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특파원의 제1임무는 미국의 경제와 금융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제대로 알고 전달하는 것이다. 미국의 금융과 경제를 틀림없이 아는 것이 곧 한국의 미래를 대비하는 일이라 믿기 때문이다. 외교는 문외한이다. 그런 사람의 눈에도 오늘 맨해튼에서 벌어진 촌극은, 정치외교적으로 민망하다.
뉴욕총영사관이 네 장의 사진을 보냈다. 김의환 뉴욕총영사가 에릭 애덤스 뉴욕시장 초청으로 광복절 기념 태극기 게양식에 참석했다는 내용이었다. 이번 게양식은 뉴욕시장이 참석하는 최초의 광복절 기념행사로, 총영사관과 뉴욕시 정부 간 긴밀해진 협력관계를 반영한다는 자평이 함께 붙었다.
의아한 것은 사진의 내용이었다. 게양식의 주인공이어야 할 태극기가 보이지 않고 총영사의 모습만 영화 스틸컷처럼 박혀있다. 듣기로 외교는 사진 한 장만으로도, 옷차림과 말순서 하나 만으로도 큰 의미를 지닌다던데, 실수인가 싶어 다른 사진을 요청해도 돌아온 것은 태극기가 제대로 나온 사진이 아닌 총영사가 부각된 사진이다(추가로 문장 하나를 덧댄다. 영사관 측은 취재를 시작하고 원고를 한국에 송고한 뒤인 현지 시간 오후 9시 경 태극기가 조금 더 크게 나온 사진을 한 장 보내왔다. 영사관의 자료는 아니지만 다른 곳에서 구해온 사진이라는 설명을 동보했다).
언뜻 생각이 났다. 오늘 자료를 빼더라도 뉴욕총영사관이 최근 보낸 홍보자료 10건 가운데 6건이 총영사 만찬과 강연 홍보다. 총영사관 안에서 주와 객과 우선순위가 잘못 되어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현장에 있던 사람들의 말을 종합하던 중 게양식을 담은 현장 생중계 영상을 찾았다. 보도자료에는 총영사관이 "축사를 통해 제78주년 광복절을 맞이하여 순국선열과 애국지사 및 유가족들에게 깊은 경의를 표했다"고 되어 있었으나, 실제로는 없는 발언이었다. "한미 동맹 덕에 잿더미 위에 있던 대한민국이 공산화의 위기에서 벗어나 번영할 수 있었다"는 것이 1분 30초 분량의 축사 내용이었다. 총영사의 연설을 듣게 될 동포 사회에 대한 메시지 역시 부재했다.
같은 날 안토니 블링컨 미 국무부 장관은 기자단에 광복절 축하 메시지를 보냈다. 70주년을 맞이하는 한미 동맹의 힘을 재확인하고, 앞으로 우정을 지속하자는 내용이었다. 사사로움 없는 문구는 담백하고 힘이 있다. 대한민국 국민 여러분의 기쁜 광복절을 바란다는 인사도 함께였다.
글 말미에 뉴욕총영사관이 보내지 않은 사진 하나를 첨부해 둔다. 오늘 게양식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어느 정도의 무게를 갖고 있는지, 사진이 가진 목소리가 정부가 보낸 그것보다 더 크다고 생각한다. 한반도 밖에 있는 동포 사회에도 뜻깊은 광복절이 되기를 바란다. 사진은 뉴욕시장의 개인 소셜미디어 계정에서 찾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