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 계엄군 "실탄 지급...사람에게 쏠 수 있겠다 생각" 증언·사과

입력 2023-03-14 18:37
수정 2023-03-14 18:38


지역 사회 반발을 무릅쓰고 특전사동지회 초청 행사를 강행했던 5·18 부상자회와 공로자회는 14일 광주 서구 5·18 기념문화센터에서 '오늘의 증언이 5.18 진상규명의 첫걸음이다'를 주제로 증언 행사를 열었다.

이날 행사에는 1980년 5월 항쟁 당시 제3공수여단 소속 중사 신분으로 진압 작전에 투입된 김귀삼 씨가 증언자로 나섰다.

김씨는 광주역과 광주교도소에서 직접 경험한 작전 내용에 대해 하얀 칠판에 그림을 그리며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그는 "제가 있던 제대(분대)는 광주역 진압 작전 시 실탄을 지급받지 않았고, 발포 명령을 받지도 않았다"며 "나중에 총상 사망자를 보고 발포가 이뤄진 사실을 알았다"고 말했다.

또 "수많은 예광탄이 발사되긴 했으나 그 발포 명령을 누가 내렸는지 자세히 모른다"며 "부대 최고책임자인 여단장이 아니겠느냐 추측만 할 뿐"이라고 설명했다.

포로로 잡혀 온 시민 중 한 사람을 대검의 무딘 부분으로 대퇴부를 찔렀던 사실도 전하며 "그분이 아직 살아계시는지 모르겠지만 사죄하고 싶다"며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김씨는 이후 옛 광주교도소에 배치됐다고 했다.

그는 "광주교도소에 접근하는 차량을 잡으라며 실탄을 지급받았고, 실탄을 줬기 때문에 발포 명령과 똑같은 것이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접근하는 차량을 멈춰 세우기 위해 교도소 담장 넘어 보리밭에 숨어 바퀴를 향해 총을 쐈다"며 "아무리 바퀴에 쏜다고 하더라도 사람에게도 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광주교도소 인근 암매장 의혹에 대해서는 "포로나 시신은 여단 본부에서 인계받아 취조하거나 시신 처리를 했기 때문에 저로서는 잘 알지 못한다"며 "(저의 증언을 시작으로) 여단 본부에서 근무했던 전우들도 나타나 (증언해 주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 자리에는 옛 광주교도소에서 총상을 입은 5·18 부상자 1명도 함께 참석해 당시의 상황을 설명하기도 했다.

두 사람의 이날 증언은 과거 여러 차례 조사 과정에서 확인된 내용을 넘어서지는 못했다.

증언 행사를 마친 김씨는 5·18 단체 회원들과 함께 광주역과 옛 광주교도소를 방문해 보충 설명한 뒤 국립 5·18 민주묘지를 참배했다.

울먹이는 표정으로 분향을 마친 김씨는 참배단을 향해 두 차례 큰절을 올리며 희생자들의 넋을 기렸다.

그는 행방불명자 묘역과 무명열사 묘역을 둘러보며 무릎을 꿇고 참배하기도 했다.

행방불명자에 묘역 앞에선 그는 "(특전사) 동지들이 이분들을 찾는 데 도움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만 4세로 추정되는 어린 무명열사 묘역에서는 무릎을 꿇고 "어떻게 이런 어린아이까지 (숨졌나)"라며 "미안합니다"라며 사죄했다.

5·18 부상자회와 공로자회는 오는 21일에도 7공수여단 진압군 출신 인사를 불러 증언 행사를 이어간다는 계획이다.

(사진=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