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인생을) 여러분과 함께 해왔습니다. 제 나이가 올해 몇인 줄 아시죠? '오십 다섯'입니다. 아직 괜찮습니다."
부산항에서 세렝게티까지. 그리고 솔로 1집의 '창밖의 여자'에서 지난달 발표한 '필링 오브 유'(Feeling of you)까지.
13일 밤 서울 잠실종합운동장 올림픽주경기장에서는 '가왕'(歌王)이 걸어 온 지난 55년 역사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졌다.
조용필의 단독 콘서트 '2023 조용필 & 위대한탄생 콘서트'에서다. '가왕'은 '꿈의 공연장'으로 불리는 주경기장에서 역대 최다인 여덟 번째 단독 콘서트로 자신의 역사를 집대성한 25곡을 풀어냈다.
조용필이 별무늬 셔츠에 검은 외투를 입고 오프닝 무대 '미지의 세계'를 부르자 공연장은 떠나갈 듯한 환호로 가득 찼다. 마음만은 '단발머리 소녀'로 돌아간 팬들은 여기저기서 "오빠"를 외쳤다. 첫 무대부터 화려한 폭죽이 무대 위를 '펑펑펑' 수놓았고, 푸른색 레이저는 주경기장 곳곳을 휘저었다.
그는 '그대여', '못찾겠다 꾀꼬리'를 연이어 부르고서 "오늘 저하고 같이 노래하고 춤도 추고 마음껏 즐기자"고 말했다.
조용필은 기타를 연주하며 한음 한음 꾹꾹 눌러 부르는가 하면, 고개를 뒤로 살짝 젖히고 하이라이트 고음도 시원하게 질렀다. 특유의 쫀쫀한 창법은 녹슬지 않았고, 두 팔로 타는 박자도 여전히 예리했다.
눈동자를 연상시키는 거대한 반원형 전광판이 빚어낸 화려한 볼거리도 시선을 압도했다. 여기에 조용필이 무료로 배포한 응원봉은 노래에 맞춰 일사불란하게 색깔이 변해 장관을 연출했다.
조용필이 지난해 발표한 '세렝게티처럼'이 흘러나오자 전광판에는 광활한 초원이 나타났다. '여기 펼쳐진 세렝게티처럼'을 부르는 부분에서는 별이 쏟아지는 밤하늘이 펼쳐져 객석에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가왕은 어깨를 살짝 들어 올리며 더욱 힘주어 노래를 이어갔다.
조용필은 특히 평소 공연에서 잘 부르지 않던 초기 히트곡들도 팬들에게 선물했다. '돌아와요 부산항에', '창밖의 여자', '잊혀진 사랑' 등이다.
그는 "'돌아와요 부산항에'를 하도 안 하니까 항의가 오더라"며 "'잊혀진 사랑'은 사실 여러분들의 곡이다. 저는 TV에서 한 번도 그 노래를 불러본 적이 없다"고 말하며 웃었다.
그 유명한 '비련'의 첫 소절 '기도하는∼'이 나오자 3만5천 관객은 약속이라도 한 듯이 '꺄' 하는 비명으로 화답했다. 조용필은 이 노래를 가리켜 "여러분의 소리가 나오는 노래"라고 했다.
관객들은 명곡들을 '떼창'으로 따라부르며 호응했다.
공연이 펼쳐진 주경기장은 조용필과 역사를 함께 한 곳이다. 그는 일찍이 이곳에서 열린 1988 서울올림픽 전야제 무대에 올라 '서울 서울 서울'을 불렀다고 했다. 조용필은 당시의 영상을 배경으로 이 곡을 오랜만에 팬들에게 들려줬다.
그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한동안 콘서트를 열지 못하다가 지난해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에서 4년 만에 공연을 열어 4만장 전석을 매진시키는 기염을 토했다. 조용필은 "연습은 많이 했지만 굉장히 떨리고 부푼 마음을 어찌할지 몰랐다"고 돌아봤다.
조용필은 '필링 오브 유'를 비롯해 '찰나' 등 지난해부터 선보인 신곡을 화려한 영상을 배경으로 들려줬다.
공연은 '쿵쿵' 포효하는 듯이 울리는 기타 사운드가 흥겨운 '모나리자'와 '여행을 떠나요'에서 분위기가 최고조로 달아올랐다. 관객들은 모두 약속한 듯 일어나 응원봉을 흔들며 노래를 따라불렀다.
조용필은 '킬리만자로의 표범'과 '바운스'(Bounce)를 앙코르곡으로 부르고서 약 2시간에 걸친 공연을 마무리했다. 그는 객석 여기저기를 바라보며 "감사합니다"를 연달아 외치며 팬 서비스도 잊지 않았다. '바운스' 도입 부분에서는 그답지 않게 박자를 놓치고서 멋쩍은 듯 미소를 지어 보였다.
가왕의 명성에 걸맞게 이날 주경기장 인근은 이른 오후부터 인파로 가득 찼다. 중·장년 관객이 주를 이루는 가운데 부부, 모녀, 고부, 형제자매 등 다양한 사연을 지닌 팬들이 들뜬 표정으로 주경기장을 찾았다. 입장하는 부모를 배웅하며 '조심히 보시고 끝나면 연락 달라'고 당부하는 자녀들의 모습도 심심치 않게 눈에 띄었다.
주경기장 입구 인근에는 조용필의 커다란 등신대 이미지도 세워졌다. 이 앞에는 조용필과 함께 사진을 찍으려는 '원조 오빠부대'의 긴 줄이 여느 K팝 아이돌 부럽지 않게 늘어섰다. 팬들은 '오빠!'라고 적힌 티셔츠를 맞춰 입고 '떙큐 조용필!'이라고 쓰인 피켓을 든 채 주경기장을 가득 채웠다.
서울 동작구에서 두 여동생과 함께 콘서트를 관람한 김미자(65)씨는 "조용필 음악의 힘은 감성과 날카로운 가창력에 있다고 본다"며 "자그마한 체구에서 나오는 폭발적인 가창력은 누가 흉내를 내고 싶어도 낼 수가 없다. 여기에 반해 30년 넘게 팬을 하고 있다"고 말하며 즐거워했다.
조용필 팬클럽 '이터널리'의 남상옥(55) 회장은 10대 초반이던 지난 1979년 겨울 TV에서 조용필을 접하고 팬이 된 이래 44년째 애정을 쏟고 있었다.
남 회장은 "조용필이라는 뮤지션은 끊임없이 도전하는 분이다. 새로운 음악을 위해 대중에게 끌려가지 않고 오히려 대중을 이끌어나가는 분"이라며 "팬들이 쫓아가기에 너무 힘든 음악이지만, 그런데도 우리가 사랑할 수밖에 없는 세련된 음악을 만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