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개발 최대어로 꼽히는 서울 한남2구역 시공권을 따내기 위해 롯데건설과 대우건설이 '후분양' 카드를 제시했다.
금리 인상과 부동산 경기 침체에도 불구하고 시공사가 초기 부담을 떠 안으면서까지 조합의 선택을 받겠다는 건데, 그렇지 않아도 비용 지출이 많은 상황에서 수주에 성공해도 당분간 실적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4일 정비업계에 따르면 대우건설은 오는 5일 예정된 시공사 선정 총회를 앞두고 조합에 사업비 전체를 책임지고 조달할 것을 약속했다. 사실상 후분양을 진행하겠다는 것으로, 선분양 수익으로 공사비를 받는 기존 정비사업 대비 높아지는 원가 부담을 감수하겠다는 뜻이다. 롯데건설도 조합에 후분양을 제안하며 분양시기까지 대출로 공사비를 지급하는 조합원들의 금융이자 부담을 대신 짊어지겠고 나섰다.
두 건설사는 파격적인 이주비 지원 혜택도 제시했다. 롯데건설은 기본 이주비 법정한도인 LTV 40% 외에 추가 이주비를 얹어 총 140%의 이주비를 책임지고 조달하기로 했다. 최저 이주비는 7억원이다. 대우건설은 한술 더 떠 LTV 150%에 최저 이주비 10억원을 지원할 계획이다. 여기에 AS도 10년까지 보장하고 글로벌 건축기업과 손잡은 초호화 설계는 물론 하이엔드 브랜드까지 달아주기로 했다. 분담금 납부 방법을 놓고도 양사가 팽팽하다. 롯데건설은 입주 4년 후 100% 납입 조건으로 입주 때까지 금융 비용을 자체 부담할 예정이며 대우건설은 최대 입주 2년 후까지 잔금 납부를 미뤄주기로 했다. 이 역대급 조건들은 각 회사의 수장들이 반드시 지키겠다고 못을 박은 사안이기도 하다.
백정완 대우건설 사장은 "대우건설의 대표이사로서 모든 사업조건을 하나하나 직접 챙기겠다"며 "사업비 전체조달부터 이주비 LTV 150%, 최저 이주비 10억원 등 제안한 모든 사업조건을 한 치의 거짓 없이 성실히 이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석주 롯데건설 대표 역시 "롯데그룹의 모든 역량과 네트워크를 총동원해 한남2구역을 호텔보다 더 좋은 최고의 주거 공간으로 완성하겠다"며 "재개발 역사상 다시 없을 사업 조건과 해외 거장들이 참여하는 명품설계로 단지를 완성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문제는 수주를 따내기 위해 무리하게 제공한 혜택이 불어난 비용으로 돌아올 수 있다는 것이다. 통상 재개발 입찰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건설사들은 40억~50억원의 마케팅 비용을 지출한다. 여기에 수백억원에 달하는 입찰 보증금은 건설사들의 현금흐름을 악화시킨다. 실제로 롯데건설과 대우건설 모두 한남2구역 입찰 보증금으로 800억원을 일시에 납부한 바 있다.
마침 두 건설사들이 유동성 위기설의 장본인이라는 점도 우려를 더한다. 대우건설과 롯데건설 모두 최근 몇년 간 정비사업을 확대해 온 결과 회사채 발행에 어려움을 겪으며 프라이머리 채권담보부증권(P-CBO)까지 손을 댔다. P-CBO는 BBB등급 이하의 기업이 신용보증기금의 보증으로 신용을 보강한 후 발행하는 증권이다. 회사채를 발행하기 어려운 중소·중견기업들이 주로 활용하는 자금 조달 수단이다. 하지만 금리 인상과 부동산 경기 침체 여파로 대기업도 신보의 보증에 기대면서 대우건설은 1천억원, 롯데건설은 300억원의 P-CBO를 각각 찍어냈다. 롯데건설은 계열사 롯데케미칼로부터 유상증자와 금전대여 등으로 7천억원을 지원 받기도 했다. 최근 두 건설사가 시공단으로 참여 중인 둔촌주공 재건축 사업에서도 7천억원의 사업비를 이전보다 3배에 달하는 이자로 조달하는 등 향후 금융비용 부담이 높아진 상황이다.
이에 대해 두 건설사 모두 위기는 아니라며 선을 그었다. 대우건설 관계자는 "올해 3분기 기준 현금성 자산만 2조2천억원을 보유하고 있어 외부 자금조달 없이 회사 자체적으로 단기부채를 상환하고 PF채무보증 리스크 대비를 마쳤다"고 설명했다. 롯데건설 관계자 역시 "고금리 시대 조합원의 경제적 부담을 줄이기 위해 제시한 혜택들을 당연히 모두 지킬 것이고, 그럴 수 있을 만큼 회사의 신용도는 우수하며 자금력도 풍부하다"고 전했다.
사업을 따내더라도 실적에 반영되기까지는 시간이 적잖이 소요될 전망이다. 김승준 현대차증권 연구원은 "정비사업은 관리처분인가와 철거, 이주 등 물리적인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에 당장의 착공 물량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며 "건설사들의 수주 지표는 좋지만 실적으로 바로 이어지지 못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시행사, 조합 등 차주를 위해 지급보증을 실행한 건설사들의 유동성 리스크(흑자부도) 가능성은 여전한 상황"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