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에서 전세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한 피해자들 중 3명이 극단적 선택을 한 가운데 이들에게 전세 사기 피해를 입힌 '건축왕'의 정체에 관심이 모이고 있다.
이 세입자들이 살던 빌라나 아파트의 집주인은 명의만 빌려준 '바지 임대인'들이었고 그 뒤에는 주택 2천700채를 보유한 이른바 '건축왕'으로 불리는 건축업자 A(61)가 있었다.
17일 경찰 등에 따르면 이날 오전 2시 12분께 인천시 미추홀구 아파트에서 30대 여성이 의식을 잃은 상태로 지인에게 발견됐다가 병원 이송 중 숨졌다.
앞서 지난 2월 28일과 지난 14일에도 인천에서 20∼30대 전세 사기 피해자 2명이 잇따라 사망했다.
극단적 선택을 한 이들 모두 A씨가 미추홀구 일대에 직접 지은 빌라나 아파트에 전세로 살던 세입자였다. 각자 전세 보증금 7천만∼9천만원을 돌려받지 못했다.
전셋집에 입주하면서 보증금을 줄 당시 이들과 계약한 이들은 A씨와 조직적으로 짜고 명의자 행세를 한 바지 임대인이었다.
A씨의 임대사업은 2009년부터 시작됐다. 공인중개사나 중개보조원의 명의를 빌려 토지를 사들인 뒤 자신이 운영하는 종합건설업체를 통해 1∼2개 동만 짓는 이른바 '나홀로 아파트'나 저층 빌라를 신축했다.
아파트나 빌라가 준공되면 이를 담보로 은행에서 주택담보대출을 받았고, 동시에 전세를 놓아 보증금도 손에 쥐었다. 보증금과 주택담보 대출금을 모아 또 공동주택을 신축하는 식으로 그가 늘린 아파트·빌라·오피스텔은 2천700채에 달했다.
공인중개사들은 월급 200만∼500만원과 함께 실적에 따라 성과급을 A씨로부터 받고 범행에 가담했다.
그러나 매달 부담해야 하는 은행 대출이자와 관리비를 감당하지 못할 정도로 A씨의 자금 사정이 나빠지자 아파트와 빌라가 경매에 넘어가기 시작했고, 세입자들은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한 채 길거리로 내몰릴 상황이 됐다.
현재 구속 상태인 A씨는 공인중개사 등 공범 9명과 함께 사기와 공인중개사법 위반 등 혐의로 기소돼 현재 재판을 받고 있다. 이번 사건의 피고인 10명 중 A씨를 포함한 4명은 구속 기소됐고, 나머지는 불구속 기소됐다.
A씨 등은 지난해 1∼7월 인천시 미추홀구 일대 아파트와 빌라 등 공동주택 161채의 전세 보증금 125억원을 세입자들로부터 받아 가로챈 혐의 등을 받는다.
A씨는 지난 5일 열린 첫 재판에서 비교적 담담한 표정이었으며, 변호인은 통해 "(검찰 공소장의) 사실관계는 대체로 인정한다"면서도 사기 혐의는 전면 부인했다. A씨 변호인은 법정에서 "법리상으로는 사기가 될 수 없다"며 "검찰의 법 적용에 문제가 있어 보인다"고 주장했다.
공범들도 "(A씨 회사에서) 직원으로 일했을 뿐"이라며 사기 혐의를 부인하거나 "1만6천쪽에 달하는 검찰 기록을 아직 복사하지 못했다"며 혐의 인정 여부를 밝히지 않았다.
이번 전세사기 사건으로 이미 기소된 A 등 10명 외 나머지 공범 51명도 현재 경찰 수사를 받고 있다. 이들도 조만간 검찰에 송치될 전망이다.
경찰 관계자는 "우선 1차로 10명을 검찰에 송치했고, 추가로 공범들을 계속 수사하고 있다"며 "전세사기 혐의 액수는 계속 늘어날 듯하다"고 말했다.
(사진=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