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정보기술(IT)업계의 감원 규모와 속도가 2020년 코로나19 발생 초기보다 훨씬 크고 빨랐던 것으로 조사됐다.
3일(현지시간) 미 일간 월스트리트저널(WSJ)과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IT기업 감원 추적 사이트 'Layoffs.fyi'의 분석 결과 지난해 IT분야에서 감원된 노동자는 15만명 이상으로 나타났다.
팬데믹 초기인 2020년 3∼12월 해고자 약 8만 명, 2021년 한 해 동안 해고자 1만5천 명을 크게 웃돌았다. 작년 감원된 인력 중에는 페이스북 모회사 메타 플랫폼(이하 메타)의 1만1천여 명과 아마존의 1만 명도 포함돼 있다.
최근 몇 년간 IT기업들은 강력한 매출 성장과 주가 상승에 힘입어 공격적으로 고용을 늘려왔다. 특히 팬데믹 이후 소비자들이 격리 등 코로나19 관련 여러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첨단 기술에 의존하면서 그 속도는 더욱 가팔랐다.
하지만 이들 기업은 최근 들어 첨단제품 소비가 둔화하고 디지털 광고 전망도 어두워지면서 비용 절감 차원에서 감원과 채용 동결에 나서고 있다. 일부 최고경영자(CEO)는 지나치게 사람을 늘렸다고 사과하기도 했다.
이 같은 IT기업 감원은 미 노동시장이 전반적으로 회복세를 보이는 것과 대조를 이룬다.
이처럼 IT기업 감원과 미 정부의 고용 통계가 엇박자를 내는 것은 IT업계에서 해고된 노동자들이 빠르게 재고용되기 때문이라고 WSJ은 지적했다.
구인·구직 사이트 집리크루터의 조사 결과, 최근 IT기업에서 해고된 노동자의 79%가 구직에 나선 지 3개월 안에 재고용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실리콘밸리에서는 지난해 하반기부터 대규모 구조조정으로 창업 열기가 오히려 뜨거워지고 있다고 로이터통신이 전했다.
데이터 분석기업 피치북에 따르면 작년 세계 벤처캐피털 총 투자 규모는 33% 줄어든 약 4천830억달러(약 617조원)에 그쳤으나, 엔젤 투자 등 초기 단계 스타트업 투자는 역대 최대였던 2021년과 비슷한 374억달러(약 47조7천억원)를 기록했다.
미 샌프란시스코의 초기 투자 전문 벤처캐피털 '데이 원 벤처스'는 지난해 11월 IT기업 해고자가 차린 스타트업 20곳에 각각 10만달러(약 1억3천만원)씩 투자하는 프로그램을 시작하자 메타와 트위터 등에서 해고된 지원자가 1천명 넘게 몰렸다고 밝혔다.
페이스북과 인터넷 영상전화 스카이프 등에 투자한 경력이 있는 '인덱스 벤처스'도 초기 단계 스타트업에 투자하는 3억달러(약 3천830억원) 규모 펀드를 조성했다.
'US벤처 파트너스'와 오스트리아 벤처캐피털 '스피드인베스트'도 비슷한 규모의 초기 단계 투자펀드를 만들었다.
이 펀드들은 게임과 인공지능(AI) 분야에 특히 관심을 보이고 있다고 로이터는 전했다.
데이 원 벤처스의 공동창업자인 마샤 부커는 "지난 경기 순환을 들여다보면 스트라이프나 에어비앤비, 드롭박스 등이 위기 상황에서 탄생했다"고 말했다.
이처럼 일부 투자자는 지난해 경기 하락을 2000년대 초 '닷컴버블 붕괴' 당시와 비교해 눈길을 끈다.
당시 기업가치가 과도하게 부풀려진 닷컴 기업 수십 곳이 무너지면서 재능있는 인력들이 시장에 쏟아져나왔으며, 이들은 페이스북이나 유튜브와 같은 새로운 기업의 탄생에 일조한 바 있다.
(사진=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