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재무부가 제시한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해석이 한국 등에 유리하고 미국 내 생산에 불리하게 돼 있다는 비판이 미배터리 업계에서 나오고 있다.
22일(현지시간) 블룸버그통신 보도에 따르면 재무부는 다음 주 IRA의 전기차 관련 세부 지침을 발표할 계획이다. 앞서 재무부는 지난해 12월 29일 내놓은 백서에서 IRA의 전기차 배터리 부품·핵심 광물 관련 세부 지침의 제정 방향을 밝혔다.
IRA의 전기차 세액공제 조항은 올해부터 배터리에 북미에서 제조 또는 조립한 부품을 50%(2029년 100%로 연도별 단계적 상승) 이상 사용해야 3천750달러(약 482만원)를, 배터리에 들어가는 핵심 광물의 40%(2027년 80% 이상으로 연도별 단계적 상승) 이상을 미국이나 미국과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한 국가에서 채굴·가공해야 나머지 3천750달러를 받도록 규정하고 있다.
문제는 배터리의 핵심 요소인 양극재와 음극재가 IRA 조항에서는 배터리 부품으로 분류돼 있지만, 재무부 백서는 이들을 부품이 아니라 핵심 광물과 비슷한 '구성 소재'로 구분했다는 점이다. 양극재와 음극재를 부품으로 간주하면 북미에서 제조·조립해야 할 필요성이 커지지만, 핵심 광물로 분류하면 미국과 FTA를 체결한 한국에서 생산해도 세제 혜택을 받게 된다.
백서는 또 미국과 FTA를 체결하지 않은 국가에서 채굴한 광물이라도 FTA 체결국에서 가공해 50% 이상의 부가가치를 창출할 경우 FTA 체결국 생산으로 간주하기로 했다. 따라서 중국 등에서 채굴한 광물을 원료로 한국에서 생산된 양극재·음극재도 IRA의 세제 혜택 대상이 될 가능성이 크다.
이는 핵심 광물과 배터리 부품의 정의를 한국 등에 유리하게 일부 변경한 것이라는 평가가 나오면서 공격적인 생산시설 확장에 나서는 미국 배터리 부품·소재업체들의 불만이 터져 나오고 있다고 블룸버그는 전했다.
양극재·음극재는 현재 대부분이 한국·중국·일본에서 생산되고 있지만, 작년 8월 IRA 제정 이후 발표된 미국 내 양극재·음극재 생산시설 투자 계획만 100억 달러(약 12조9천억원) 이상에 이른다. 그러나 재무부 백서가 이런 미국 내 투자 움직임에 찬물을 끼얹고 있다는 것이다.
캘리포니아주 소재 음극재 개발 업체인 미트라켐의 비바스 쿠마르 최고경영자(CEO)는 백서 내용이 "배터리 공급망의 가장 가치 있는 부분을 여전히 미국 이외 지역에 둘 수 있도록 허용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백서 내용 그대로 시행 지침이 마련되면 핵심 소재를 외국에 의존하는 지금과 같은 상황이 그대로 유지될 것이라고 비판했다.
IRA 전기차 보조금과 관련해 한국 등 외국 기업의 수혜를 막아야 한다고 주장해온 조 맨친 민주당 상원의원 역시 재무부가 또다시 노골적으로 의회의 의지를 무시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보조금 지급은 미국 내 생산능력 확대와 중국과 다른 해외 공급망에 대한 의존도 축소를 위한 것이라며 재무부 백서는 이런 입법 취지에 반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미국의 에너지 안보를 위협하고 해외 공급망에 대한 의존도를 더욱 심화시킬 것이라고 비판했다.
호주 맥쿼리증권도 한 보고서에서 백서로 인해 양극재 공급업체들이 미국에 투자하려는 유인이 줄어들고 중국 업체들이 대부분 미국 공급망에서 퇴출당하는 가운데서도 "한국 공급망의 이점은 온전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사진=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