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기간 동안 급격하게 성장한 업계가 있다. 비대면 진료 서비스앱이다. 지난 2020년 2월 정부가 비대면 진료를 한시 허용한 이후 우리국민들이 3,500만 건 이상 이용했다. 누적 이용환자 수는 첫 달 2만 명에서 지난해 말 기준 670만 명까지 치솟았다. 한 번 이용해본 사람은 그 뒤로도 4번은 이용했다는 얘기다. 이처럼 성장세는 폭발적이지만 카카오톡이나 배달의민족처럼 시장을 지배하는 대표 서비스는 아직 나타나지 않았다. 모두가 스타트업인 업계, 한마디로 ‘스타트업 리그’라고 할 수 있다. 규제를 걷어내자 새로운 시장이 생긴 것이다.
이런 보기 드문 광경 속에서 '나만의 닥터'는 눈에 띄는 비대면 진료 서비스 중 하나다. 30여개 서비스가 치열한 경쟁을 펼치고 있는 가운데 거래액 기준 1위를 기록했다. 이 플랫폼에서 실제로 돈을 결제한 사람이 가장 많다는 의미다. 거래액은 앱 생태계에서의 우열을 가리는 다운로드수, 가입자수, 월간활성이용자수(MAU) 등 다양한 지표 중에서도 내실을 보여주는 지표다.
나만의 닥터를 만든 회사는 메라키플레이스다. 연세대 의대 출신인 선재원 대표(36)와 고려대 경영대 출신인 손웅래 대표(34)가 의기투합해 세운 회사다. 둘은 글로벌 컨설팅 회사 맥킨지에서 함께 근무하면서 막역하게 지내온 직장 동료사이다. 맥킨지 퇴사 후 선재원 대표는 바이오벤처로, 손웅래 대표는 이커머스 마케팅 스타트업으로 이직해 각각 다른 길을 걸었지만 종종 만나 술잔을 기울이곤 했다.
사업을 먼저 제안한건 선재원 대표였다. 선 대표가 의사 가운을 벗어던진 것도 자신만의 사업을 하고 싶어서였다. 다만 초기 아이템은 지금 나만의 닥터와는 많이 달랐다. 남성들의 의학적 고민을 풀어보자는 취지의 서비스였다. 손웅래 대표는 “함께 스터디를 하다보니까 한국에서는 원격의료가 이제 열리기 시작하는 단계였고 틈새시장 보다는 플랫폼을 구축하는 게 훨씬 더 큰 기회라고 판단해서 지금의 서비스를 만들게 됐다”고 했다. 그렇게 2021년 8월 메라키플레이스라는 이름의 법인을 세우고 같은 해 12월 서비스를 출시했다.
업계 후발주자였던 메라키플레이스는 대규모 마케팅 비용을 들여 이용자 유치에 집중했던 경쟁사들과 다른 전략을 택했다. 거꾸로 비대면 진료의 핵심 경쟁력을 의사 확보에서 찾았다. 이를 위해 의사들이 진료현장에서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서비스를 IT기술로 구현했다. 선 대표는 “환자분들이 방문하고 2~3분 진료 보는 게 전부인데, 의사들도 연결되고 싶은 마음이 있다”면서 “예를 들면 이 약을 먹고 이 사람이 어떻게 좋아졌을까 라든지, 건강 상담을 챙겨드려야 하는데 라는 고민이 있는데 이런 내용을 손쉽게 전달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고 했다.
이 판단은 적중했다. 여기에 호응하는 의사가 늘 수록 환자의 접근성도 덩달아 높아졌다. 동시에 탈모나 비만, 고혈압처럼 주기적으로 약 처방을 받는 환자를 확보하면서 거래액을 늘려갔다. 서비스 출시 1년 간 거래액은 2000배, 진료건수는 500배 넘게 성장했다. 이런 성장세를 바탕으로 대규모 투자금도 받았다. 창업 넉 달 만에 10억 원, 다시 10개월 만에 62억 원을 유치했다. 누적 투자액은 72억원, 2023년 1월 현재 기준 업계 4위 수준이다. 투자사로는 베이스인베스트먼트, 스프링캠프, 패스트벤처스, KB인베스트먼트, 굿워터캐피탈 등의 국내외 벤처캐피탈이 참여했다. 선 대표는 이런 성과에 대해 “1등 헬스케어 앱이 되겠다는 비전과 빠른 성장 속도 덕분”이라고 했다.
최근에는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JP모간 헬스케어 콘퍼런스에 업계 최초로 초청됐다. 선 대표는 “그곳에서 전 세계 원격의료 시장을 이끄는 미국 텔레닥의 CEO를 만나 협력을 모색하고 얼라이(동맹)를 맺고 왔다”고 했다. 손 대표는 “한국은 병원을 빈번하게 가는 나라이고 그런 관점에서 봤을 때 병원을 미국처럼 6년에 한 번 가는 분들과 비교해 한국처럼 1년에 17번, 18번 가는 분들의 접근성을 풀어드리거나 조금 더 편하게 만들어드렸을 때 한국에 기회요인이 많다는 코멘트가 있었다”고 했다.
이런 그들에 가장 큰 고민은 인재 확보다. 현재 인턴 사원을 포함해 23명 가량의 직원을 두고 있다. 선 대표는 “처음에는 링크드인 같은 곳에서 수 천 명에게 메시지를 보냈었다”며 “지금도 계속 뛰어다니고 좋은 분들을 만나기 위해 시간의 절반은 면접에 쓴다”고 했다. 실제로 이날 인터뷰 직전에도 채용면접 중인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손 대표는 “플랫폼을 구축하는데 많은 개발 리소스가 들어가는 만큼 지금 채용을 많이 하는 쪽은 제품을 만드는 개발자”라면서 “좋은 개발자분들 그리고 저희와 문화적인 뜻이 맞는 분들을 찾기 위해 뛰고 있다”고 덧붙였다.
국내 스타트업 사이에서는 ‘스타트업의 조직문화는 창업자를 닮는다’는 말이 경구처럼 회자된다. 선재원·손웅래 대표가 그리는 조직의 모습은 사명인 ‘메라키플레이스’에 함축돼있다. ‘메라키(meraki)’는 그리스어로 ‘혼을 담아내는 일’, ‘열과 성을 일에 담아는 행위’라는 뜻이다. 이들은 함께 일하는 팀원들도 모두 열정적인 사람들이라고 했다. 선재원 대표와 손웅래 대표 모두 지하철 막차시간이 돼서야 퇴근하는 게 일상이다. 손 대표는 “지금 당장에 대기업이나 유니콘 급의 스타트업처럼 커다란 보상이나 복지를 제공하지는 못하고 있다”면서도 “이렇게 빠르게 성장했을 때 결실을 다 같이 나눌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데 집중하고 있다”고 했다.
선재원 대표의 MBTI 성격유형은 ESTP(사업가), 손웅래 대표는 ENTP(변론가)다. 선 대표는 때때로 의견이 안 맞을 때는 “죽을 때까지 토론 한다”고 했다. 그는 “옳다 그르다의 문제라기보다는 결국에는 메라키플레이스가 잘 되기 위해서 어떤 옵션이 좋을지 고민하다보면 결국 답은 잘 나온다”고했다. 손 대표 역시 “사고방식이나 일하는 방식이 유사하기도 하고 결국은 회사가 잘 되게 하기 위한 고민이라는 믿음이 확실해서 의견 충돌로 인한 어려움 같은 건 없다”고 강조했다.
이들의 올해 목표는 비대면 진료 서비스업계의 ‘배달의민족’이 되는 것이다. 아플 때만 찾는 것이 아니라 일상에서 건강관리 책임질 수 있는 서비스로 자리잡겠다는 포부다. 시장 점유율 확대를 위해 투자 계속할 계획임은 물론 수익성 확보를 위한 모델도 개발중이다. 라이벌 회사로는 인지도 면에서 앞서있는 ‘닥터나우’를 꼽았다. 다만 시장자체가 초기 단계에 있는 만큼 동업자 관계에 가깝다고 했다. 실제로 코리아스타트업포럼 산하 원격의료산업협의회에는 나만의닥터, 닥터나우 등을 포함해 업계의 절반이 넘는 회사들이 소속돼있다. 이들은 정기적으로 소통하며 비대면 진료 제도화와 같은 이슈에 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정부 보건당국은 오는 6월을 목표로 비대면 진료 제도화를 추진하고 있다. 3,500만 건이 이용되는 동안 우려했던 오진이나 남용 사례는 없었다. 한 때 ‘절대불가’를 외치던 의료계의 기류변화도 감지되고 있다. 의료현장에서의 목소리를 충분히 반영하라는 입장이다. 선재원 대표는 “의료사고시 책임소재, 오진 가능성, 개인정보보호 등에 대한 우려를 알고 있다”면서 “이런 부분을 어떻게 불식시킬지 정부와 의료계, 산업계가 함께 논의할 수 있는 장이 열렸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비대면 진료가 활성화되기 위해서는 초진에 대한 허용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밝혔다. 다만 “비대면 진료만을 위한 병원이나 약국이 나오면 의료 질서를 해칠 수 있는 만큼 제한할 장치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