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 무시해?"…애꿎은 여성 살해하고 연속살인 계획한 60대

입력 2022-10-10 14:58
수정 2022-10-10 14:58


"너 때문에 죄 없는 사람이 죽었어. 너도 죽어야 해."

지난 6월 30일 오후. 강원 강릉시 한 주점에서 이모(61)씨는 "살려달라"는 애원을 무시한 채 A(54·여)씨에게 흉기를 휘둘러 살해하려 했다.

"아무리 돈이 좋아도 어제 왜 나를 모른 척했어. 너 때문에 내가 얼마나 비참했는지 알아"라며 비참한 심정까지 운운한 이씨는 A씨로부터 도대체 '어떤 무시'를 당했기에 끔찍한 범행을 저질렀을까.

전날 밤 이씨는 지인들과 함께 술집에서 술을 마시고 있었다. 때마침 같은 술집으로 A씨가 왔다. 이씨는 A씨가 운영하는 주점에 평소 손님으로 찾아 서로 알고 지내던 사이였다.

이씨는 A씨가 다른 사람들에게는 아는 척을 하면서 인사했음에도 자신에게는 아는 척을 하지 않자 '내가 기초생활보장 수급자로서 경제적 능력이 좋지 않고, 나와 아는 척을 하는 게 창피하기 때문에 일부러 무시했다'고 곡해했다.

이처럼 그릇된 생각이 빚은 오해는 끔찍한 살인 범행의 씨앗이 됐다.

이튿날 점심시간 이씨는 밥을 먹으러 오라는 식당 주인 B(54·여)씨의 말을 듣고 밥을 먹던 중 A씨를 살해하기 위해 철물점에서 흉기를 샀다.

다시 식당으로 돌아와 술을 마시는 이씨에게 B씨는 "왜 흉기를 샀느냐, 뭔가 나쁜 일을 하려는 것 아니냐"라고 물었으나 이씨는 묵묵부답으로 일관하며 술만 마셨다.

이에 전날 밤 이씨가 있었던 술집의 사장과 전화로 자초지종을 알게 된 B씨는 "남자가 별것도 아닌데 쫀쫀하게 이해를 못 한다"는 이야기를 했고, 격분한 이씨는 흉기를 마구 휘둘러 B씨를 살해했다.

A씨에 대한 적개심에 더해 '욱'하는 충동을 억제하지 못하고 애꿎은 B씨를 살해하는 잔혹한 범행을 저질렀다.

이씨는 이어 마침 B씨를 찾아온 언니에게도 흉기를 들이대며 "경찰에 신고하면 죽여버리겠다"며 으름장을 놓고 식당에 감금한 채 A씨가 운영하는 주점으로 갔다.

B씨를 잔혹하게 살해한 이씨는 A씨에게 "너 때문에 죄 없는 사람이 죽었어"라며 흉기로 A씨를 찔렀으나 천만다행으로 칼날이 손잡이에서 빠지면서 범행은 미수에 그쳤다.

범행을 저지르기 전 새벽 지인들에게 '앞으로 만나지 못할 것 같다'는 메시지까지 보냈던 이씨는 범행 후 경찰에 자수했다.

이씨는 살인죄와 살인미수죄에 더해 B씨의 언니를 감금한 혐의(특수감금)까지 더해져 재판에 넘겨졌다.

조사 결과 이씨는 1998년부터 2019년까지 폭력 범죄로 징역형 5회, 징역형 집행유예 2회, 벌금형 17회의 처벌을 받은 전력이 있었다.

망치로 때리거나, 흉기로 찌르거나, 맥주병과 맥주잔을 던지거나, 가위로 위협하거나, 소주병으로 내리치는 등 범행 내용도 위험하기 그지없었다.

범행들은 대체로 사소한 시비가 발생한 상황에서 충동을 억제하지 못하고 저지른 것들이었다.

이씨는 법정에서 "범행 당시 정신장애 등으로 약을 복용 중이었고 술에 취했으므로 심신상실 또는 심신미약 상태에 있었다"고 주장했다.

1심을 맡은 춘천지법 강릉지원 형사2부(이동희 부장판사)는 이씨가 정신과 치료를 받은 적이 있고 실제로 정신장애 3급 판정을 받은 사실 등을 들어 심신이 다소 미약한 상태에서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보인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심신미약자의 범행은 형을 임의로 감경할 수 있을 뿐 이씨가 정신장애로 인한 환각이나 환청 등 상태에서 범행을 저지른 것이 아닌 점 등을 근거로 법률상 감경은 하지 않는 게 타당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재판부는 "심신미약 상태 등 피고인에게 유리한 정상을 고려하더라도, 피고인이 범행을 진정으로 반성하고 참회하도록 하기 위해서는 책임에 상응하는 형벌이 필요하고, 사회로부터 영구히 격리해 수감할 필요가 있다"며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또 재범성 평가척도, 다면적 인성검사, 알코올사용장애 선별검사 결과를 토대로 이씨가 다시 살인 범죄를 저지를 위험성이 높다고 보고 20년간 위치추적 전자장치(전자발찌) 부착 명령을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