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치솟는 물가를 잡기 위해 결국 3차례 연속 자이언트 스텝(한꺼번에 기준금리 0.75%포인트 인상)을 밟으면서, 한국은행의 빅 스텝(0.50%포인트 인상) 가능성도 조금씩 커지고 있다.
0.75%포인트(p)까지 벌어진 미국과의 금리 격차를 장기간 방치할 경우 더 높은 수익률을 좇아 외국인 투자자금이 빠져나가고, 원화 가치가 급격히 떨어져 결국 물가 상승까지 부추길 수 있기 때문이다.
다음 달 12일 금융통화위원회(이하 금통위) 통화정책방향결정회의에 앞서 실제로 이런 조짐이 나타날 경우, 한은 안팎에서 "베이비 스텝(0.25%포인트 인상)만으로는 부족하다"는 목소리가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연준의 세 번째 자이언트 스텝으로 한국과 미국의 기준금리는 약 한 달 만에 다시 역전됐다.
지난 7월 연준이 두 번째 자이언트 스텝을 밟은 뒤 미국의 기준금리(2.25∼2.50%)는 약 2년 반 만에 한국(2.25%)을 앞질렀다가 8월 25일 한국은행의 0.25%포인트 인상으로 같아졌지만, 이제 격차가 0.75%포인트까지 또 벌어졌다.
만약 다음 달 12일 한은 금통위가 베이비스텝만 밟고, 11월 초 연준이 다시 자이언트 스텝에 나서면 두 나라의 금리 차이는 1.25%포인트로 커진다.
이어 11월 말 금통위가 또 0.25%포인트만 올리고, 연준이 12월 최소 빅 스텝만 결정해도 격차가 1.50%포인트에 이른다.
과거 사례를 보면, 미국의 정책금리(기준금리)가 한국을 웃도는 역전 현상은 1996년 6월∼2001년 3월(1기), 2005년 8월∼2007년 9월(2기), 2018년 3월∼2020년 2월(3기) 세 차례 나타났다.
특히 1기의 경우 미국 금리가 최대 1.50%포인트 높은 상태가 6개월(2000년 5∼10월)이나 지속됐다. 2기, 3기의 최대 역전 폭은 1.00%포인트(2006년 5∼8월), 0.875%포인트(2019년 7월)였다.
미국의 잇따른 자이언트 스텝 또는 빅 스텝에 금통위가 계속 베이비 스텝으로 대응하면, 결국 올해 말께 한미 금리 격차는 역대 최대 수준(1.50%포인트)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이처럼 예상보다 빠른 미국의 통화 긴축 기조에 따라 한은 금통위도 올해 남은 10월, 11월 두 차례 통화정책방향회의에서 모두 기준금리를 올릴 수밖에 없는 처지다.
달러와 같은 기축통화(국제 결제·금융거래의 기본 화폐)가 아닌 원화 입장에서 기준금리가 미국보다 크게 낮아지면, 외국인 투자 자금이 빠져나가고 원화 가치가 떨어질 위험이 커지기 때문이다.
더구나 원화가 절하(원/달러 환율 상승)될수록 같은 수입 제품의 원화 환산 가격은 높아지는 만큼, 가뜩이나 치솟는 물가에 기름을 부을 수도 있다.
이창용 한은 총재도 최근 로이터통신과의 인터뷰에서 "미국보다 금리 인상을 먼저 종료하기는 어렵다"고 말한 바 있다.
따라서 시장과 경제주체들도 당분간 기준금리가 계속 오를 것으로 각오하고 있지만, 문제는 인상 폭이다.
일단 이 총재는 지난달 25일 0.25%포인트 인상을 결정한 뒤 "현 경제 상황이 지난 7월 예상했던 국내 물가, 성장 흐름과 크게 다르지 않은 만큼 0.25%포인트의 점진적 인상이 적절하다고 판단했다. 당분간 0.25%포인트씩 인상하겠다는 것이 기조"라고 말했다.
하지만 국내 9월 소비자물가 지표에서도 뚜렷하게 물가 정점 통과가 확인되지 않거나, 한미 기준금리 격차 확대로 외국인 자금이 증시·채권 시장에서 기조적으로 빠져나가거나, 원화 절하(가치 하락)가 예상보다 빠르게 진행될 경우 7월에 이어 두 번째 빅 스텝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이 총재는 지난달 빅 스텝 가능성에 대한 질문에 "충격이 오면 원칙적으로 고려할 수 있지만, 지금 상황으로는 고려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바꿔말하면 예상 밖의 충격이 커지면 빅 스텝도 배제할 수 없다는 뜻이다.
같은 달 29일 블룸버그TV와의 인터뷰에서도 그는 "미리 약속하고 싶지는 않다. 이런 불확실성을 고려하면 데이터에 기반해 결정해야 한다"고 빅스텝의 여지를 남겼다.
(사진=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