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당국이 은행권의 투자일임업 전면 허용 여부를 놓고 검토에 들어가면서 업권간 갈등이 다시 불거지는 모습이다. 당국은 지난 2007년, 2013년, 2016년 등 서너 차례에 걸쳐 해당 안을 검토했지만 “기울어진 운동장”이라는 증권사들의 거센 반발에 결국 이를 허용하지 않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은 바 있다.
투자일임업은 고객으로부터 위임을 받아 고객 자산을 대신 운용해주는 것을 말한다. 현재 증권사, 보험사는 별다른 제한 없이 일임 서비스 제공이 가능하고, 은행권만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 ISA로 한정해서 일임업을 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은행권을 향한 일임업 전면 허용을 놓고서는 다양한 의견들이 나온다. “자본력이 막강한 은행들이 일임업까지 진출할 경우, 중소 증권사들의 어려움이 가중될 것”이란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는가 하면, “고객들의 투자성향은 확연히 구분되어있고 이에 따라 주로 거래하는 금융회사가 결정되는 만큼 대규모 고객 이동은 기우”라는 견해도 있다. 그렇다면 실제로는 어떨까.
은행들의 일임업을 한정적으로 허용하고 있는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ISA)를 보면, 증권업권의 점유율은 2016년 31.1%에서 올해 38.3%로 늘었다. (2016년 5월말 31.1%→2023년 3월말 38.3%, 투자금액 기준) 오히려 은행업권의 점유율이 낮아졌다. (2016년 5월말 68.9%→2023년 3월말 61.7%) 일임형 ISA 점유율만 따로 떼어놓고 봐도 결과는 비슷하다. 은행업권의 일임형ISA 점유율은 10.5%로 일임형 상품 출시가 시작된 2016년과 크게 달라진 것이 없지만, 같은 기간 증권업권 점유율은 4.7%에서 7.4%로 유의미하게 증가했다.
은행권이 일임업에 뛰어들 경우, 되레 금융소비자들이 피해를 볼 수 있다는 주장도 있다. 고객들은 ‘은행은 원금이 보장되는 안전한 곳’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은행의 투자일임에 대해서도 원금 보장을 기대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충분히 가능성 있는 이야기다. 하지만 이 부분에 대해서는 은행권이 평판 리스크를 감수하면서까지 일임업을 공격적으로 영위하지 않을 것이라는 데 조금 더 무게가 실리고 있다. 은행의 일임업은 주식처럼 하이리스크 하이리턴 스타일의 투자를 지향하기보다는, 안정적인 수익 창출을 위한 자산 배분에 더 초점을 맞추지 않겠냐는 것이다. 투자일임이라고 해서 반드시 고위험 상품에만 투자할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
구더기 무서워서 장을 담글 수 있다면, 장은 세상에 존재할 수 없다. 일단 해 보고, 구더기가 나온다면 그것을 어떻게 해소할 수 있을지, 그 방법을 찾는 데 초점이 맞춰져야 하지 않을까. 더구나 금융소비자들은 이제 예전의 금융소비자들이 아니다. 서적, 인터넷, 유튜브 등 각종 채널을 통해 전문가들보다 더 전문적인 금융투자 지식을 보유한 이들이 넘쳐난다. 과거에는 금융소비자들을 보호한다는 명분 아래 각종 규제로 여기저기를 틀어막았다지만, 이제는 금융소비자들을 믿고 그들의 선택권을 넓혀야 할 때가 온 것이다. 물론 자산관리 시장 전체 파이를 키울 수 있다는 점에서도 은행권에 대한 일임업 허용은 긍정적으로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 증권사와 자산운용사는 투자일임에서 연기금 등 기관 투자자의 비중이 높아 개인 자산관리 문화를 정착시키는 데 한계가 있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현재 은행권은 일임업 전면 허용이 어렵다면 공모펀드·로보어드바이저에 한해 부분적으로라도 허용해 달라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관건은 금융당국이 어떤 결정을 내리느냐다. 금융위원회는 지속적인 논의를 통해 6월 중 은행권의 비이자이익 다각화 방안을 내놓는다는 방침인데, 그 일환으로 일임업을 허용할지 여부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