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칩4' 가동 임박…기술·시장 둘 다 포기 안돼

입력 2022-09-28 19:37
수정 2022-10-07 18:37
<앵커> 미국 주도의 반도체 공급망 협의체, 이른바 '칩4 회의'가 시작됐습니다. 우리나라도 참여를 결정한 상황에서 참여국 실무진 간 처음으로 의견을 주고받았습니다. 중국을 겨냥한 미국의 견제책인 만큼 중국 정부의 거센 반발에 우리가 어떻게 대응할지가 관건입니다.

먼저 양현주 기자가 보도합니다.

<기자> 이른바 '칩4'는 중국 반도체 굴기를 억제할 목적으로 미국이 주도하는 반도체 공급망 동맹입니다.

미국이 원천기술을 제공하고 우리나라는 메모리 반도체, 대만은 위탁생산을 담당하는 파운드리, 일본은 소재와 장비 분야를 맡아 반도체 공급망을 안정적으로 관리한다는 목적입니다.

압도적 기술 패권을 가진 미국의 허락 없이는 해외에 공장 설립조차 불가능한 현실에서 우리 정부도 이미 가입 의사를 밝혔습니다.

최근 첫 실무회의가 시작됐다는 소식이 전해졌지만 정부는 중국의 눈치를 보느라 공식적인 사실관계 파악을 피하고 있습니다.

반도체 수출 의존도가 높은 우리 무역 특성상 미국 편만 들 수 없는 실정이기 때문입니다.

과거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사드 설치로 인한 중국 보복으로 경제적 피해를 본 우리 입장에선 현명한 대응 전략이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점입니다.

전문가들은 우리 메모리 반도체에 의존하는 중국이 섣불리 보복을 감행하진 못할 것이라고 분석하면서도 기술 자립도를 더 높여야 한다고 지적합니다.특히 메모리 반도체에 편중된 우리 산업 현실을 극복하기 위해 비메모리 반도체에 적극적인 투자가 이어져야 한다는 의견입니다.

[양향자 / 무소속 의원(국회 반도체특위 위원장): 대한민국이 메모리 반도체만 가지고 국제무대에서 기술 패권 국가로 입지를 다질 수 없습니다. 비메모리까지 기업에 알아서 하라는 건 탄 1개를 주고 탄 100개 있는 병사와 싸우라는 것입니다. 정책만큼은 다른 방향에서 지원돼야 합니다.]

대만 TSMC 시가총액이 2년 만에 200조 원 넘게 증가한 것에 반해 삼성전자는 같은 기간 비슷한 수준에 머물러 있습니다. 반도체 주도권을 위해 100조 원 가까이 산업 현장에 투입하는 미국처럼 우리도 제도적 보완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입니다.

그러나 반도체산업 경쟁력을 위한 이른바 'K-칩스법'은 여전히 국회에 계류 중인 상황입니다.

최근 산업통상자원부가 기획재정부에 요청한 반도체 인프라 구축 예산 1천억 원도 전액 삭감됐습니다. 전문가들은 미국과 중국의 반도체 패권 경쟁 속 우리의 현명한 생존 전략이 어느 때 보다 급한 상황이라고 진단합니다.

한국경제TV 양현주입니다.

<앵커> 네. 더 자세한 내용 산업부 정재홍 기자와 이야기 나눠보겠습니다.

정 기자. 오늘 실무회의를 시작으로 반도체 칩4가 본격적으로 가동됐다는 것으로 받아들여도 되겠습니까.

<정재홍 기자> 27일 그러니까 어제 저녁 첫 실무회의가 시작됐다는 일부 언론 보도도 있었는데요.

외교부는 28일인 오늘 '미-동아시 반도체 공급망 회복력 작업반 예비회의'가 개최됐다며 우리나라를 비롯해 미국, 대만 그리고 일본이 참석 또는 참관했다고 설명했습니다. 우리 측에서는 정병원 주타이베이 한국 대표가 수석 대표로 참석하고 외교부와 산업부 국장급 관계자가 참관했습니다.

이날 회의에서는 회의의 명칭을 '미-동아시아 반도체 공급망 회복력 작업반'이라고 정하고, 앞으로 차기 회의 일정을 논의했습니다.

본격적인 4자 반도체 공급망 협의체 회의에 대한 물밑작업, 예를 들어 안건을 조율하고 본회의를 언제할지 논의하는 작업이 시작됐다고 볼 수 있습니다.

<앵커> 우리 정부에서는 칩4 동맹이라고 부르는 것 자체도 부담스러워 한다면서요.

<기자> 맞습니다. 언론에서는 주로 칩4 동맹이라고 부르고 사실이 그렇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우리정부는 '4자 간 반도체 협의체'으로 불러달라고 요청하고 있습니다.

예상하는 것처럼 중국 때문입니다.

칩4에 중국이 국가로 인정하지 않는 대만이 있기 때문에 '4국'이라고도 못 하고 '4자'라고 명명한 것이죠.

정부는 본래 칩4 실무회의 일정 노출을 극도로 경계했습니다. 아무래도 중국의 눈치 본 것 아니냐는 해석입니다.

반도체 중국 의존도가 높은 우리 입장에선 중국을 배척하려는 회의를 한다고 말할 수가 없는 겁니다.

<앵커> 그래서 미중 고래싸움에 낀 한국이라고도 하잖아요. 입장이 난처한 게 이해는 됩니다.

<기자> 데이터상으로도 증명되는 게요. 홍콩을 포함하면 우리나라 반도체 수출의 60%가 대(對)중국 물량입니다.

여기에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중국에 대규모 메모리 반도체 공장도 가지고 있습니다. 삼성전자는 중국 시안에 낸드플래시 공장을 운영하고, SK하이닉스도 우시에 D램 생산라인이 있습니다. 두 기업 모두 각각 전체 낸드와 D램 생산량의 40% 이상을 중국에서 생산합니다.

물론 국내에서처럼 최첨단 공정이 적용된 건 아니지만 중국 내에 있다는 게 불안 요소로 작용하는 겁니다.

현재 두 기업 모두 칩4와 관련해선 발언을 굉장히 조심하면서 최악의 상황까지 대비하는 모습입니다. 최근 최태원 SK 회장은 미중 갈등 속 생존 전략에 대해 "군사적 충돌까지 포함한 최악의 시나리오도 대비하고 있다"고 답했습니다.

<앵커> 미국의 요구가 거세고 중국의 반발도 만만치 않은 상황에서 기계적 중립을 유지한다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지 않습니까. 우리의 대응 전략 어떤 것들이 있습니까.

<기자> 일단 많이 위축돼 있는데 우리 스스로 자신감을 가질 필요가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조언입니다. 쉽게 말해서 '우리가 망하면 중국도 망한다'는 건데요.

좀전의 데이터를 바꿔 말하면 중국도 우리에게 메모리 반도체 의존도가 크다는 것이고 함부로 할 수가 없다는 말이 됩니다.

한편으론 대만의 중국 반도체 수출 물량은 우리 보다 더 많습니다. 지난해 1,180억 달러로 우리나라 768억 달러 보다 약 50% 가량 더 큽니다. 중국이 대만도 위협하는 상황이지만 당장 TSMC 물량을 못 받으면 중국도 대혼란을 겪을 거라는 게 대만의 방어논리입니다.

한국 반도체 산업이 가진 기술력과 입지를 내세워 칩4 동맹 속에서도 의제설정, 논의 전개 과정에 우리 입장을 충분히 반영해 불필요한 오해 발생을 최대한 줄여야 한다는 게 첫 번째입니다.

가능하다면 중동의 석유수출국기구 OPEC처럼 반도체 생산, 공급에 관여하는 나라들을 공급망 협의체 안 편입을 유도해서 '미국을 위한 동맹'이라는 이미지를 불식시켜야 한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앵커> 우리 반도체 산업은 아직도 메모리 비중이 크지 않습니까. 중국이 메모리 반도체 기술 격차를 좁혀가고 있는데 우리의 입지도 점점 약해지지 않을까란 우려도 있습니다.

<기자> 비메모리 반도체 육성을 외치는 논리와 같은 맥락입니다.

비메모리 시장이 메모리에 비해 2배 이상 크다는 시장논리도 작용하지만 기술 패권을 쥐기 위해 시스템반도체를 더 육성해야 한다는 목소리입니다.

한국과 대만이 잘 나간다고 해도 현재 짜여진 반도체 시장은 결국 미국의 판입니다. 이번 칩4 동맹도 그동안 내줬던 메모리, 파운드리 패권을 미국이 다시 움켜쥐겠다는 의미고 이 과정에서 빠르게 성장하는 중국을 내치겠다는 의도입니다.

미국이 반도체지원법과 인플레이션 감축법으로 수십조 원을 투자해 자국 주도 공급망을 재편하는 것처럼요. 우리도 중소대기업 가릴 것 없이 비메모리 반도체 산업 육성을 위해 지원해야 한다는 주장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용인반도체클러스트의 사례처럼 지자체가 이견도 못 좁혀서 산업단지 조성도 못 하는 꼴이거든요. 현재 국회에는 이런 사례를 방지하도록 국가첨단전략산업위원회에 단지 조성 권한까지 부여하는 내용의 국가첨단전략산업법 개정안이 발의돼 있습니다. 또 기업들의 세액공제율을 확대하는 조세특례제한법 개정안도 기재위 상정을 앞두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현재 우리 정치 국면에선 엉뚱한 논쟁에 의해 정작 중요한 과제는 묻히는 상황입니다.

<앵커> 잘 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