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부흥에 사활을 걸었던 1960년대에는 '덮어놓고 낳다 보면 거지꼴을 못 면한다', '우리집 부강은 가족계획으로부터'라는 표어가 유행했다.
이후 1980년대까지도 산아제한 정책은 이어졌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 '둘도 많다. 하나 낳고 알뜰살뜰'이라는 구호가 나왔었다.
기자의 학창 시절에도 '아들 딸 구별 말고 하나만 낳아 잘 기르자'라는 표어를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는데 어느새 이런 표어가 출산을 장려하는 쪽으로 슬슬 바뀌더니 2000년대 이후에는 '한 자녀보다는 둘, 둘보단 셋이 더 행복합니다'라는 표어가 등장하기도 했다.
출산은 물론 결혼조차 안 하는 인구가 늘면서 정부의 정책은 결혼과 출산을 장려하는 쪽으로 초점이 맞춰져 있다.
이런 정책에 부응하기 위해 국민연금에도 다자녀 가정에 주는 혜택이 있는데 '출산 크레딧'이 바로 그것이다.
출산크레딧, 15년간 56억원 지원
출산 크레딧이란 둘째 자녀 이상 출산 시 국민연금 가입 기간을 추가로 인정해 주는 제도이다.
자녀수가 2명이면 12개월을 인정해 주고, 3명부터는 자녀 1인당 18개월을 더 인정해 준다.
다만 아무리 자녀수가 많아도 최장 50개월까지만 가입 기간을 추가로 인정받을 수 있다.
예)자녀 2명 : 12개월
자녀 3명 : 30개월
자녀 4명 : 48개월
자녀 5명 : 50개월(최장 50개월 한도제한)
'출산 크레딧' 제도는 2008년 1월 1일부터 시행이 됐다.
2023년 2월 기준으로 출산크레딧 혜택을 받고 있는 사람은 4,482명.
2008년 시행 첫해 5명이던 지원 대상이 매해 꾸준히 늘어 2022년에는 4천 명을 넘어섰다.
2023년 2월을 기준으로 출산크레딧으로 지원된 금액은 총 56억 3,000만 원 수준.
아직까지 그 금액이 크진 않지만 고령화 시대 국민연금 수급자 수가 늘면서 지원액도 꾸준히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출산크레딧은 출산을 하고 난 뒤 바로 신청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노령연금을 받는 시기가 도달했을 때부터 혜택을 받는 구조이다.
때문에 저출산 시대에 접어들었어도 당장 그 혜택을 받는 인구가 줄어들지 않는다.
혜택 못받는 1자녀 이하 가구도 '출산크레딧' 재원 분담
출산크레딧으로 국민연금 가입 기간이 늘면 그 만큼 노후에 받는 연금액도 늘어난다.
가입자로서는 기뻐해야 할 일이지만 그 속내를 들여다보면 꼭 그렇지 만도 않다.
늘어난 혜택에 필요한 재원의 70%를 내가 내는 국민연금 보험료에서 충당하기 때문이다.
국가가 부담하는 부분은 30%에 불과하다.
국민연금법 제19조에는 '출산에 대한 가입 기간 추가 산입에 필요한 재원을 국가가 전부 또는 일부를 부담한다'라고 돼있기 때문이다.
매달 내가 내는 국민연금에서 출산 크레딧에 필요한 재원을 충당하다 나중에 나이가 들어 국민연금 받을 때 혜택을 돌려주는 구조인 셈이다.
'저출산 해소'라는 국가 차원의 정책 실현을 위해 내가 내는 국민연금 보험료가 쓰이고 있는 셈이다.
더 큰 문제는 출산크레딧 혜택을 받지 못하는 1자녀 이하인 국민연금 가입자도 이들 재원을 분담하고 있다는 점이다.
저출산 시대 자녀 1명 만을 낳거나 자녀 없이 부부끼리만 사는 가정도 늘고 있는데 이들 가정은 출산크레딧의 혜택은 받지 못하고 그에 필요한 재원 마련을 위한 부담만 떠안고 있는 처지에 놓여있다.
경력 단절 등으로 인한 국민연금의 사각지대를 줄이고, 출산 장려를 위해 도입된 '출산크레딧'.
하지만 혜택 없이 부담만 지는 또 다른 사각지대를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닌지 고민해 봐야 할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