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통화 시대…달러화는 어떻게 되나? [국제경제읽기 한상춘]

입력 2023-04-24 07:53


2020년 5월부터 중국은 쑤저우, 선전, 청두, 슝안 신구 등 4개 지구에 디지털 위안화를 시범 운용했다. 코로나 사태로 당초 일정보다 상당기간 늦춰지지 않겠느냐는 예상과 달리 오히려 앞당겨 추진됐던 것은 앞으로 다가올 디지털 통화 시대에 주도권을 확보하려는 시진핑 국가주석의 야망이 깔려있기 때문이다.

디지털 위안화는 비트코인을 비롯한 가상화폐와 페이스북이 계획하고 ‘리브라’의 한계를 극복했다는 점에서 성공 가능성이 높게 평가돼 왔다. 실물 화폐와 달리 자체적으로 가치가 없는 화폐가 교환 수단, 가치저장, 회계 단위 등과 같은 3대 기능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발행기관과 법정화 여부가 중요하다. 디지털 위안화는 인민은행이 직접 발행하는 ‘중앙은행 디지털 화폐(CBDC?central bank digital currency)’로 두 가지 문제를 해결했다.

현재 통용되는 위안화와 디지털 위안화를 1대 1로 교환해 구권을 신권을 교체할 때 단행하는 리디노미네이션에 대한 우려도 불식시켰다. 인민은행이 발행한 디지털 위안화를 은행을 통해 현재 위안화를 예치한 만큼 금융 소비자의 전자수첩에 넣어줘 사용토록 하는 국가결제 시스템을 채택하고 있기 때문이다. 시간이 지나면 은행도 빠질 것으로 예상된다.

4개 시범 지구에 도입되는 디지털 위안화는 의외로 빨리 정착되는 추세다. 통제력이 강한 중국으로서는 내부적으로 정착시키는 데는 별다른 어려움이 없는 데다 나라 밖으로도 세계1위 수출 대국으로 부상한 점을 감안하면 경상거래부터 디지털 위안화 결제 비중이 의외로 빨리 올라가고 있기 때문이다.



바짝 긴장한 각국 중앙은행도 디지털 통화를 도입하기 위해 속도를 내고 있다. 중국보다 앞서 스웨덴은 2020년 2월부터 ‘e-크로나’를 도입했다. 유럽중앙은행(ECB)와 일본은행(BOJ)도 디지털 통화 도입 방침을 확정했다. 국제결제은행(BIS)에 따르면 세계 모든 중앙은행의 90%가 도입을 전제로 디지털 통화를 검토가 끝난 것으로 조사됐다.

아마존, 구글 등 기업권력이 국가권력까지 넘보는 것을 견제할 목적으로 유보적인 입장을 취했던 Fed도 바이든 정부 출범을 기점으로 ‘디지털 달러화’ 도입 일정을 앞당기고 있다. Fed는 코로나 사태에 대처하기 위해 최종 대부자 역할을 포기했다는 비판을 받을 만큼 ‘무제한 달러화 공급’이라는 출범 이래 가보지 않는 길을 걷고 있다.

Fed의 무제한 양적완화로 달러 가치를 유지하지 못할 경우 기축통화국인 미국인 더이상 ‘글로벌 시뇨리지(화폐발행차익)’ 특권을 누리지 못하게 된다. 반면 미국을 제외한 다른 국가는 브레튼우즈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부담했던 과다 달러화 보유 구속. 즉 달러 함정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 특히 중국이 그렇다.

Fed가 달러 가치를 유기하기 위해 가장 간단하고 손쉬운 방법은 풀린 달러화를 환수하는 출구전략을 추진하는 방안이다. 하지만 2015년 12월 금리 인상 이후 추진됐던 출구전략 과정에서 입증됐듯이 실행에 옮기기는 쉽지 않다. 미국 학계를 중심으로 달러 가치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화폐개혁을 단행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는 것도 이 때문이다.



달러 가치 유지를 위해 논의되어 온 방안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트럼프 정부 때 거론됐던 ‘금본위제 부활’이다. Fed가 달러화 공급 계획이 발표될 때마다 인플레이션 우려와 함께 금값이 오르는 것도 이 요인이 한몫하고 있다. 하지만 절대적인 금 공급량 제한과 금 보유국에게 또 다른 특혜가 집중된다는 점에서 실행에 옮기기는 사실상 어렵다.

다른 하나는 디지털 위안화 발행을 계기로 ‘디지털 달러화’ 도입을 앞당기는 방안이다. Fed는 디지털 통화 시대가 닥칠 것에 대비해 오래전부터 대책반을 구성해 준비해 왔다. 현재 통용되는 달러화와 별도로 ‘디지털 달러화’를 언제든지 발행할 수 있는 단계까지 와있다는 평가다. 페이스북의 ‘리브라’를 디지털 달러화로 격상시키는 방안도 논의됐으나 발권력, 통화량 산출, 통화정책 유효성 확보 등에 난제가 따라 더는 검토되지 않는다.

디지털 위안화가 조기에 정착될 경우 ‘디지털 달러화’와 또 다른 형태의 기축통화 전쟁이 앞당겨질 것으로 예상된다. 시진핑 체제 출범 이후 중국은 일대일로 계획, IMF(국제통화기금)의 SDR(특별인출권) 편입,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설립 등을 통한 위안화 국제화 과제를 추진해 국제금융시장에서 자국의 위상에 걸맞은 영향력을 확보하려고 노력해 왔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가장 먼저 들이닥칠 디지털 국제통화질서에서 디지털 위안화를 기축통화로 구축할 경우 중국은 글로벌 화폐발행차익을 얻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국제금융시장에서 자국 금융사의 자금조달 효율성과 편리성을 도모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세계화가 진전되기 시작한 1990년 이후 미국은 글로벌 화폐발행차익을 연간 23∼118억 달러로, 전체 조세수입의 0.4∼1.8%에 달하는 큰 혜택을 누려온 것으로 추정된다.

디지털 통화 시대가 전개될 경우 각국 중앙은행은 ‘통화정책을 어떻게 수행할 것인가’ 하는 또 다른 과제를 해결해야 한다. 분명한 것은 네트워킹 효과와 수확 체증의 법칙이 적용되는 디지털 통화 시대에서는 각국 중앙은행은 전통적인 목표인 ‘물가 안정’에만 둘 수는 없다. 아마존 효과 등으로 물가가 크게 올라갈 확률이 적을 뿐만 아니라 기준금리 변경, 유동성 조절 등과 같은 종전의 통화정책 수단도 무력화되기 때문이다.

통화와 관련된 모든 정보를 다른 경제주체도 공유가 가능해짐에 따라 ‘정보의 비대칭성’을 전제로 한 중앙은행의 시장 주도 기능도 약해질 수밖에 없다. 즉, 중앙은행과 시장 참여자 간 관계가 ‘수직적’이 아니라 ‘동반자적’으로 변한다는 의미다. 이 과정에서 중앙은행 위상, 금융시장 효율성 지표인 기준금리와 시장금리 간 체계는 약화가 불가피하다.

우려되는 것은 각국 국민이 적응할 수 없을 정도로 환경이 급변함에 따라 ‘새로움과 복잡성’에 따른 위험이 증대되고 화폐개혁 논의도 지속될 가능성이 높은 점이다. 유사 금융행위도 판치게 된다. 이런 환경에 맞춰 금융감독이 새로운 옴니버스 방식 등으로 접근하지 할 경우 각국 국민의 화폐생활에 있어서는 일대 혼란이 초래될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도 앞으로 화폐개혁 논쟁은 국민의 저항이 높은 ‘리디노미네이션’보다 ‘디지털 원화’를 도입하는 쪽으로 초점이 맞춰지고 있다. 바람직한 방향이다. 주무부서인 한국은행은 ‘디지털 원화’를 발행할 것인가를 시작으로 중앙은행 목표 수정, 디지털 통화지표 개발, 통화유통속도와 통화승수 무력화 방지, 통화정책 관할 범위 확대, 통화정책 전달경로 유효성 점검, 경기 예측력 제고 등의 과제를 사전해 준비해 놓아야 한다. 그 어느 국민보다 현찰에 애착을 느끼는 한국의 부자들은 그때 가서야 디지털 원화에 관심을 보일 것으로 예상된다.

한상춘/한국경제TV 해설위원겸 한국경제신문사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