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바다에서 건져 올린 나치 독수리상을 녹여 비둘기 상으로 만들려 한 우루과이 정부가 관련 계획을 전격 취소했다.
'나치 독수리상 형상 그대로 보존해야 한다'는 국민적 여론이 들끓은 데 따른 결정이다.
19일(현지시간) 우루과이 일간지 엘옵세르바도르와 엘파이스 등에 따르면 루이스 라카예 포우 우루과이 대통령은 전날 오후 세로라르고주 멜로를 찾은 자리에서 현지 기자들에게 "나치 독수리상을 평화의 상징인 비둘기 상으로 재탄생시키려 했던 프로젝트를 진행하지 않기로 했다"고 말했다.
라카예 포우 대통령은 "저는 이번 프로젝트에 동의하지 않는 압도적인 다수의 의견을 받아들인다"며 "평화를 원한다면 먼저 단합부터 돼야 하는데, (이 프로젝트는) 평화를 담보하지 못하는 게 분명하다"고 설명했다.
'보존 또는 파괴' 중 어느 쪽을 선택해야 하는지를 두고 국제적으로도 갑론을박이 벌어졌던 논란의 독수리상은 애초 독일 전함 그라프 슈페호의 선미 부분에 붙어 있었다. 길이 3m·높이 2m에 육박하는 규모로, 나치 스와스티카 문양까지 뚜렷하게 새겨져 있다.
나치 독일은 교전 중 선체 고장을 일으킨 함정을 중립국인 우루과이(몬테비데오 항)로 이동시켰다가 1939년 침몰시켰다. 무게 350㎏ 이상의 독수리상 역시 배와 함께 바다로 가라앉았다.
이후 그라프 슈페호 잔해는 2006년 2월 민간 인양업자들에 의해 67년 만에 일부 햇빛을 보게 됐고, 독수리상도 함께 뭍으로 끌어 올려졌다.
다만, 동상은 "나치즘을 미화하려는 네오 나치파 등 손에 넘어가선 안 된다"는 이유로 곧바로 해군에서 관리를 맡았다.
그러자 인양에 참여한 투자자들은 2천600만 달러(약 330억원) 상당으로 추정되는 독수리상 소유권을 주장하며 정부와 수년간 소송전을 벌였는데, 최근 우루과이 법원은 최종적으로 정부 승소 판결을 했다.
라카예 포우 대통령은 지난 16일 직접 기자회견을 열어 승소 사실을 알린 뒤 "나치 독수리상을 녹여 얻은 재료를 활용해 평화의 상징인 비둘기 상을 만들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대해 우루과이에서는 독수리상 그 자체로서의 '역사적 가치'를 고려해 파괴해선 안 된다는 의견이 빗발쳤다고 현지 매체는 보도했다. 정부 결정에 찬성하는 여론도 있었지만, "박물관에 두고 보존할 것"을 요구하는 온라인 청원이 더 두드러지는 상황이었다고 한다.
대표 청원인인 펠리페 아르투치오는 "나쁜 것을 기억하고 그것을 대표하는 상징을 남기는 건 국제 사회 일원의 책임"이라고 청원 글에 썼다. 이 청원은 이틀 만에 1만8천명의 동의를 받았다.
여당에서도 일부 의원이 '나치 독수리상 파괴 방지법'안 제출 움직임을 보이기까지 했다.
애초 정부의 비둘기 상 제작 요청을 수락했던 우루과이의 유명한 조각가, 파불로 아트추가리는 자신의 소셜미디어에 "평화와 화합의 상징은 불화에서 비롯될 수는 없는 법"이라며 프로젝트 취소를 수용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