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 양양에서 산불 계도 비행 중이던 임차 헬기의 추락사고 원인이 꼬리 회전날개의 고장일 가능성이 있다는 전문가들의 분석이 나왔다.
28일 연합뉴스 취재를 종합하면 사고 헬기가 추락하는 모습이 인근에 설치된 산불감시용 폐쇄회로(CC)TV에 포착됐다.
영상 속에서 헬기는 그리 높지 않은 상공을 비행하던 중 더는 진행하지 못하고 멈춰서다시피 하더니 제자리에서 2∼3바퀴를 빙글빙글 돌고는 그대로 추락했다.
추진력을 제대로 받지 못한 듯 앞으로 더 나아가지 못하고 기체 중심을 잃은 채 그대로 고꾸라지는 모습이었다.
불과 몇 초 만에 헬기는 추락했고, 이는 인근 주민들이 "헬기가 산불 방송하는 것을 들었는데 불과 2∼3초 뒤에 '퍽' 하는 소리가 들렸다"라거나 "불과 5초 만에 일어난 일이었다"고 진술한 내용과도 일치했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영상 속 장면을 토대로 꼬리 회전날개가 고장이 났을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
헬기 위쪽에서 선풍기처럼 수평으로 돌아가는 부분을 메인 로터(주 회전날개)라고 하며, 꼬리 부분에서 수직으로 돌아가는 부분을 테일 로터(꼬리 회전날개)라고 일컫는다.
테일 로터가 작동하지 않으면 항공기는 메인 로터가 회전하는 반대쪽으로 뱅뱅 돌게 돼 있는데 테일 로터는 이런 현상을 막아주는 역할과 함께 항공기가 좌·우측으로 선회할 수 있도록 하는 구실을 한다.
최기영 인하대 항공우주공학과 교수는 "헬기가 제자리에서 돌았다고 하는 건 테일 로터가 제대로 작동하지 못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밝혔다.
최 교수는 "엔진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면 제자리에서 도는 현상은 생기지 않는다"며 "엔진은 정상적으로 작동했다고 보이지만, 테일 로터 혹은 테일 로터로 가는 동력계통에 문제가 생겼다고 추론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정윤식 가톨릭관동대 항공운항학과 교수도 "테일 로터가 손상되거나 연결된 동력전달축이 손상되면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말했다.
정 교수는 "만약 가다가 정지한 상태라면 무언가를 보기 위해 멈춰 섰을 가능성이 있다"며 헬기가 의도적으로 호버링(제자리 비행)했을 가능성을 제시했다.
그는 "전진하는 상태에서 테일 로터가 고장 나면 헬기가 돌더라도 전진 속도를 그대로 갖는다"며 "가다가 조금이라도 서 있었다는 건 의도를 가지고 섰다는 뜻이며, 그 상태에서 고장이 났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인다"고 말했다.
이 같은 분석은 사고 원인이 조종사의 과실일 가능성보다는 기체 결함일 가능성에 무게를 싣는다.
기장 A(71)씨의 유가족은 "올해 1월 헬기가 바뀌고 나서 지난 10월 12일에 A씨로부터 '이륙을 했는데 뭔가 계기판에서 어떤 수치가 빙글빙글 돌아가서 급하게 내려왔고, 손을 보고 테스트 비행을 해서 제대로 (수리가) 됐는지 한번 봐야겠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며 "완전 베테랑이신데 사고가 믿기지 않는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비행 지점이 높지 않은 것으로 보이는 만큼 A씨가 대처하기가 어려웠을 것이라는 분석도 내놨다.
최 교수는 "높은 고도에서 비행하지 않았기 때문에 대처하기 힘들었을 것"이라고 분석했고, 정 교수 역시 "무언가 조치를 했겠지만 사고 지점이 '오토로테이션'으로 부르는 비상착륙을 할 수 있는 곳은 아니었다"며 대처가 어려웠을 것이라고 짐작했다.
사고 헬기가 1975년에 제작돼 블랙박스가 장착돼있지 않은 점은 원인 규명에 걸림돌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오래된 헬기라도 블랙박스를 장착할 수 있으나 이 경우 항공기 개조가 필수로, 이에 들어가는 시간과 비용을 고려하면 실익이 크지 않은 탓에 오래된 헬기는 법적으로도 블랙박스 장착 의무를 갖지 않는다.
최 교수는 "해당 헬기는 1950년대 말부터 개발돼 1960년대 초에 사용되기 시작했기 때문에 헬기의 신호를 기록하는 전자장치가 많지 않을 것"이라며 "엔진 혹은 동력전달의 핵심 장치인 기어박스를 수거한다면 원인을 찾아낼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정 교수는 "회전날개의 각도를 줄여 저항을 적게 한 뒤 착륙 직전에 각도를 확 증가시킴으로써 양력(항공기를 수직 방향으로 들어 올리는 힘)을 높이면 착륙 시 헬기는 파손되지만, 인명피해는 줄이는 방법이 있다"며 "회전날개의 각도를 통해서도 사고 당시 상황을 유추할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