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법적 성별 스스로 결정·변경 가능해진다

입력 2023-08-24 06:00


독일 시민이라면 누구나 호적과 여권 등에 기재할 법적인 이름과 성별을 스스로 결정, 변경할 수 있게 된다.

이를 통해 트랜스젠더 등 성소수자들이 자유와 존엄성을 보장받게 된다고 독일 정부는 설명했다.

독일 신호등(사회민주당-빨강·자유민주당-노랑·녹색당-초록) 연립정부는 23일(현지시간) 내각 회의에서 이런 내용의 자기주도결정법 제정안을 의결했다.

마르코 부시만 독일 법무장관은 "이번 제정안은 소수의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지만, 그들에게 이 사안은 아주 큰 의미가 있다"면서 "트랜스젠더의 자유와 존엄에 관한 문제로, 국가는 이들을 더는 병자로 대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리자 파우스 가족부 장관은 "독일 내 트랜스젠더를 위한 의미 있는 순간"이라면서 "독일 기본법은 인격의 자유로운 계발과 성정체성에 대한 존중을 보장하지만, 40년 이상 성전환법으로 차별받아 왔는데, 이제 이런 차별은 막을 내리게 된다"고 말했다.

제정안에 따르면 앞으로 성인은 누구나 호적이나 여권 등에 기재될 이름, 법적 성별을 남성, 여성, 다양, 무기재 중에서 결정할 수 있다.

법적으로 이름이나 성별을 바꾸고 싶은 경우 호적사무소에 관련 진술서와 자기부담확인서를 제출하면 3개월 후 이행된다. 재변경은 1년이 지나야 가능하다.

14세 이상 청소년은 부모의 동의가 있어야 변경이 가능하다. 호르몬 치료를 하거나 성전환 수술을 앞두고 있는지와는 별개다.

제정안은 트랜스젠더와 중성 또는 남성도 여성도 아닌 성소수자들을 염두에 두고 입안됐다.

트랜스젠더는 태어날 때 정해진 성정체성을 또는 성정체성만 따르지 않는 이들을 말하며, 중성은 의학적으로 남성이나 여성으로 분류되지 않는 태생적 신체적 특성을 지닌 이들, 남성도 여성도 아닌(논바이너리) 이들은 스스로 남성으로도, 여성으로도 정의하지 않는 사람들을 말한다.

제정안은 1980년부터 적용돼온 성전환자법을 대체하게 된다. 이법에 따라 트랜스젠더가 법적 이름이나 성정체성을 변경하려면 심리감정을 받고, 법원의 판결을 받아야 했다.

이 과정에서 당사자들은 아주 내밀한 질문에 답변해야 해 굴욕적이라고 느끼는 데다 시간이 오래 소요되고 비용도 많이 들어 꾸준히 비판이 제기돼 왔다.

독일 헌법재판소도 여러 차례 이 법안이 위헌이라고 결정한 바 있다.

제정안에 대해 독일 야당으로 중도보수 성향인 기독민주당(CDU)·기독사회당(CSU) 연합과 극우 성향의 독일을 위한 대안(AfD)은 반발하고 나섰다.

질비아 브레허 기민당·기사당연합 가족정책 관련 원내대변인은 "제정안은 법적 성별과 생물학적 성별의 완전한 분리를 예정하고 있다"면서 "이런 임의적 성별 분류에 우리는 단호히 반대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는 여성 전용 보호공간을 위험에 빠뜨린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