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크롱 서명만 남은 연금개혁법...파리는 시위 긴장 고조

입력 2023-04-15 06:31


프랑스 헌법위원회는 14일(현지시간) 정부가 하원에서 표결하지 않고 통과시킨 연금개혁법안을 부분적으로 승인했다고 BFM 방송, AFP 통신 등이 전했다.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은 수일 내 연금개혁법에 서명할 예정이지만, 노조는 이 경우 더 이상 대화는 없을 것이라며 강경 투쟁 의지를 밝혔다.

한국의 헌법재판소 격인 헌법위원회는 연금 개혁 법안의 위헌 여부를 따져본 결과 핵심인 퇴직 정년을 기존 62세에서 2030년까지 64세로 연장하는 조항이 헌법과 합치한다고 판단했다. 헌법위원회는 연금개혁법안에 담긴 전체 36개항 중에서 6개 항은 헌법에 불합치한다고 보고 삭제했다.

지난 3개월 동안 총 12번의 전국 단위 반대 시위와 대중교통, 에너지, 교육 부문 등에서 파업을 촉발한 연금 개혁 법안은 이제 마크롱 대통령의 서명만 받으면 발효된다. 마크롱 대통령의 측근은 마크롱 대통령이 "며칠 안에" 서명할 계획이라고 밝혔고, 올리비에 뒤솝트 노동부 장관은 애초 계획대로 9월 1일부터 시행에 들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정년 연장 계획 철회를 촉구하며 12년 만에 연합 전선을 구축한 주요 8개 노동조합은 마크롱 대통령이 연금개혁법안에 서명한다면 노조와 대화할 일은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정년 연장에 가장 적극적으로 반대하고 있는 강경 좌파 성향의 노동총동맹(CGT)을 이끄는 소피 비네 사무총장은 노동절인 5월 1일 대대적인 연금개혁 반대시위를 예고했다.

이날 헌법위원회의 발표가 있고 나서 파리시청 주변으로 1천명 이상이 몰려들었고, 공공 자전거에 불을 지르는 등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경찰은 파리에만 이날 1만여명이 나올 것으로 예상했다.

하원 제1야당인 좌파 연합 뉘프(Nupes)의 주축인 장뤼크 멜랑숑 굴복하지않는프랑스(LFI) 대표는 트위터에 "싸움은 계속될 것"이라는 글을 올리며 "힘을 모아야 한다"고 독려했다. 마크롱 대통령과 2017년, 2022년 대선에서 맞붙었던 극우 성향의 마린 르펜 국민연합(RN) 의원은 "연금개혁법안의 정치적인 운명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며 투쟁을 예고했다.

반면 엘리자베트 보른 총리는 연금개혁법안이 내용상으로나, 절차상으로나 헌법과 일치한다는 판단을 받아 민주적인 절차의 끝에 이르렀다며 "오늘 밤에는 승자도, 패자도 없다"는 글을 올렸다.

마크롱 대통령은 연금 제도를 손보지 않으면 10년 안에 매년 수십억 유로의 적자를 기록할 것이라며 정년을 다른 이웃 유럽 국가들과 비슷한 수준으로 끌어올려야 한다고 설파해왔다. 이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노동자의 정년을 올릴 게 아니라 엄청난 돈을 벌어들이는 부자들에게 세금을 더 걷는 등 다른 방식으로 연금 제도를 보완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마크롱 대통령은 지난달 여소야대 하원에서 연금개혁법안 부결 가능성이 커지자 표결을 생략하는 헌법 제49조3항을 사용하면서 가뜩이나 연금개혁에 불만인 민심에 불을 질렀다.

(사진=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