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경제가 불안할수록 미국 증시로 자금이 몰리는 현상이 강해지고 있다.
기축통화를 발행하는 미국 경제가 상대적으로 안전하고 회복력도 강하다는 인식에 기인한다.
같은 선진 경제권이지만 유럽이나 일본 등의 통화 가치가 올해 들어 달러화 대비 큰 폭으로 하락한 것도 이런 추세를 뒷받침한다.
지난 14일 기준 엔화 가치는 달러당 144엔대까지 떨어지면서 24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고, 영국 파운드화 가치도 달러당 0.87파운드까지 추락하면서 37년 만에 가장 낮았다.
미국도 8∼9%대를 넘나드는 높은 소비자물가 상승률과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급격한 기준금리 인상으로 경제가 불안한 상황이지만 유럽이나 일본보다는 상대적으로 덜 불안하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전 세계 투자자들이 더 큰 변동성을 회피하기 위해 상대적으로 덜 위험한 미국 증시에 자금을 쏟아붓고 있다고 보도했다.
WSJ에 따르면 S&P 500 지수는 올해 들어 저점을 찍었던 지난 6월 중순 이후 이달 6일까지 6.6% 상승하면서 유럽과 아시아의 대표 지수 상승률을 상회했다.
같은 기간 유럽의 스톡스 600 지수는 2.9%, 일본 닛케이 225 지수는 4.5% 상승했고, 독일 닥스(DAX)와 중국 상하이 지수는 1.3% 하락했다.
퍼스트아메리칸신탁의 제리 브라크만 최고투자책임자(CIO)는 WSJ에 "미국보다 더 불안한 시장들이 많다"며 10년 만기 미국 국채나 경기 방어주 위주로 안전하게 투자하고 있다고 밝혔다.
브라크만 CIO는 또 마찬가지 이유로 가까운 시일 내에는 신흥시장이나 중국, 일본, 유럽 증시 투자는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덧붙였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이어진 고유가 추세로 떼돈을 번 중동 산유국들도 미국 증시에 집중적으로 투자하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 국부펀드(PIF)는 올 2분기에만 아마존과 마이크로소프트, JP모건 등 미국 우량주에 75억 달러(약 10조4천억 원)를 투자했다고 WSJ은 전했다.
최근 미국 금융시장으로 전 세계 자금이 몰리는 또 다른 배경으로는 '킹 달러'(King dollar) 현상이 꼽힌다.
올해 들어 주요 통화 대비 미 달러화 가치는 수십 년 만에 최고 수준으로 치솟았다.
미 연준이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큰 폭으로 기준금리를 인상하면서 다른 주요 경제권과의 금리차가 확대돼 빚어진 현상이다.
달러 가치가 치솟으면서 원화를 달러로 환전해 송금해야 하는 유학생 학부모 등은 힘든 상황에 처했지만 미국 주식 투자자에게는 또 다른 기회가 되고 있다.
특히 고배당 수익을 얻을 수 있는 미국 배당주 투자자들은 정기적인 달러 수입에다 환율 상승에 따른 수익 증대 효과까지 누리고 있다.
다만 수년 전부터 미국 배당주 투자를 해온 투자자들은 최근 환율 급등으로 인한 수입 증가 효과를 누릴 수 있지만 지금 시점에서 새로 미국 주식에 투자하려면 환율 변동에 따른 투자 부담이 커질 수 있어 신중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자료사진=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