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억5천은 받아야겠어요."
예상은 했지만, 단번에 전세금 2억원을 올려달라는 집주인의 통보에 김대환(가명) 과장은 눈앞이 캄캄해졌다.
서울 마포구 아현동에 자리잡은 지 근 10년. 번듯한 대기업에 다니고 있지만, 2억원을 당장 마련하기는 쉽지 않은 노릇이었다. 은행 2곳에 대출을 알아봤다. 금리는 두배, 대출 여력도 얼마 남지 않았다.
그런데, 콧대 높던 집주인이 찾아왔다. "제발 재계약하자"면서…
● 2억원 올려달라는 집주인
김 과장은 2014년 11월, 당시 신축 마포래미안푸르지오 20평대(전용 59㎡)를 이른바 '입주장'(공사가 끝나고 입주하기 전)에 급전세로 잡았다. 여러해 재계약을 거쳐 전세금은 어느덧 5억원 중후반대가 됐다.
작년 11월 재계약을 앞두고, 걱정했던 일이 현실이 됐다. 집주인이 단번에 2억원 인상을 요구해 온 것이다.
당시 주변 시세는 5억원대에서 8억원대까지 천차만별이었다. '임대차 3법'으로 정확한 시세 파악이 어려웠다. 야속하긴 했지만 집주인의 사정도 이해는 갔다.
'계약갱신청구권'을 얘기하자, "들어와 살겠다"며 엄포를 놨다. 마지못해 주변 이사할 집을 알아봤다. 길 건너, 2017년 입주한 '이편한세상신촌'에 5억원대 전세 매물이 있었다.
"이사를 가겠다"고 하자 집주인은 '더 좋은 가격에 세입자를 구할 기회를 놓쳤다'며 보증금을 못 돌려주겠다고 했다.
● '역전세' 반전의 서막
재계약일이 다가오던 어느날 집주인이 과일바구니를 들고 찾아왔다. 무슨 영문일까 당황할 새도 없이, "더 싸게 계약하자"고 했다. 미안했다며 사과도 했다.
최종 6억원대에 갱신계약을 했지만, 김 과장은 요즘 후회가 남는다. '역전세'라는 말이 실감났다.
같은 단지 5억 중반에 나온 로얄층 매물이 세입자를 구하지 못하고 있고, '이편한세상신촌'은 물론 1,419세대 신축 대단지 '마포더클래시'에도 5억원대 전세매물이 즐비했다. 최근 일부 물량이 소화되긴 하지만, 마포구의 전세매물은 2,405건에 달한다. (아실, 1월 5일 기준)
마포 아현과 공덕은 '역전세난'의 진원지 중 한 곳으로 꼽힌다.
● 쌓이는 전세에…세입자 모시기
'역전세난'은 전셋값이 2년 전보다 떨어져, 집주인이 오히려 보증금을 돌려줘야하는 상황에 몰린 것을 말한다. 2021년 전국아파트 전셋값은 9.6% 상승했으나 지난해에는 5.2%(11월 기준) 하락했다. 매물 추이를 보면 전셋값이 더 떨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부동산 빅데이터업체 아실에 따르면 5일 기준 서울의 전세매물은 5만5,536건으로 지난해 11월 9일 5만건을 넘긴 뒤, 두달새 5천건 넘게 더 쌓였다.
세입자들의 선택지는 늘었다. 지난해 11월 기준 서울 전월세 신고건수 가운데 기존 계약 갱신은 4건 중 1건에(27.7%)에 그쳤다. 갱신했더라도 '계약갱신청구권'을 사용한 경우는 10건 중 4건(41.4%)에 불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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