006년 이후 약 280조원을 쏟아부었지만 이는 청년층에게 설득력이 없었다고 짚었다.

신문은 한국 정부가 수년간 공격적인 보조금 지급, 저리 대출 등 청년들의 결혼과 출산을 유도하기 위해 다양한 현금성 지원을 해왔고 윤석열 대통령은 이러한 지원 규모를 더 늘리려 하지만 올해 2분기 합계출산율이 0.70명으로 역대 최저치를 기록하는 등 상황은 더 나빠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WSJ은 단순히 양육비용을 덜어주는 것만으로는 해결하기 어렵다며 취업난, 경력 단절, 높은 교육비, 치열한 경쟁 등 사회구조적 문제가 출산·육아에 더 큰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3년 전 첫 아이를 낳은 황미애(33)씨는 둘째를 고려하고는 있지만 맞벌이해야 해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다. 황씨는 "첫째 때 받은 정부 보조금이 기저귀와 분유를 사는데 도움이 됐지만 장기적으로 들어갈 교육비를 생각하면 (둘째는) 망설여진다"고 말했다.

지난해 결혼한 회사원 최선윤(32)씨는 주변의 많은 '워킹맘'들이 승진에서 제외되거나 육아와 일을 병행하려 분투하는 모습을 봐왔기 때문에 아직 아이를 가질 계획이 없다고 밝혔다.

성악 강사인 장유미(35)씨는 언젠가 결혼은 하게 되더라도 출산은 별개로 본다. 지금 수입은 혼자 살기에는 충분하지만 결혼해서 아이를 키우려면 맞벌이를 해야 한다고 느낀다.

장씨는 보조금으로 사교육비 같은 구조적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다면서 "만약 내가 사교육비가 그렇게 많이 필요하지 않고 여가가 보장되는 나라에서 살았다면 아이를 낳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WSJ은 전후 호황기인 1970년대에 4.5명으로 정점에 달했던 한국의 출산율이 낮아진 데에는 안정적인 일자리 부족과 집값 폭등도 영향을 미쳤다고 분석했다. 한국 인구의 5분의 1이 사는 서울의 출산율은 0.59로 한국 주요 도시 가운데 가장 낮다고 전했다.

전문가들 역시 현금성 지원만 이어지고 더 큰 사회구조적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면 출산율을 높이는 데에 효과적이지 못하다고 지적한다.

최슬기 한국개발연구원 국제정책대학원대학교 교수는 "선거철마다 정치인들은 출산율 문제를 해결하겠다며 거대한 대책을 발표하는 경향이 있다"며 "하지만 사람들이 삶에 대한 관점을 바꾸게 하는 유인 동기로서 현금은 (효과가) 제한적이다"라고 말했다.

이상림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은 "젊은 세대는 끊임없이 계속되는 경쟁을 두려워한다"며 "(이들 입장에서) 아이를 갖지 않는 것은 불행을 대물림할 위험을 본질적으로 낮춘다"고 설명했다.

(사진=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