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종영한 드라마 '일타스캔들'에는 쇠구슬을 쏴서 동물과 사람을 죽이는 범행이 등장했다. 드라마 속 경찰은 오랫동안 범인을 잡지 못해 추가 피해로 이어졌지만 현실의 경찰은 달랐다.
인천 고층 아파트에서 새총으로 쇠구슬을 쏴 이웃집 유리창을 깨트린 사건을 수사한 경찰이 범인을 잡는 데까지 걸린 시간은 고작 1주일이었다.
보통 주택가에서 벌어지는 쇠구슬 발사 사건은 용의자를 잡지 못해 미제로 남는 경우가 많지만, 경찰이 발품을 팔아 옆 동 의심 세대의 쇠구슬 구매 내역을 확인해 빠르게 피의자를 검거할 수 있었다.
20일 인천 연수경찰서에 따르면 인천 송도국제도시에 있는 32층짜리 한 아파트에서 유리창 파손 신고가 경찰에 접수된 시점은 지난 10일이다.
주말을 앞둔 금요일 오후 4시 50분쯤 이 아파트 거주자 A씨는 유리가 깨지는 듯한 요란한 소리를 듣고 깜짝 놀라 거실을 둘러봤다.
두께 3㎜ 유리 2장 중 바깥 유리에 3㎝ 정도 되는 구멍이 뚫렸고, 주변에는 사방으로 금이 가 있었다. 멀쩡한 창문 유리에 저절로 금이 가는 일도 흔치 않지만, 뚫려 있는 작은 구멍이 더 의아했다.
아파트 단지 내 보행로와 가까운 저층이라면 외부에서 누군가가 고성능 장난감 총알을 쏜 게 아닌지 의심할 수도 있었지만, A씨 집은 지상에서 100m 높이인 29층.
당황한 A씨의 신고를 받고 수사에 착수한 경찰은 지난 11일과 12일 주말 동안 형사팀과 강력팀 수사관 20여명을 동원해 아파트 일대를 수색했고, 마침내 단지 1층 외부 인도에서 지름 8㎜짜리 쇠구슬 2개를 찾아냈다.
경찰 관계자는 "유리가 깨진 집이 너무 고층이어서 수사 초기에는 누군가가 쇠구슬을 쐈을 것이라고 단정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경찰은 쇠구슬을 찾은 다음 날 아파트 관리사무소를 통해 유사 피해를 본 세대가 2곳 더 있다는 신고를 추가로 접수했다.
경찰은 깨진 유리창들을 분석해 발사각이나 발사 거리를 예측한 결과 옆 동에서 쇠구슬이 날아왔으며 피해 세대보다 높은 층에서 쐈을 것으로 추정했다.
이후 국립과학수사연구원도 사건 현장에서 '탄도 레이저 분석' 통해 경찰 추정이 합리적이라며 쇠구슬 발사 위치로 옆 동을 지목했다.
경찰은 쇠구슬을 날린 의심 세대를 10여곳으로 추린 뒤 세대원 명단이 확보되자 이번에는 쇠구슬 판매 업체를 수소문하기 시작했다.
먼저 수백곳인 쇠구슬 판매 업체 중 겉이 정교하게 깎이지 않아 꺼칠꺼칠한 쇠구슬만 파는 업체로 50여곳을 추렸다. 앞서 아파트 1층에서 발견한 쇠구슬 2개의 표면이 매끈한 공업용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서울과 경기도 등지에 흩어진 업체에 일일이 전화를 걸어 의심 세대원 중 구매자가 있는지 확인했고, 전화로는 협조할 수 없다는 업체에는 형사들이 직접 발품을 팔아 찾아갔다.
이틀에 걸친 탐문 끝에 경기도 한 업체에서 이번 사건 피의자인 B(61)씨의 이름을 확인했고, 사건 발생 1주일 만인 지난 17일 그를 체포했다.
B씨는 업체가 구매기록을 보유한 최근 3개월간 5차례 이상 쇠구슬과 새총 등을 인터넷으로 직접 주문한 것으로 파악됐다. 그의 집에서는 무더기로 쌓인 새총과 쇠구슬뿐 아니라 표적지와 표적 매트를 놓고 발사 연습을 한 흔적도 나왔다.
최근 특수재물손괴 혐의로 구속된 B씨는 경찰 조사에서 "쇠구슬이 어디까지 날아갈 수 있을지 호기심이 생겨 실제로 쏴봤다"면서도 "특정 세대를 조준하지는 않았다"고 주장했다.
경찰은 B씨가 자신의 집 거실 한 곳에서만 쇠구슬 쏘지 않고 주방 등 여러 곳을 돌아다니며 발사한 것으로 보고 있으며 여죄도 추가로 수사하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보통 아파트 등 주택가에서 일어나는 쇠구슬 사건은 범인을 잡기가 쉽지 않아 미제로 남는 경우가 많다"며 "곧바로 의심 세대를 찾아다니며 탐문했다면 B씨가 새총과 쇠구슬을 모두 숨겨 사건이 장기화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2개 동인 피해 세대 3곳에서 각도와 거리를 역으로 추산해 쇠구슬이 날아올 수 있는 옆 동 세대수를 선별했고, 동시에 쇠구슬 판매 업체도 수소문했다"며 "쇠구슬 구매자와 의심 세대원 이름을 대조해 피의자를 빨리 검거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사진=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