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산유국의 추가 감산 조치로 국제유가가 급등하면서 인플레이션(물가 상승) 압력으로 작용, 각국 중앙은행의 금리인상 기조가 이어질 수 있다는 진단이 나왔다.
블룸버그통신은 그간 각국 중앙은행이 에너지와 식료품을 제외한 근원물가를 주로 참고해왔으나, 유가 상승이 소비자물가지수에 새로운 압력으로 작용하고, 높은 물가 상승률이 가계의 기대심리에 영향을 미치면 통화 긴축이 계속될 수 있다고 3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석유수출국기구(OPEC)와 러시아 등 비(非)OPEC 주요 산유국들의 협의체인 OPEC+ 소속 산유국들이 지난 2일 하루 116만 배럴 규모의 자발적 추가 감산을 예고한 후 국제 유가가 급등했다.
이날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 5월 인도분 서부 텍사스산 원유(WTI)는 전 거래일보다 배럴당 6%(4.57달러) 치솟은 80.24달러에 거래를 마쳤고, 런던 ICE 선물거래소에서 6월물 브렌트유도 배럴당 5.7%(4.56달러) 오른 84.45달러에 장을 마감했다.
주요 산유국들이 지난해 10월 200만 배럴 감산에 합의한 데 이어 추가로 기습적인 대규모 감산을 발표하면서 향후 원유 공급이 수요를 밑돌 수 있다는 우려를 자극, 유가를 밀어 올린 것으로 분석된다.
제임스 불러드 세인트루이스 연방준비은행(연은) 총재는 불룸버그 TV와의 인터뷰에서 OPEC의 감산 결정은 예상하지 못한 일이며 유가 상승은 물가 상승률을 낮추려는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Fed)의 과제를 더 어렵게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유가는 계속 변동해서 정확히 추적하기 어렵다"며 "그중 일부는 인플레이션에 반영돼 연준의 일을 더 어렵게 만든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감산이) 지속적인 영향을 미칠 것인지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라고 덧붙였다.
불러드 총재는 지난달 올해 미국 기준금리가 5.625%로 정점을 찍을 것이라고 전망한 바 있다.
반면 투자자들은 올해 말 연준이 금리를 약 0.5%포인트 인하할 것이라고 예상한다.
골드만삭스는 이번 감산 결정에 따라 올해 말과 내년 말 브렌트유 가격 전망치를 종전보다 각각 5달러 상향 조정한 배럴당 95달러, 100달러로 제시했다.
이번 감산으로 미국 내 휘발유 가격이 갤런당 4달러까지 오를 수 있다는 예상도 나왔다. 현재 미국 내 평균 휘발유 가격은 갤런당 약 3.5달러다.
클리어뷰 에너지파트너스의 케빈 북 상무이사는 "이번 유가 상승은 수요가 많은 여름철을 앞두고 이뤄진 데다가 올해 하반기 원유 비축량에 이미 여유가 없다"고 설명했다.
반면 씨티그룹은 유가가 공급 측면의 더 큰 불확실성 없이는 배럴당 100달러까지 상승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씨티그룹 원자재 부문 글로벌 책임자인 에드 모스는 "국제유가가 배럴당 100달러까지 상승하려면 상당히 더 많은 양의 원유가 시장에서 제거돼야 하고 불확실성이 더 큰 상황에서 공급 혼란이 발생해야 한다"고 전했다.
이런 가운데 산유국들의 깜짝 감산은 국제유가 하락에 베팅하는 투기 세력을 겨냥한 것이라는 분석도 나왔다.
미국 상품거래위원회(CFTC) 통계에 따르면 지난달 미국 실리콘밸리은행(SVB)으로부터 시작된 잇따른 은행 위기로 국제유가가 급락하자 미국 원유에 대한 약세 베팅이 4년 만에 최고치로 늘었고 반대로 강세 베팅은 10년만 최저치로 줄었다.
지난달 말 금융 위기에 대한 공포가 약화하고 매도 포지션도 줄어들었지만, 사우디아라비아는 불안해하기 시작했다고 블룸버그가 소식통을 인용해 전했다.
(사진=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