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거래위원회는 처남 일가가 보유한 회사를 계열사에서 누락한 혐의로 금호석유화학 그룹 박찬구 회장을 검찰에 고발하기로 했다고 8일 밝혔다.
기업집단 금호석유화학의 동일인인 박 회장은 2018∼2021년 공정위에 대기업집단 지정을 위한 자료를 제출하면서 지노모터스, 지노무역, 정진물류, 제이에스퍼시픽 등 4개사를 누락한 것으로 조사됐다.
지노모터스와 지노무역은 박 회장의 첫째 처남과 그 배우자·자녀들이 지분 100%를, 정진물류와 제이에스퍼시픽은 둘째 처남과 그 배우자·자녀들이 지분을 100% 보유한 회사여서 지정 자료에 포함됐어야 한다.
공정위는 박 회장과 금호석유화학㈜ 회장부속실, 지정자료 제출 담당자 모두 누락된 4개사의 존재를 오랜 기간 알고 있었던 점, 지분율만으로도 계열사 여부를 쉽게 판단할 수 있었던 점 등을 고려해 자료 허위 제출에 대한 인식 가능성이 상당했다고 판단했다.
박 회장 측은 공정위가 2021년 지정자료 제출 때 친족회사의 계열사 여부를 확인하라고 요청했는데도 내부 검토 후 정진물류를 은폐했다는 게 공정위 설명이다.
공정위는 일부 회사의 누락 기간이 6년에 달하고 이를 통해 공시 의무·사익편취 규제 등 경제력 집중 억제 시책 적용을 피한 점, 3천만원 상당의 중소기업 세제 혜택을 받은 점 등을 고려할 때 중대성도 상당하다고 봤다.
민혜영 공정위 기업거래정책과장은 "지정자료 제출 의무를 이 정도로 경시하고 방기하는 경우는 흔치 않다"며 "계열사 누락 행위는 경제력 집중 억제 시책의 근간을 훼손한다"고 말했다.
민 과장은 "지노무역과 지노모터스는 광우병 사태 때 물대포를 제작·수출한 회사이고, 언론에 매우 나쁜 이미지로 보도된 적이 있다"며 "이 회사들이 금호석유화학 계열사라는 것이 드러나는 것을 원치 않았을 수 있다"고 말했다.
시민단체들은 2020년 지노모터스가 제작한 물대포가 2020년 태국 민주화 시위를 진압하는 데 쓰이고 있다며 장비 수출을 공개적으로 규탄하기도 했다.
이날 금호석유화학은 "금호아시아나그룹과의 계열 분리 및 대기업집단 지정 과정에서 실무자가 법령상 계열사를 혼동해 누락한 것"이라며 "업무 관련성이나 거래 관계가 일절 없었고 일감 몰아주기·승계를 위한 계열사 은폐가 아니었다"는 입장을 밝혔다.
또 "누락된 회사들은 금호석유화학 그룹과 아무런 관계가 없는 회사임을 공정위도 인정해 계열사에서 제외했다"며 "회사는 재발 방지를 위해 전담 부서를 신설하고 인력을 보강했다"고 덧붙였다.
금호석유화학은 공정위가 지정자료 허위 제출에 대한 조사를 시작한 뒤 친족독립경영에 따른 계열 제외를 신청해 인정받았다.
박 회장은 2018∼2021년 지정자료 제출 때 친족 17명(16명은 인척 4촌)과 4개 비영리법인도 누락했으나 이 부분은 경고 조치됐다.
일각에서는 지정자료 허위 제출에 대한 공정위의 고발 여부 판단 기준이 모호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공정위는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동생 최기원 행복나눔재단 이사장이 실질적으로 지배력을 행사하고 계열사 임원이 지분을 소유한 킨앤파트너스 등 4개 회사를 지정자료에서 누락한 행위에 대해서는 지난달 미고발(경고) 결정을 내린 바 있다.
중대성은 박 회장 사례와 마찬가지로 상당하다고 봤지만, 최 회장의 인식 가능성이 경미하다고 판단했다.
경제 형벌 완화의 일환으로 지정자료 허위 제출을 형사 처벌 대상에서 제외할 것인지에 대해 민 과장은 "지금까지 발표된 1·2차 과제에는 포함되지 않았고, 3차 과제에 들어갈지는 말씀드리기 어렵지만 형벌 자체를 완전히 폐지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앞서 공정위는 2020년 9월 고발지침 제정 이후 김상열 전 호반건설 회장, 박문덕 하이트진로 회장, 정몽진 KCC 회장, 이호진 전 태광그룹 회장 등 4명을 지정자료 허위제출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이순형 세아그룹 회장, 최태원 SK 회장 등의 지정자료 허위제출 11건에 대해서는 경고 조치했다.
(사진=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