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절인 15일 오전 서울 서초구의 한 신축 아파트 단지에는 태극기가 내걸린 집이 거의 없었다. 국경일에 집집마다 태극기를 내거는 문화가 사실상 사라진 지금의 세태를 반영하는 듯 했다.
1년 전 이곳으로 이사 왔다는 주모(40)씨는 "창틀에 게양대가 있는지 모르겠다"며 "거실 창 쪽에 게양대가 있더라도 상체를 (밖으로) 내밀어 달기는 위험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 "대신 어젯밤 일곱살 아들과 함께 스케치북에 태극기를 그려 냉장고에 붙여뒀다"고 덧붙였다.
반려견과 산책하던 주민 A(28)씨는 "태극기를 따로 걸어두진 않았지만 아파트 입구 쪽 가로등에 태극기가 걸려있는 걸 보고 광복절임을 새삼 깨달았다"며 "광복절이라고 별다른 계획이 있는 건 아니고 오후에 극장에 가려고 한다"고 말했다.
대한민국국기법은 국경일에 관한 법률에 규정된 국경일인 삼일절과 제헌절, 광복절, 개천절, 한글날에 국기를 게양하도록 정했다. '각종 기념일 등에 관한 규정'에 따른 현충일과 국군의날도 국기를 게양하는 날이다. 이밖에 국가장법에 따른 국가장 기간 등에도 국기를 건다.
국기법에 국가와 지방자치단체, 공공기관 청사 등에 국기를 연중 게양하도록 하는 조항이 있지만 집에 태극기를 내거는 것은 의무가 아니다.
인근 다른 대형 아파트 단지 상황도 비슷해서 태극기를 게양한 집은 15층짜리 1개 동마다 1∼2곳에 불과했다. 아예 없는 곳도 있었다.
1층 베란다에 태극기를 게양하고 그 모습을 휴대전화로 촬영하던 박모(80)씨는 "광복절이나 현충일, 삼일절 등 국경일에 빠짐없이 태극기를 게양한다"며 "습관처럼 하는 일"이라고 말했다.
그는 "오늘이 분리수거일이라 쓰레기를 버리고 겸사겸사 단지 안을 산책했는데 태극기를 거의 못 봤다"면서 "요즘 젊은 사람들은 국경일에도 태극기를 안 거는 것 같다"며 아쉬워했다.
이 아파트에서 10년째 근무 중인 경비원 김모(68)씨는 "처음 근무를 시작할 때만 해도 국경일에는 태극기가 많이 보였는데 어느 순간부터 (태극기가) 안 보이는 것 같다"며 "간혹 어린아이들이 손바닥만 한 태극기를 흔들고 다니는 모습을 보면 귀엽고 대견하다"고 했다.
아이의 귀가를 기다리던 권모(40)씨는 "교육 차원에서 태극기를 게양하는 게 맞지만 솔직하게 말하자면 집에 태극기가 없다"고 털어놨다. 그는 "태권도 학원에서 광복절을 맞이해 시청각 교육이 있을 예정이라고 한다. 학원에서라도 잘 보고 왔으면 하는 마음"이라고 말했다.
(사진=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