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우리나라에서 출산 기록은 있지만 출생 신고가 안된 아동은 2천236명(2015∼2022년생)에 달한다. 정부가 이들에 대한 전수조사를 실시하는 가운데, 사라진 아이들의 행방에 대한 여러 추정이 나온다.
출생신고가 되지 않은 아이들 중 상당수가 민간 기관이 운영하는 '베이비박스'(키울 수 없는 아기를 두고 가는 장소)에 유기됐을 가능성이 가장 큰 것으로 보인다.
23일 베이비박스를 운영하는 재단법인 주사랑공동체에 따르면 2009년 서울 관악구에 베이비박스를 설치한 이래로 올해 5월까지 약 15년간 베이비박스로 들어온 아기는 2천83명이다. 경기 군포의 또 다른 베이비박스로도 100명 이상이 들어왔다.
관악구 베이비박스의 경우 정부가 전수조사를 하는 대상 기간인 2015년부터 지난해까지 8년간 보호 아기 수만 보면 1천418명이다. 올해에는 5월까지 아기 42명이 베이비박스로 들어왔다.
2015∼2022년 베이비박스 보호 아기 1천418명 중 225명은 원가정(친부모)에 복귀했고 148명은 입양기관으로 갔다.
원가정 복귀와 입양 아동 373명은 상담을 통해 출생신고가 된 사례이고, 나머지 1천45명은 출생신고를 원치 않아 미아신고를 해서 관할 구청이 인계해 시설이나 입양을 갔다고 주사랑공동체는 전했다.
베이비박스로 유입된 아이들은 기관이 인계해 보호받게 되지만, '수원 냉장고 영아 시신' 사건처럼 살해됐거나 다른 장소에 유기됐거나, 불법으로 입양 거래된 범죄 사례도 적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주사랑공동체는 "정부 전수조사 대상 2천여명 중 베이비박스 사례를 제외하면 1천여명의 아기 중 다수는 유기에 의해 사망했거나 불법 인터넷 입양거래가 됐을 것으로 짐작한다"고 밝혔다.
실제 최근 속속 이같은 범죄 사례들이 확인되고 있다. 경찰에 따르면 경기 화성에서는 A씨(20)가 2021년 서울 한 병원에서 여아를 출산한 뒤 인터넷을 통해 만난 익명의 이들에게 아이를 넘긴 혐의로 수사를 받고 있다.
지난 3월 대구에서는 온라인으로 신생아를 불법 입양해온 30대 여성 B씨가 적발돼 구속된 일이 있었으며, 온라인에서 불법 입양을 하는 채널을 쉽게 찾을 수 있다.
이외에 나이가 어린 미혼모가 자신의 어머니(아기의 할머니) 등 다른 사람의 호적에 올리는 출생신고 사례나, 출산 후 출생신고 전 자연사하는 사례도 있을 것으로 추측된다.
일각에서는 출생신고가 된 아기만 입양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으로 입양특례법이 개정된 이후, 미혼모 등 출산 사실 자체를 숨기고 입양을 보내고 싶어하는 이들에게 입양 문턱이 높아져 유기나 불법 거래로 이어진다는 지적도 있다.
주사랑공동체도 "입양특례법 개정 이후 출생신고를 할 수 없는 미혼모 등이 베이비박스를 이용하며 보호 아기 수가 늘었다"며 "베이비박스로 보낸다면 아기 생명을 구하고 보호할 수 있으나, 그렇지 않은 경우는 유기나 온라인 거래 등으로 갈 수 있어 생명을 보장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번 수원 영아 살해 사건으로 출생 미신고 아동 보호가 사회적으로 큰 관심사가 되자, 정부와 국회 모두 그간 추진했으나 가시적 성과를 내지 못했던 의료기관 출생통보제와 보호출산제(익명출산제) 법제화에 속도를 내겠다는 입장이다.
보편적 출생신고제도가 출생 미신고 아동을 줄이는 데 효과가 있을 것으로 기대되는 가운데, 다만 임신·출산 자체를 숨기려는 산모를 '병원 밖 출산', 낙태, 신생아 유기 등을 하게 하는 부작용도 지적된다.
(사진=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