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기 인류도 장례 치렀다? 학계 뒤집을 무덤 흔적

입력 2023-06-06 17:08


24만년까지 생존한 것으로 알려진 인류의 초기 종 '호모 날레디'가 시신을 땅에 묻고 벽을 꾸미는 등 장례를 치렀을 가능성이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연구팀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뇌 크기가 현생인류의 3분의 1에 불과해도 복잡한 사고를 할 수 있다는 해석이 가능해 고고학계가 들썩이고 있다.

5일(현지시간)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NYT)와 워싱턴포스트(WP) 등에 따르면 남아프리카공화국 비트바테르스란트대 고인류학자 리 버거 박사는 이날 미국 스토니브룩 뉴욕주립대 콘퍼런스에서 호모 날레디에 대한 새로운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호모 날레디는 버거 박사가 이끄는 탐사대가 2013년 남아공 요하네스버그 인근 동굴 '떠오르는 별'(Rising Star)에서 유골 화석을 발견하면서 세상에 알려졌다.

이날 버거 박사는 동굴 추가 조사 결과 호모 날레디가 시신을 매장했을 뿐 아니라 벽에 상징을 새겨 무덤의 위치를 표시하기까지 했을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주장했다.

버거 박사와 그의 팀이 내세우고 있는 근거는 타원형으로 움푹 팬 땅속에서 발견된 완전한 유골 화석과 인근 벽에 기하학 무늬로 파인 흔적들이다.

'무덤' 주위를 둘러싼 주황색 진흙층을 무덤 안에서는 채취할 수 없었고, 가장자리도 깨끗해 단순 침식에 의해 유골이 가라앉았다고 보기는 힘들다는 게 연구팀의 설명이다.

연구팀은 또 유골 인근에서 거북이와 토끼의 뼈가 불탄 흔적과 숯, 그을음 등이 발견됐다며 호모 날레디가 동굴로 들어가기 위해 불을 밝혔고 의식을 위해 동물을 요리했을 수 있다는 해석을 덧붙였다.

연구팀의 일원인 미 프린스턴대 아구스틴 푸엔테스 박사는 유골 수에 비춰 이러한 행위가 수백 년에 걸쳐 이어졌을 가능성도 제시했다.

그는 또 이러한 관행이 복잡한 의사소통 없이는 조성되기 힘들다는 점에서 일정 수준의 언어능력이 필요했을 수 있다는 점도 짚었다.

시신을 의도적으로 매장하는 건 현생인류가 유일하게 한 것으로 알려져 있고 가장 오래된 무덤도 7만~9만년 전 것으로 추정되는데, 연구팀은 24만~50만년 전 생존한 호모 날레디도 일종의 장례를 치렀다고 주장하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학계 일각에서는 현재까지 발견된 증거들만으로는 연구팀의 주장을 뒷받침하기는 힘들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스페인 인류진화연구센터의 마리아 마르티논-토레스는 유골이 완전히 정렬된 상태가 아니었다며 이를 매장이 아닌 시신을 동굴 바닥에 두는 행위를 뜻하는 '캐싱'(caching)으로 봐야 한다고 반박했다.

호주 인류진화연구센터의 마이클 페트라글리아도 구체적인 퇴적물 분석자료가 필요하다고 강조했고, 영국 더럼대 고고학자 폴 페티트는 유골이 동굴에 휩쓸려 들어갔을 가능성을 언급하기도 했다.

벽 무늬와 불 사용의 흔적 등은 현생인류가 수천 년 뒤에 만들어낸 흔적일 수 있다는 분석도 나왔다. 연구팀은 벽화와 숯, 그을음 등 표본을 조사할 예정이나 이 작업에는 수년이 소요될 수도 있는 상황이다.

NYT는 연구팀의 주장이 사실로 확인되면 인류 진화에 대한 중요한 가정 가운데 하나가 뒤집힐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고인류학자들은 뇌가 클수록 복잡한 사고가 가능하다고 추정해왔는데, 호모 날레디가 장례를 치를 정도였다면 이러한 전제 설정이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사진=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