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달청 입찰에서 철근 가격과 낙찰 물량을 짜고 나눈 7개 제강사와 임직원 22명이 재판에서 전부 유죄를 선고받았다. 담합 규모만 무려 6조원 8천억원에 이르렀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4부(최경서 부장판사)는 19일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 위반 등 혐의로 기소된 현대제철 김모 전 영업본부장과 함모 전 영업본부장, 동국제강 최모 전 봉강사업본부장에게 징역 8∼10개월의 실형과 벌금 1천만∼2천만원을 선고했다.
불구속 상태로 재판을 받던 김씨와 함씨는 법정에서 구속됐다. 구속기소 됐다가 보석으로 풀려났던 최씨는 재구속됐다. 나머지 가담자 19명에겐 벌금형 또는 벌금·징역형에 집행유예가 선고됐다.
함께 재판에 넘겨진 현대제철 법인에는 벌금 2억원, 동국제강엔 벌금 1억5천만원, 대한제강·한국철강·와이케이스틸(야마토코리아홀딩스)·환영철강공업·한국제강에는 각 벌금 1억원이 선고됐다.
재판부는 김씨 등이 2012년 8월∼2018년 3월 조달청이 발주하는 철근 연간 단가계약 입찰에서 업체별 낙찰 물량과 입찰가격을 짬짜미해 경쟁을 제한한 공소사실 대부분을 유죄로 판단했다.
이들의 담합 규모도 공소사실대로 6조8천442억원 상당이라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피고인들은 낙찰 예정가격을 높이기 위해 민간용 철근 가격을 부풀린 자료를 조달청에 제출해 관수 철근 낙찰단가가 올랐다"며 "결국 조달청이 구매대금을 더 지출함으로써 국고가 손실됐다"고 질타했다.
재판부는 아울러 "철강업계에서 담합이 오랜 기간 관행으로 정착됐고 피고인들은 민간용 철근 판매 관련 담합에 대해 행정·형사 제재가 거듭되는 와중에도 관수 철근에 관한 담합을 중단하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재판부는 특히 담합에 관여한 임원들의 책임을 조목조목 따졌다.
재판부는 "담합은 회사별로 고위급 임원의 지시·묵인 → 담당 임원이나 간부급 직원의 구체적 실행 지시 → 실무 직원의 실행 구조로 장기간에 걸쳐 조직적으로 이뤄졌다"고 설명했다.
이어 "기업에선 의사결정권과 업무지시권한이 있는 임원들의 지시나 승인에 따라 직원들이 실무를 추진한다"며 "실무진이 구체적 실행행위를 대부분 수행했더라도 이를 지시한 임원의 책임이 더 무겁다"고 짚었다.
한편 재판부는 철강사들이 오랜 기간 담합한 배경에는 조달청의 행정 편의적 제도 운영도 있었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조달청은 입찰이 완료되면 여러 낙찰자에게 '최저입찰 가격'에 계약한다는 내용의 동의서를 받았다"며 "이는 결국 최저가가 지나치게 낮아지지 않게 업체들이 사전에 서로 협의할 유인을 만들었다"고 판단했다.
(사진=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