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보고 민심 요동…중계화면 '검열' 나선 中 당국

입력 2022-11-28 13:15


대회가 한창인 2022 카타르 월드컵이 '제로 코로나'에 질린 중국 민심을 자극했다는 분석이 나왔다.

이런 가운데 중국 당국은 월드컵 중계 화면에서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은 관중을 화면에 비추지 않는 등 검열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홍콩 명보는 28일 "월드컵은 뜨겁고 여론은 질적으로 변화했다"며 "월드컵이 시작된 지 며칠 만에 중국 인터넷에서 방역 정책에 대한 목소리가 빠르게 바뀌었다. 사람들은 최근 분노를 공개적으로 표현하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이어 "사람들은 (월드컵을 보면서) 해외에서 '탕핑'(?平·몸과 마음이 지쳐버리면서 아예 더는 노력하지 않는 태도) 이후 감염률이 높아진 것에 대해 더는 놀라지 않는 듯하다"며 "대신 사람들은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제로 코로나'를 유지해야 하는 의미에 대해 질문하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중국 당국은 코로나19와의 싸움에서 '탕핑'은 절대 안 되며 '제로 코로나'를 견지해야 한다고 줄곧 강조하고 있다.

명보는 "중국의 '제로 코로나'가 언제 끝날지 아무도 모른다"며 사람들은 공산당 20차 전국대표대회(당 대회) 이후 방역 완화에 대한 신호를 찾았지만, 변화가 없고 풀뿌리 간부들은 방역의 고삐를 더 조이는 가운데 월드컵을 계기로 여론이 변화했다고 봤다.

그러면서 "일부 중국 누리꾼은 월드컵 중계로 중국 본토인들이 TV로 다른 세상을 볼 수 있게 되면서 중국에서 월드컵 중계가 곧 중단될 수도 있다고 비아냥대고 있다"고 전했다.

실제로 지난 22일 한 누리꾼이 중국 방역 당국을 겨냥해 소셜미디어에 게시한 코로나19 방역에 관한 '열 가지 질문'은 "카타르 월드컵 경기를 관람하는 관중은 마스크를 쓰지도 않았고 유전자증폭(PCR) 검사를 요구하지도 않는다. 그들이 중국인과 같은 행성에 사는 게 맞느냐. 코로나19 바이러스는 그들을 해치지 않느냐"고 꼬집었다.

해당 글은 검열로 삭제되기 전까지 몇 시간 만에 10만 조회 수를 기록하며 큰 반향을 일으켰다.

중국 대표팀은 월드컵 본선에 진출하지 못했지만, 중국인들의 월드컵 시청 열기는 뜨겁다.

그러나 우루무치 화재 참사를 계기로 지난 25∼27일 '제로 코로나'에 항의하는 시위가 동시다발적으로 벌어지자 당국은 월드컵 중계 화면도 검열하기 시작했다.

AFP통신에 따르면 전날 중국중앙TV(CCTV)는 월드컵 일본-코스타리카전을 생중계하면서 마스크를 쓰지 않은 채 국기를 흔드는 관중들의 모습을 클로즈업한 화면을 선수나 코치, 경기장 화면으로 바꿔 내보냈다.

AFP는 같은 경기를 중계한 중국 동영상 플랫폼 더우인의 화면과 CCTV 화면을 비교해 보니 CCTV는 관중석 장면을 사람들의 얼굴을 구별하기 어려운 원경과 비교적 관중이 적은 곳을 담은 영상으로 내보냈다고 밝혔다.

가득 들어찬 관중석에서 마스크 없이 즐겁게 경기를 관람하는 외국인들의 모습이 월드컵 중계를 통해 '어쩔 수 없이' 중국 안방에 공개되면서 파문이 일자 당국이 손을 쓰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명보는 "3년간 이어진 '제로 코로나'에 따른 억압적인 분위기가 여론의 질적 변화를 이끌면서 지난 몇 년간 분열됐던 온라인 세상을 뜻밖에 하나로 만들었다"며 "최근 많은 오피니언 리더와 홍색(紅色) 인사들이 방역 정책에 반대하기 시작했으며 이러한 '반골'적인 공개 질의는 예상을 뛰어넘는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신문은 "지난 2주 동안 대중의 불만은 보기 드문 저항을 촉발했다"며 "오랫동안 쌓였지만 배출할 곳이 없던 분노가 올겨울 더 큰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고 덧붙였다.

(사진=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