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 들어오는 외국인 근로자 수가 급속도로 늘고 있습니다.
저출산·고령화 현상이 가속화하면서 제조업과 건설 현장의 구인난이 심해지면서 나타난 현상인데요.
특히 지난 몇 년간 코로나로 외국인 근로자 도입을 통제하면서 중소 제조업체들은 외국인 근로자를 찾기가 하늘의 별따기가 됐죠.
사업체의 적극적인 구인에도 채용하지 못하는 일자리를 의미하는 '빈 일자리' 수는 제조업은 2020년 3만1천개에서 올해 6월 기준 5만7천개로 두 배 가까이 늘었습니다.
비제조업도 같은 기간 9만5천개에서 15만6천개로 급증할 정도로 인력난은 심각해진 상황입니다.
그런데 지난 2021년 말 '위드 코로나(단계적 일상회복)'가 시작되면서 외국인 근로자 입국은 정상화됐고, 정부는 여기에 발 맞춰 외국인 근로자 도입 규모를 대폭 늘리기로 했습니다.
● "외국인 근로자 더 늘려 빈일자리 해소한다"…인력난 고육책 내놓은 정부
우린나라에서 외국인 근로자는 일반적으로 고용노동부가 운영하는 고용허가제를 통해 일할 수 있습니다.
고용허가제란 내국인 인력을 구하지 못한 중소기업이 정부로부터 고용허가서를 발급받아 비전문 취업 비자(E-9)을 통해 3제조업, 건설업, 농업, 어업 등에서 외국인 근로자를 고용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를 말합니다.
2004년 고용허가제가 도입된 이후, 비전문 외국인 근로자는 매년 5만명 수준이었지만, 내년에는 12만명이 입국하게 됩니다.
당초 정부는 연 기준 역대 최대인 11만명으로 확대했었는데, 지난 24일 규제혁신전략회의를 통해 1만명 더 늘리겠다고 발표했습니다.
내국인 일자리 보호 등을 위해 정부는 외국인 근로자를 고용할 수 있는 업종과 쿼터(고용 규모)를 제한적으로 운영해왔는데요.
업종별로도 외국인 근로자 인원 수는 한도가 정해져있습니다. 제조업은 9~40명, 농축산업은 4~25명, 서비스업은 2~30명 등입니다.
정부는 이번에 이 한도를 제조업은 18~80명, 농축산업은 8~50명, 서비스업은 4~75명으로 각각 2배씩 늘리기로 했습니다.
예컨대 용접, 주물, 도금 등 작업 환경이 상대적으로 열악한 뿌리기업의 경우 인력난이 심각한데 이런 업종에서 필요하다면 외국인 근로자를 더 쓸 수 있도록 규제를 푼 겁니다.
여기에 현재 중견기업은 내국인 일자리 잠식을 막는다는 취지로 근로자 300인 미만 사업장만 외국인 근로자를 고용할 수 있도록 돼 있는데요.
문제는 지방에선 300인 이상으로 매출 규모가 큰 중견기업이더라도 수도권이 아니라는 이유로 인력 수급에 어려움을 겪는다는 점입니다.
정부는 그래서 중견기업연합회, 전문 연구기관 등과 함께 인력 수요 실태조사를 했고, 그 결과 외국인 근로자에 대한 수요가 상당하다고 보고 인구 감소가 심각한 지방의 중견기업들은 누구나 비숙련 외국인 근로자를 쓸 수 있도록 했습니다.
아울러 장시간·야간근로, 체력 소모가 많아 내국인이 기피하는 택배업·공항 지상조업의 상·하차 직종에도 외국인 근로자 도입을 허용했습니다.
보통 외국인 근로자 도입 쿼터는 분기별로 분산해 배정되는데요.
이렇듯 E-9 외국인근로자 채용 가능 기업과 고용 한도, 업종을 늘리다 보니 4분기에 들여올 외국인 인력 규모를 기존 3만명에서 1만명 더 확대하게 된 겁니다.
또 제조업체들이 가장 필요로 하는 건 숙련공입니다. 이에 정부도 외국인 근로자가 한 기업에서 오래 일할 수 있도록 제도를 손질했습니다.
이전엔 E-9 비자를 받은 외국인 근로자는 최대 4년10개월 근무한 뒤 6개월 본국에 돌아갔다 다시 들어와야 추가로 4년10개월을 더 일할 수 있어쓴ㄴ데요.
올해부턴 업무 공백이 없도록 출국 없이 10년 이상 계속 일할 수 있도록 바꿨습니다.
● 사라지지 않은 '내국인 일자리' 잠식 우려…'일자리 질' 올려야
최근 우리 산업 현장에 외국인 근로자들이 급증하면서 다시 한번 '내국인 일자리 잠식' 우려가 다시 한번 불거지고 있습니다.
노동계는 산업 현장에 빈 일자리가 생기는 근본 원인은 열악한 근로환경과 낮은 임금 때문이라면 외국인 근로자 도입 정책이 '땜질식'일 뿐이라는 비판을 내놓기도 합니다.
또 인력난 해소를 위해 빈 일자리를 외국인으로 메우는 데 집중하면 청년들의 실업은 심화되고, 일자리 질이 낮아져 결국 청년들이 갈 수 있는 양질의 일자리만 줄어든다는 시각도 있습니다.
실제 건설업계는 청년들의 건설현장 유입이 줄고 이 공백을 비숙련 외국인 근로자들이 채울수록 '숙련기능 전수의 단절'로 이어져 시공품질이 낮아지고, 나아가 건설생산 기반이 붕괴될 수 있다고도 우려합니다.
최근 호황기를 맞은 조선업계 역시 침체기에 현장을 떠난 숙련공들의 빈자리를 청년 기술 인재가 채우지 못한다면 한국 조선업체들의 경쟁력으로 꼽혀온 고부가 친환경 선박 기술에서 중국에 따라잡힐 수 밖에 없다는 걱정이 많고요.
실제 이러한 우려는 현실화되고 있습니다. 이번 정부는 인력이 부족한 조선업에 채용돼 현장 교육을 받은 비숙련 인력도 전문인력(E-7) 자격으로의 변경을 허용하기로 했습니다.
인력난에 외국인 근로자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지면서 개발자나 디자이너, 연구원과 같은 전문적 지식을 가진 외국인으로 한정돼 있고, 소득, 숙련도, 학력 등 엄격한 기준을 통과해야 하는 E-7 자격 전환에 대한 문턱마저 낮아지고 있는 거죠.
외국인 근로자를 써야 하는 건 맞지만, 또 고급 인력 부족에 따른 부작용을 감내해야 하는 '딜레마'에 직면한 셈입니다.
또 정부는 내국인 일자리에도 적잖은 영향을 미칠 관광숙박업종에도 외국인 근로자 도입을 허용하는 방안까지 고민하고 있다니, '일자리 잠식'에 대한 우려는 단순한 기우만도 아닌 듯 싶습니다.
하지만 20년 전 고용허가제를 처음 도입할 당시와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는 점은 분명해 보입니다. 그땐 지금처럼 인력난이 심하지 않았죠.
중소기업계에선 국내 노동시장에 필요한 인력의 원활한 공급을 위해선 외국인 근로자 도입 시기와 인력 규모에 대한 제한을 지금보다 더 풀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습니다.
아예 쿼터 제한을 없애자는 의견까지 나오고 있고요.
이번 외국인 고용 규제완화로 인력난에 '숨통'이 트이게 된 중견기업계 역시 추가적인 확대 방안이 마련돼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중견기업연합회 관계자는 "중견기업이 인력난을 호소하는 상황을 적극 감안해 E-9이든 E-7이든 최소한 고용인원의 10%까지 외국인근로자 채용을 허용하고 지역, 업종과 무관하게 고용허가제를 적용하는 등 과감한 조치를 적극 모색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이번 고용허가제 개편방안엔 주거환경 개선과 취업적응 사업 등 외국인 근로자들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한 방안들도 포함이 됐는데요.
외국인 근로자 근무 환경 개선과 일자리의 질을 높이려는 별도의 관리 시스템이 필요하며, 고급 기술 인재가 필요한 업종엔 내국인 청년층 유입을 독려할 수 있도록 국내 우수한 인력들을 육성하고 취업까지 연결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주무부처인 고용부도 "고용허가제는 기본적으로 내국인이 일자리가 잠식되지 않는다"라는 점을 전제로 한다는 것을 강조합니다.
산업 현장에서 외국인 근로자가 필요한 직종이나 업종에 대해서 더 고용할 수 있도록 하되, 내국인들이 산업 현장에 찾아갈 수 있도록 일자리 질 개선 등 미스매치를 줄여나가는 노력도 병행해 나가겠다는 입장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