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총선 극우정당 돌풍…경제난에 '우향우'

입력 2023-06-26 21:44


그리스 총선 결과 중도우파인 현 집권당 압승과 함께 극우 성향의 소수정당 3곳의 약진이 두드러졌다.

26일(현지시간) 폴리티코 등 외신에 따르면 전날 실시된 그리스 2차 총선 개표 결과 스파르타인당과 그리스적해결당이 4.64%, 4.44%의 득표율로 각각 12석씩 확보했다. 3.69% 득표율로 의회 입성 기준(3%)을 넘긴 승리당도 10석을 차지했다.

3곳 모두 극우 성향으로 분류되며 직전 총선 때까지만 해도 존재감이 미미했던 정당들이라고 외신은 짚었다.

그러나 이번 총선에서 이들 3개 정당은 모두 합쳐 34석으로 확보하면서 전체 300석 가운데 11%가량 차지하게 됐다.

무엇보다 이 중 비교적 신생 정당인 스파르타인당은 1980년대 네오나치 조직을 모태로 출범했던 '황금새벽당'을 계승하는 정당으로 여겨지고 있다. 반이민 정책 등을 기치로 내건 황금새벽당은 지난 2013년 좌파 성향 음악인이 황금새벽당원에 의해 살해되는 사건을 계기로 지도부가 무더기 유죄 판결을 받으면서 사실상 그리스 정치권에서 사라졌다.

당시 사건으로 징역 13년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인 황금새벽당 지도부 일리아스 카시디아리스는 지난달 1차 총선에서 '옥중 출마'하겠다고 선언했다가 대법원이 제동을 걸면서 무산됐다. 그러자 그는 이번 2차 총선을 앞두고 돌연 스파르타인당을 공개적으로 지지하고 나섰고, 이것이 이번 선거 결과에 적잖은 영향을 끼쳤다는 분석이 나온다.

극우 소수정당들의 약진은 중도우파이자 키리아코스 미초타키스 그리스 총리가 이끄는 집권 여당의 압승과 함께 유럽 정치권에 부는 '우향우' 바람의 연장선이다.

경제난이 심각한 유로존 국가들을 일컫는 'PIGS'(포르투갈·이탈리아·그리스·스페인 등 남유럽 재정위기 국가)에서 나타나는 공통된 현상이기도 하다.

지난해 이탈리아에서는 100년 만에 극우 성향의 조르자 멜로니 총리가 탄생했고, 지난달 스페인에선 우파 연합이 총선의 전초전으로 꼽히는 지방선거에서 승리를 거머쥐었다.

포르투갈에선 중도 좌파 사회당 소속이지만 중도 우파에 가까운 경제 노선을 보인 안토니우 코스타 총리가 지난해 1월 3선에 성공했다.

프랑스에선 유럽의 대표적인 극우 정치인인 마린 르펜이 이끄는 국민연합(RN)이 지난해 총선에서 하원 577석 가운데 89석을 차지해 원내 제2당으로 올라섰다. 르펜은 같은 해 치러진 대선에서도 2위를 차지해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과 결선에서 맞붙었고 차기 대선에서는 대통령 자리를 노려볼 만하다고 보고 있다.

지난 4월 핀란드 총선에서 승리한 우파 국민연합당은 이달 극우 핀란드인당을 포함한 3개 정당과 함께 새로운 연립정부 구성을 구성했다고 발표했다. 연정 구성이 마무리되자마자 핀란드인당이 요구해온 강경한 이민정책을 발표하기도 했다.

스웨덴도 작년 9월 총선에서 집권 중도좌파연합이 우파연합에 패배했고, 당시 돌풍을 일으킨 극우 포퓰리즘 정당 스웨덴민주당은 내각에는 참가하지 않으면서도 원내 제2당으로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헝가리의 경우 오르반 빅토르 헝가리 총리가 대표적인 극우 포퓰리스트 정치인으로 장기 집권하면서 반(反)이민 정책과 언론·사법부에 대한 정부 통제를 강화하고 있다.

이는 중동·북아프리카 지역에서 정치불안과 빈곤을 피해 유럽으로 이주하는 난민이 급증한 데다 작년 우크라이나 전쟁 여파로 인한 물가 급등, 에너지 위기 등 민감한 현안이 산적한 상황과 무관하지 않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유럽의 전통적 가치로 강조되는 민주주의, 다자주의, 인도주의 등 대신 민족주의, 포퓰리즘, 탈세계화 쪽으로 유권자 민심이 기울고 있다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이런 흐름이 내년 예정된 유럽연합(EU) 의회 선거에서도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한다.

벨기에 브뤼셀에 있는 싱크탱크인 유럽정책센터(EPC)의 야니스 에마노우일리디스 선임정책연구원은 내년 선거에서 새로운 정치적 연대가 형성될 가능성이 있다면서 "극단적인 세력에 의한 강력한 선거 결과로 '주류'에 대한 압박이 가중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사진=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