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렉시트(Brexit·영국의 EU 탈퇴) 승부수로 영국 총리 자리에 올랐던 보리스 존슨이 파티게이트와 측근 인사 문제 등으로 결국 3년 만에 불명예 하차한다.
5일(현지시간) 보수당 최종 경선에서 리즈 트러스 외무부 장관이 차기 총리를 겸하게 되는 보수당 대표로 선출됨에 따라 존슨 총리는 6일 엘리자베스 2세 여왕에게 사임을 전한 뒤 공식적으로 물러난다.
◇브렉시트로 승부수…무능·스캔들로 몰락
2019년 7월 23일 총리직에 오르고 그해 12월 총선에서 대승했을 때만 해도 존슨 총리의 브렉시트 승부수가 통했을 뿐만 아니라 그의 집권 가도에 당분간은 장애가 없을 것으로 보였다.
집권 초기 정치 기반 부족으로 역사상 최단명 총리로 기록될 뻔했으나 브렉시트 완수와 지역 균형발전을 내걸고 총선을 치러서 전세를 확 뒤집었다.
그러나 존슨 표 정치를 본격 시작하려던 참에 코로나19 사태가 터지면서 그의 국가 경영 능력에 의문이 제기되고 도덕성 논란까지 불거지면서 내리막길을 타기 시작했다.
정부의 무능한 대응 탓에 영국은 코로나19로 사망자 총 17만여명, 2020년 경제성장률 -9.8%라는 타격을 입었고 본인도 중환자실에 들어가기까지 했다.
세계 첫 코로나19 백신 접종, 브렉시트 본격 단행으로 다시 분위기가 바뀌는 듯했지만 작년 말부터 총리실 등에서 코로나19 봉쇄규정을 어기고 파티를 벌였다는 의혹이 제기되며 도덕성에 타격을 입었다. 여기에 물가 급등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는 모습도 추가적인 악재가 됐다.
올해 들어 우크라이나 전쟁과 브렉시트와 관련해서 러시아와 EU에 강경대응하며 관심을 분산시키려고 했지만 통하지 않았고, 존슨 총리가 이끄는 보수당은 선거에서 연이어 대패했다.
급기야 보수당 의원들의 요구로 6월 초 신임투표가 개최됐지만 존슨 총리는 또 살아남았다.
그러나 반대가 40%가 넘는 불안한 승리였고 곧바로 터진 성 비위 측근 인사 문제로 예상보다 빨리 결정타를 맞았다. 리시 수낵 재무부 장관을 필두로 줄줄이 사표를 던졌고 내각이 붕괴할 상황이 되자 불사조 같던 존슨 총리도 손을 들었다.
◇화제성 가득한 이단아…벌써 총리직 재도전설
존슨 총리는 정치계 이단아에 도덕성 논란도 끊이지 않았지만 런던 시장 시절 얻은 대중적 인기와 브렉시트를 발판으로 총리직까지 올랐다.
그는 마치 다들 비판하면서도 보게 되는 인기 드라마 같은 인물이었다.
명문 기숙학교인 이튼 스쿨과 옥스퍼드대를 거친 엘리트이지만 안 빗은 듯한 머리와 어수룩한 행동으로 상대의 경계를 낮췄다.
기자시절 가짜 코멘트로 해고되고 자신의 불륜과 관련해 거짓 해명을 했다가 당에서 징계를 받기도 했다.
총리가 된 후에도 관저 호화 인테리어 비용 처리, 의원 로비규정 위반 징계 무마 시도 등의 일들이 이어졌고 23세 연하 셋째 부인도 국정개입 의혹으로 논란을 키웠다.
윈스턴 처칠 전 총리를 존경했지만 총리답지 않게 가볍고 진지하지 않은 언행으로 계속 지적을 받았고 '광대'라는 별명까지 얻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복제인간 같다는 비난을 한 적도 있다. 최근엔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돈독한 관계를 유지했다.
사임 발표 후에는 에너지 위기와 생계비 급등으로 곳곳에서 악소리가 나오는 와중에 뒤늦은 결혼파티, 신혼여행, 해외휴가 등을 즐기며 유유자적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는 떠밀려 나가는 처지마저도 농담거리로 삼더니 이제는 강연 등으로 돈을 벌어둔 뒤 다우닝가 10번지 재입성을 노리고 있다는 얘기가 들린다.
실제 선거기간 보수당원 대상 여론조사에서 그는 총리 후보 두 명보다 더 높은 지지를 받기도 했고 영국 정치사에서 물러난 전 총리가 재집권하는 것은 드문 일도 아니다.
그러나 지난달 입소스가 2차대전 이후 총리들의 성과에 관해 여론조사를 했을 때 존슨 총리는 가장 부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당장 존슨 총리의 정치 생명은 파티게이트 관련한 의회 조사에 달렸다. 총리실에서 방역규정 위반이 없었다는 발언으로 의회를 오도했다는 결론이 나면 의원직 박탈까지도 가능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