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 투자은행 크레디트스위스(CS)가 경쟁사 UBS에 인수되는 과정에서 발행한 신종자본증권(코코본드·AT1)의 가치가 전액 상각 처리되자 투자자들이 크게 반발하고 있다.
20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은 로펌 '퀸 이매뉴얼 어콰트 앤드 설리번'을 인용해 크레디트스위스의 신종자본증권 보유자들과 스위스, 미국, 영국의 변호사들이 가능한 법적 조치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코코본드로도 불리는 신종자본증권은 금융회사의 건전성에 문제가 발생할 때 투자자 동의 없이 상각하거나 보통주로 전환하는 채권이다. 만기가 되면 갚아야 하는 부채의 성격을 띠고 있지만 회계상 자본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
이 때문에 은행들은 일반 채권보다 금리가 높아 부담이 상대적으로 클 수밖에 없지만 유용한 자본확충 수단으로 여기고 있다.
크레디트스위스가 지난주 투자자들에게 안내했던 것처럼 일반적인 시나리오에서는 주주들이 먼저 손실을 보고 그다음에 신종자본증권 손실이 발생한다.
그러나 이번 인수에서는 크레디트스위스 모든 주주가 30억 프랑(약 4조2천억원) 규모의 UBS 주식을 받게 됐지만, 은행 자본 구조상 주식보다 우선하는 신종자본증권 보유자들은 아무것도 건지지 못하게 됐다.
펀드정보업체 모닝스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으로 크레디트스위스 신종자본증권에 가장 많은 위험 노출액(익스포저)이 있는 곳은 라자드 프레르, 핌코, GAM 인베스트먼트 등으로 나타났다.
이번 조치에 대해 크레디트스위스 신종자본증권 보유자들이 반발하고 있지만, 스위스에서는 별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관측이 나온다.
스위스에서는 채권 관련 규정상 구조조정 과정에서 금융당국이 전통적인 자본 구조를 지킬 의무가 없기 때문에 신종자본증권 보유자들이 손해를 보게 됐다는 것이다.
다만 유럽연합(EU) 당국은 이번 크레디트스위스 사례와 달리 채권 보유자에 앞서 주주에게 손실을 계속 부담하게 하겠다는 방침이다.
영국 중앙은행인 잉글랜드은행(BOE)도 은행 파산의 경우 주주가 신종자본증권 투자자보다 먼저 손실을 부담하게 된다고 밝혔다.
은행의 구조조정 과정에서 신종자본증권이 논란이 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20년 3월 인도중앙은행(RBI)이 인도 예스은행이 발행한 신종자본증권을 상각한 것과 관련한 법적 분쟁이 현재 진행되고 있다.
다만 규정이 이렇더라도, 크레디트스위스 신종자본증권의 전액 상각 결정은 보유자들의 반발을 불렀을 뿐 아니라 채권 시장 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는 진단이 나온다. 투자자들이 주식보다 더 많은 보호를 받아야 하는 채권도 같은 운명에 처할 수 있다는 두려움에 빠지면서 다른 은행들의 신종자본증권 가격이 이날 급락했다.
나아가 투자자들이 앞으로 신종자본증권을 매수하는데 더 조심스러워지고 채권 시장에서 자금을 조달해야 하는 은행들은 자본 비율 규제 요건을 충족하기 더 어려워질 것으로 보인다.
골드만삭스도 신종자본증권의 수요가 "영구적으로 사라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에 따라 신종자본증권 수요가 장기적으로는 줄어들 수 있지만, 상대적으로 틈새시장인 탓에 전체 신용대출 시장 전반으로의 전염 위험은 제한적이라고 골드만삭스는 관측했다.
그러나 벌써 다른 은행에서도 신종자본증권의 투매가 발생하고 있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캐나다 금융감독청(OSFI)은 크레디트스위스 신종자본증권이 전액 상각되자 투자자들을 안심시키기 위해 "캐나다의 자본 제도는 채권자의 우선순위를 보장하며 이는 금융 안정성을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 같은 발표에도 캐나다 은행들이 발행한 제한상환청구자본증권(LRCN) 가격은 달러당 2∼5센트씩 하락했다.
LRCN은 금융기관이 발행하고 시스템 충격을 흡수하도록 설계된 신종자본증권의 일종이다.
이 밖에도 금융거래 플랫폼 트레이드웹 자료에 따르면 도이체방크, HSBC, UBS와 BNP파리바의 신종자본증권 가격이 9~12포인트 하락했고 수익률은 급격히 상승했다.
(사진=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