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레고랜드 테마파크 조성을 위해 만든 프로젝트파이낸싱, PF 유동화증권 부도 사태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흐르고 있습니다.
증권사와 건설사들의 돈줄이 마르면서 유동성 위기가 자칫 연쇄 도산으로 이어지는게 아니냐는 우려까지 나오고 있습니다.
어제 시장에 퍼진 소문부터 확인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증권사들의 부도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가 진짜인 겁니까?
<기자>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다소 과장된 소문이었습니다.
거론된 증권사, 건설사들의 매각설도 사실이 아니라고 밝혔고, 자금조달도 일단 급한 불은 꺼놓은 상태입니다.
다만 사업 확장 과정에서 보유한 자산으로 감당하기 부담스러운 수준까지 부채수준이 늘어나 있는 것만은 사실입니다.
물론 이들은 미리 확보한 자금에 여유가 있기 때문에 부도 소문은 어불성설이라는 반응입니다.
<앵커>
부동산PF가 어떤 사업 구조이기에 증권사들의 부실 위험까지 거론되는 겁니까?
<기자>
증권사들은 개인 투자자들의 현금을 받아 주식을 대신 사들이는 것처럼 부동산 PF에서도 비슷한 역할을 합니다.
보통 레고랜드처럼 대규모 상업시설이나 주택단지를 조성하기 위한 프로젝트 파이낸싱에 자금을 중개하는데, 중요한 차이점은 이때 증권사들은 사업이 부도나면 발행해준 자금만큼 모조리 떠안는 조건으로 자금을 가져온다는 겁니다.
사업 초기 부지를 매입하거나 본격적인 인허가를 대비해 필요한 자금을 빌려주는 '브릿지 론(Bridge Loan)'이나 자금중개, 지급보증을 제공하고 수수료 수익을 얻는 구조입니다.
물론 사업타당성이 있다면 자기자본으로 직접 투자하거나 개인이나 법인고객에게 투자를 권유하는 방식으로 운영됩니다.
최근 4~5년간 부동산 경기가 달아오르면서 투자은행(IB) 사업의 일부로 사업 다각화를 위해 도입되면서 쏠쏠한 수익을 거두면서 이른바 '효자' 역할을 해왔구요.
하지만 공격적인 기준금리 인상으로 시장금리가 치솟고, 부동산 경기가 꺾이면서 가격이 떨어지고, 일부 지방에서 지어놓은 주택에 분양이 이뤄지지 않는 비율이 늘면서 제때 자금 회수를 못하다보니까 고스란히 증권사와 건설사들에게 타격이 되는 겁니다.
<앵커>
증권사들이 시장 활황시기에 무리하게 부동산PF를 키워놓은 것 아닌가 하는 의문도 듭니다.
금융사들이 어느 정도 위험을 안고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습니까?
<기자>
정부가 부동산 규제를 다소 풀어주고는 있지만 신용등급이 낮은 BBB급 건설사들은 이미 분양리스크까지 더해지면서 사업 안정성이 떨어질 수 있다는 경고도 나오는 상황입니다.
이 과정에서 PF 유동화증권은 설정한 만기에 자금 회수가 이뤄지지 않을 가능성이 커졌고, 최악의 경우 부도 처리되는데, 이를 감안해 증권사들이 우발 채무로 미리 손실로 반영해서 위험을 관리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지난해까지 부동산 경기 활황에다 증권사들이 돈되는 IB사업을 확대하는 과정에서 매입대출채권 규모가 크게 늘었고, 지난번(13일) 보도한 대로 PF에 적극적이었던 중소형사를 중심으로 이 비율이 자기자본의 절반 수준으로 크게 증가한 상태입니다.
부실하다고 알려진 것과 달리 소형증권사인 한양증권은 자기자본대비 우발부채가 16.8%로 그나마 낮은 편이고, 이번 레고랜드 사태 직접 영향을 받은 BNK투자증권은 65.5%, 하이투자증권은 자기자본의 124%가 부실 위험을 안고 있는 것으로 파악됩니다.
다올투자증권은 올해들어 약 6,500억원 가량을 신용보강해줬는데 1분기말 자기자본 대비 우발부채가 108.7%, 현재 92% 수준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금융회사들이 투자 위험을 줄이고 유동성을 확보하려는 과정에서 시장금리가 가파르게 오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증권사들은 현금 확보를 위해 보유중인 국고채를 대거 매도했고, 국고채 가격과 금리는 정반대로 움직이기 때문에 3년물 금리가 하루 만에 0.089% 오른 (1월말 1.8%, 7월 3%대) 연 4.331%까지 상승한 상태입니다. 이렇게 높아진 금리는 다시 유동성 부족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에 빠져 있는 것입니다.
정리하면 레고랜드 사태로 인한 부도 위험을 피하려는 증권사들의 국채매도와 최근 한은의 빅스텝까지 겹치면서 채권 투자 손실이 발생하고, 기업들이 빌려야 하는 자금의 대출이자가 급등하면서 시장이 얼어붙고 있는 겁니다.
<앵커>
시장에 이런 우려를 키운 건 대형 건설사인 롯데건설의 유상증자입니다.
우량 건설사가 자금압박을 받고 있다는데 대체 어떤 상황인겁니까?
<기자>
한 가지 사례를 들어보겠습니다. 롯데건설은 지난 18일 이사회를 열어 2천억원 규모의 주주배정 유상증자를 결의했습니다. 최대주주인 롯데케미칼과 롯데호텔 등이 각각 43%씩 보유하고 있는데 이들 기존 주주을 통해 자금을 조달할 계획입니다.
이 가운데 롯데케미칼만해도 일진머티리얼즈 인수를 준비하고 있는 상황인데 추가 자금을 동원해야 하다보니 롯데그룹 차원에서 전반적인 자금 동원 부담이 커지는 셈이기도 합니다.
하반기들어 회사채 금리가 급격히 오르면서 만기가 돌아온 자금을 막기 힘들어지는 건 어느 건설사나 마찬가지이고, 롯데건설도 영향을 받고 있는 겁니다.
롯데건설만 떼어 보면 지난 3월 기준으로 자산 6조 3천 억, 차입금 의존도는 22% 정도로 신용등급이 A인 우량한 건설사입니다.
그런데도 지난달에도 약 800억 규모 회사채를 상환할 자금을 마련하지 못해 신용보증기금 지원 등을 받았고, 이달들어 레고랜드 사태로 부동산 PF 부실 위험이 커지자 급하게 운영자금을 마련하고 있는 겁니다.
게다가 신용평가사에서 확인된 사항으로 보면 현재 지방 분양시장이 하락하고 분양실적 감소로 실적에도 상당한 부담이 커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옵니다.
부동산 PF 가운데 아직 착공하지 못해 부도 위험이 큰 사업장만 70%, 이에 대한 지급보증만 모두 4조 7천억원으로 보유한 자산으로 감당하기 힘든 상황으로 파악되고 있습니다.
이번 유상증자와 관련해 롯데건설 관계자는 "상반기 기준 부채비율이 150%대로 높지 않은 비율이고, 선제적 차원에서 자금 안정성을 높이기 위해 유상증자를 하려는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앵커>
증권사들은 국채를 팔아 급한 현금을 확보하고, 건설사들은 유상증자로 일단 사태 수습을 하는 형국입니다. 레고랜드 사태는 진정될 기미가 있는 겁니까?
<기자>
금융권에서는 강원도가 당초 안이하게 대응하다 금융시장 불안을 키웠다는 비판이 컸는데, 다음달 예산을 편성해 내년 1월까지 2,050억원의 채무를 갚겠다는 입장으로 돌아서면서 일단 한 고비는 넘긴 상황입니다.
대한민국 정부 신용과 동급으로 분류되는 지방자치단체가 보증을 서다가 부도가 나면 이는 금융회사 뿐만 아니라 국가신용등급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안인데 일단 급한 불은 끈 셈입니다.
실제 레고랜드 사태 이후 한국도로공사, 부산교통공사 등 우량등급의 특수채가 유찰됐고, 은행채 금리가 급격히 오르면서 산업은행 채권도 거래가 막힐 정도였습니다.
취재 과정에서 한 중소형증권사 대표는 "부동산PF 부실로 업황이 어려워진 것은 사실이지만 이로 인해 금융회사의 신용도와 펀더멘털이 손상되었다는 건 전혀 인정하기 힘들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다만 단기간 시장에 대한 신뢰가 훼손된 부분은 사실이기 때문에 자금조달에 필요한 비용증가가 연말까지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도 내놨습니다.
또 다른 대형증권사 투자은행업계 관계자는 기준금리 상승으로 2금융권의 조달금리 어려워지고 있는 상황이고, 대기업 계열사들도 애로를 겪는 시점에 이를 풀기 위한 당국의 지원이 시장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는 불만을 토로하기도 했습니다.
지자체인 강원도도 마찬가지지만 금융당국도 시장안정에 필요한 구두개입이나 자금 지원이 지나치게 원론적이라는 업계 반응입니다.
<앵커>
마침 금융당국도 오늘 레고랜드 사태 이후 대응을 강화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습니다.
당초 2조원 증액한다던 채권시장안정펀드를 20조원까지 늘릴 수 있다고 하는데 이렇게 하면 효과가 있는 겁니까?
<기자>
김주현 금융위원장이 오늘 회사채 시장과 CP 등 단기자금 시장 불안이 전반적인 금융시장으로 확산하지 않도록 필요한 대응을 강화하도록 지시했습니다.
이에 따라 기존 채권안정펀드 여유재원인 1조 6천억원을 신속히 매입 재개하고, 추가 캐피탈 콜을 즉각 준비할 예정입니다.
채권시장안정펀드는 2020년 팬데믹 당시 최대 20조 최대 재원으로 설정했다가 민간 금융사로부터 캐피털콜로 3조원만 받아서 절반 사용하고서 1.6조 남은 건 이번에 선제적으로 가동할 예정인 겁니다.
이와 함께 KDB산업은행, IBK기업은행, 신용보증기금 등 국책금융기관을 통한 회사채·CP 매입을 기존 6조원에서 8조원으로 증액해서 수급을 안정시키기로 했습니다.
다만 회사채와 CP시장 안정을 위한 자금 집행은 지난 7월에 발표했던 사항이라 실제 시장에 주는 효과는 제한적이고, 당초 20조원 규모로 조성하려던 채권시장안정펀드도 현재 규모로는 시장 심리를 안정시키기는 어렵다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남은 수단은 정부가 직접 자금을 공급하는 기업유동성지원기구(SPV)인데, 비금융회사 회사채를 집중적으로 최대 10조원 규모로 흡수하는 방안이 남아있습니다.
정부가 부도위험이 커진 부동산PF 시장 상황에 따라 추가 대책을 내놓겠다고 오늘 발표했는데 남은 수단이 이렇단 직접 개입 기구로 파악됩니다.
한국은행과 미국 연방준비제도의 추가 금리인상이 남아있기 때문에 채권시장이 추가적인 충격이 발생할 경우 쓰게 될 마지막 카드로 보여집니다.
<앵커>
네 여기까지 듣죠. 증권부 김종학 기자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