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도 '짜맞추기식' 최저임금…국민은 피곤하다 [전민정의 출근 중]

입력 2023-07-08 08:00


내년 최저임금 수준을 결정하는 최저임금위원회 전원회의가 벌써 11차례나 열렸습니다.

하지만 노동계와 경영계의 대립 강도는 좀처럼 약해지지 않고 있습니다.

앞서 노사는 최초안으로 각각 26.9% 높은 1만2,210원, 올해와 같은 9,620원을 제시한 바 있는데요.

노사 간 최저임금 요구안 격차는 최초 요구안 2,590원(1만2,210원-9,620원)에서 1차 수정안 2,480원(1만2,130원-9,650원), 2차 수정안 2,300원(1만2천원-9,700원)으로 줄었지만 여전히 간극이 큽니다.

노사 모두 200원 이상도 양보하지 않고 있는 겁니다.

경영계는 "한계 상황에 놓인 영세 중소기업, 소상공인의 생존 문제를 고려해야 한다"며 소폭 인상 입장을 고수하고 있고요.

노동계는 "물가상승률과 가구 생계비 등을 감안했을 때 대폭 인상이 필요하다"고 맞서고 있습니다.



● 올해도 노사간 지지 않는 최저임금 싸움…결국 짜맞추기 '수싸움'으로

최저임금에 대해선 노사간 입장이 팽팽해 합의를 한 전례는 드뭅니다. 36번 심의중 합의는 7차례 불과했죠.

때문에 대부분 노동계와 경영계가 최초 요구안을 제시한 뒤, 격차를 좁히는 방식으로 논의가 이뤄집니다.

격차가 조금은 좁혀지더라도 노사가 사실상 평행선을 달리면 결국 공익위원들이 '심의 촉진구간'을 제시하고, 그 안에서 중재안을 마련해 표결에 부치는 방식으로 최저임금 수준이 결정됩니다.

지난해 최임위에서도 최저임금 수준은 공익위원안으로 결정됐는데요.

당시 인상 수준은 심의 촉진구간 중에서 경제성장률 전망치와 소비자물가 상승률 전망치를 더한 뒤 취업자 증가율을 뺀 수치로 결정됐습니다.

최저임금 고시 시한은 매년 8월 5일까지인데요.

이의제기 등 남은 행정절차를 감안하면 늦어도 7월 중순까지는 심의를 마치고 최저임금안을 고용노동부 장관에게 넘겨야 합니다.

올해 역시 최저임금 결정 막판 데드라인에 쫓기면서 결국 시간에 맞춰 결정 산식에 따라 결론이 날 가능성이 높은 입니다.

문제는 이 결정산식인데요. 노사 모두 객관적인 결정 기준이 아닌 '짜맞추기식'이라며 불만을 터뜨리고있습니다.

● '땜빵식' 공익위원 산식…"객관적·전문적 지표 만들어야"

지난해 위와 같은 산식으로 결정된 최저임금은 전년보다 5% 인상됐는데요.

당시 경영계는 즉시 "최저임금 5% 인상은 영세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의 현실을 무시한 결정"이라며 반발했습니다.

올해도 이같은 우려가 재연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최근 3년간 공익위원들의 심의촉진구간의 평균은 2.19%~6.81% 선이었는데요.

올해는 인상률이 3.95%만 넘게되도 최저임금은 만원을 넘어서게 되는 만큼, 업종별 최저임금마저 무산된 상황에서 경영계의 큰 반발이 예상됩니다.

경영계는 또 단순히 세 가지 지표만을 근거로 한 데다 계속해서 달라지는 전망치를 적용하면 경제 상황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할 수 있다는 점도 지적합니다.

노동계도 지난 2년간 공익위원들이 제시한 산식에 불만을 품긴 마찬가지입니다.

지난 11차 전원회의에선 "벌써부터 결정 산식에 저율의 거시지표만 활용하는 것은 경제적인 논리로만 접근해 최저임금을 결정하겠다는 것과 다름 없다"며 "이는 사용자와 고용주 입장만을 고려한 결정"이라는 비판이 나왔는데요.

노동계는 현행 최저임금법이 정하고 있는 가구생계비, 유사근로자 임금, 노동생산성, 유사근로자 임금 등을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 "노사 모두 불만"…최저임금 결정체계 이젠 바꿔야

노사 모두가 만족스럽지 못한 최저임금 결정방식에도 이젠 변화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지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최저임금법에 '근로자의 생계비, 유사 근로자의 임금, 노동생산성 및 소득분배율 등을 고려해 결정해야 한다'고 명시돼있을 뿐, 구체적인 결정 기준은 없습니다.

공익위원들이 제시하는 산식은 결국 '임시 산식'일 뿐이란 얘기죠.

특히나 최저임금은 매년 결정될 때마다 정치적 논리와 정권 성향 등에 좌우돼 소모적인 갈등이 되풀이되는데요.

따라서 정부가 선진국 사례 등을 바탕으로 전문적이고 객관적인 최저임금 결정 기준을 만들어 안정성과 예측가능성을 높여야 한다는 주장이 나옵니다.

예를 들면, 노사가 낸 요구안만으로 결정하지 않고 전문가들이 물가지수와 성장률, 노동생산성 등 객관적인 경제 지표들을 종합해 정하는 식이 될 테죠.

해외 사례를 보면, 영국은 독립적인 전문가위원회에서 건의하면 정부가 수용하는 구조입니다.

프랑스는 정부 지시를 받지 않는 '독립된 전문가그룹'이 매년 단체협상 국가위원회와 정부에 법정 최저임금 인상률에 대한 보고서를 내는데요.

보고서를 받은 정부는 단체협상 국가위원회를 소집해 노사 대표 의견을 들어 최종적으로 인상률을 결정하는 방식을 택하고 있습니다.

독일은 우리나라와 비슷한 최저임금 결정 체계를 갖고 있지만 한번 최저임금 수준을 정하면 2년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또 위원회 위원 중엔 학계 인사 2명도 포핟뫠 있어 표결권 없이 자문을 하는 역할을 합니다.

일본은 최저임금 수준을 지역과 산업별로 다르게 적용합니다. 모든 최저임금은 후생노동성 소속 중앙심의회가 결정하는데, 이후 각 지방심의회에서 지역별 최저임금을 정하는 방식입니다.

노사합의로 결정되는 최저임금 고시와 관련된 규제도 걷어내야 한다는 지적도 제기됩니다.

다음해 예산안 확정을 위해선 예산 항목에 큰 영향을 끼치는 최저임금이 결정돼야 하기에 고용노동부는 서둘러 8월 5일까지 최저임금을 고시해야 하는데요.

최저임금은 노사와 공익위원들이 함께 모여 결정함에도 고시 대상이기에 규제영향평가 등 규제심사를 받아야 합니다.

이런 과정에서 최저임금이 결정됐더라도 고시까지 하루나 이틀 정도 더 시간이 걸리는 거죠.

이러한 불필요한 행정절차를 없애는 것도 최저임금 제도 개선을 위한 남은 숙제라 할 수 있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