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9시간'에 갇힌 근로제 개편…'생산성' 고민할 때 ['통(統)'의 경제]

입력 2023-04-16 06:00
◆ "일하는 시간 줄이면서 소득은 안 떨어지게"

정부가 추진 중인 근로시간 개편이 계속 표류 중입니다.

당초 정부안의 핵심이었던 '유연화'는 ‘69시간’까지 일하는 상황을 야기하는 도구로 전락했습니다. 반대 여론에 부딪혀 정책 추진에 속도가 나지 않고 있는 가운데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은 근로기준법 개정안 폐기를 촉구하고 있습니다.

사실 대통령실 참모들과 정부 관계자들의 의견을 들어보면 윤석열 대통령의 청사진은 단순히 근로시간을 유연화하는게 아닙니다. 얼마 전 만난 한 정부 관계자는 현재의 상황을 답답해 하면서 "대통령의 생각은, 근로시간을 유연화시켜 일하는 시간은 짧아지면서도 소득은 안 떨어지게 해주라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지난 3월 발표한 정부안에 따르면 현재의 52시간제를 1년 단위로 유연화해 주 평균 48.5시간을 근무하게 됩니다. 특정한 주에 69시간까지 일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지만 평균으로 따지면 48.5시간제란 설명입니다. 장기적으로 총 근로시간을 줄여 나가겠다는 의지를 담고 있습니다.

다만 직장에서 적게 일하더라도 수입이 줄어들면 안 될 것입니다.고정된 지출이 있는데 버는 돈이 줄어들면 퇴근 후 배달이나 대리운전 등 부업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전문가들은 결국 해법은 생산성을 높이는데서 찾아야 한다고 조언합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근로시간 당 부가가치 창출을 나타내는 시간당 노동생산성은 우리나라가 2021년 기준 42.7달러입니다. 미국(74.1달러)의 57.6%, 독일(68.3달러)의 62.5%, 호주(57.0달러)의 74.9%에 불과합니다. 일본(45.5달러)과 비교해도 93.8% 수준입니다.



◆ 업무 몰입도 상향·인적 자본 역량 강화 이뤄져야

그렇다면 노동생산성이 높은 국가들과 우리나라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주 4일제가 정착된 아이슬란드를 한 번 살펴보겠습니다. 근로시간을 줄인 대표적인 국가로 최근 자주 거론되고 있는데요.

아이슬란드는 2015년부터 2019년까지 전체 노동인구의 1%를 대상으로 주 4일제를 실험했습니다. 그 결과 근무시간이 줄어든 대부분의 노동 현장에서 생산성이 유지되거나 증가했습니다. 2021년 기준 전체 근로자의 86% 이상이 주 4일제를 할 수 있게 됐습니다. 아이슬란드의 2021년 시간당 노동생산성은 66.8달러로 역시 우리나라 보다 월등히 높습니다.

김대종 세종대학교 경영학부 교수는 "아이슬란드가 성공했던 이유는 회의 시간을 10분 이내로 줄이고 커피를 마시는 등의 시간을 최소화 하면서 업무 몰입도를 높였기 때문"이라면서 "우리나라는 근무 시간 중에 은행에 가거나 담배를 피기 위해 자리를 비우는 것에 대해 굉장히 관대하다"고 꼬집었습니다. 또한 김 교수는 "미국 등 노동생산성이 높은 국가들의 경우 대부분 노동시장의 유연성이 높아 근로자의 해고와 채용이 자유롭지만 우리나라의 경우는 다르다"며 "문화와 제도의 문제로 한국의 생산성이 낮을 수 밖에 없다"고 분석했습니다.

생산성을 높이기 위한 방안으로 인적 자본에 대한 역량 강화도 거론됩니다.

이상호 전국경제인연합회 경제정책팀장은 "현장 중심의 교육 커리큘럼 구성 등 교육 개혁이 우선 이뤄져야 한다"면서 "근로자들이 자신을 최적화 시키는 일자리에서 숙련할 수 있는 기회가 필요하다"고 조언했습니다.

◆ 표류하는 尹 정부의 근로시간 개편…결론은 언제쯤



이번 개편은 사실 첫 단추부터 제대로 끼우지 못했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수 개월 동안 정책을 만들면서 사업주들의 의견을 위주로 접근한 탓입니다. 정작 근로자들의 생각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은 겁니다.

취재 현장에서 만난 중견 제조기업 근로자 30대 박 씨는 "일 하는 시간이 늘어나는 것보다 우려되는 건 일한 만큼 받을 수 있을지, 쉬는 시간이 보장될 수 있을지다"라며 "정부가 현장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커지는 '69시간' 논란에 대통령실 관계자는 "이번에 근로시간 개편안을 만들면서 사용자의 입장에 치우쳤던 것은 반성을 해야 할 부분"이라고 언급하기도 했습니다.

뒤늦게 정부는 근로자들, 특히 MZ세대들의 의견을 듣고 있지만, 이미 반감이 생긴 이들의 마음을 돌리기는 쉽지 않아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