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는 29일 '자사주 소각 의무화'를 포함해 일각에서 거론되는 자사주 제도 개편과 관련 "기업 경영과 주주 이익에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다"며 제도 도입에 신중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전경련은 작년 매출 기준 상위 100대 코스피 상장사(공기업·금융사 제외)의 최근 5년간 자사주 취득·처분·활용 동향 조사 결과를 근거로 이같이 밝혔다. 조사에는 각사 사업보고서가 활용됐다.
일각에서는 '코리아 디스카운트'(국내 증시 저평가) 해소 및 주주이익 환원 강화 차원에서 자사주 소각 의무화를 거론하고 있다. 금융위원회도 지난 1월 윤석열 대통령에게 보고한 올해 업무보고에서 자사주 관련 규제를 강화할 방침이라고 밝힌 바 있다.
전경련은 자본시장법 개정 등으로 자사주 소각을 강제할 경우 적지 않은 부작용이 나타날 것으로 우려했다.
우선 기업들이 자사주 규제 강화 등에 대비해 보유한 물량을 대거 주식 시장에 풀 경우 주가 하락으로 막대한 소액주주 피해가 발생할 수 있다는 예측이다.
전경련 분석에 따르면 작년 매출 상위 100대 코스피 상장사 중 86곳은 31조5천747억원어치의 자사주를 보유했다. 코스피 전체 기업(797개사) 중 자사주를 보유한 624개사의 자사주 총액은 52조2천638억원으로 추산됐다.
또 '자사주 소각 의무화'는 법률 간 충돌을 부를 수 있다는 것이 전경련의 주장이다. 기업들은 2011년 개정 상법에 따라 배당 가능 이익 범위 내에서 자사주를 취득·처분할 수 있게 됐는데, 자본시장법이나 시행령에 소각 강제 조항을 넣으면 상법과 배치되거나 상위법에 어긋날 수 있다는 것이다.
아울러 기업 경영권도 위협할 수 있다고 전경련은 주장했다.
전경련은 "해외 주요국의 신주인수선택권(포이즌 필)이나 차등의결권 등의 효율적 방어 기제가 국내 기업에는 허용되지 않아 자사주가 그간 거의 유일한 방어 수단이었다"며 "자사주 소각이 강제될 경우 해외 투기자본의 경영권 위협이 더욱 빈번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전경련은 그간 국내 기업들이 주가 부양이나 주주가치 제고 등을 위해 자사주를 전략적으로 활용해 온 만큼 기업 자율에 맡겨야 한다고 주장했다.
전경련에 따르면 2018년 이후 상위 100대 코스피 상장사가 낸 자사주 취득 예정 공시 56건 중 37건(66.1%)은 '주주가치 제고'가 목적이었다. 이어 임금·성과 보상이 11건(19.6%), 이익 소각 6건(10.7%), 우리사주조합 등 출연 2건(3.6%) 등이었다.
기업의 자사주 소각 실적 규모는 2018년 이후 지난 5월 19일까지 5년여간 총 29건, 13조2천430억원으로 나타났다. 삼성전자의 2018년 7조1천억원 소각과 SK텔레콤의 2021년 1조9천억원 소각 등이 대표적이다.
올해 들어서는 이미 9천667억원(6건)이 소각돼 작년 한 해 1조1천286억원(6건)의 85.7%에 달했다.
추광호 전경련 경제산업본부장은 "이미 기업들이 배당 확대나 자사주 소각 등으로 주주환원 정책을 적극 펼치고 있는 만큼 기업 현실에 맞는 자사주 정책이 일관되게 유지돼야 한다"고 말했다.
(사진=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