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새 정부의 친원전 정책과 수주 낭보에도 불구하고 웃지 못하는 원전 대장주가 있습니다. 바로 한국전력기술인데요.
최근 우리나라가 3조원 규모의 원전 수출에 성공했지만 한전기술은 참여하지 않는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취재기자와 자세히 알아봅니다. 산업부 방서후 기자 나와 있습니다.
방 기자, 한전기술이 왜 이번 사업에 불참하나요?
<기자>
지난 주였죠. 한국수력원자력이 이집트 엘다바 원전 건설 프로젝트 일부를 수주했습니다.
13년 만의 원전 관련 수출인데다 사업비만 3조원 규모에 달하는 만큼 고사 위기의 원전 업계에 숨통이 트일 것이라는 장밋빛 전망이 쏟아졌는데요.
문제는 한수원이 수주한 부분이 원자로가 있는 1차 계통, 즉 원자력 계통이 아니라는 데 있습니다. 그건 러시아 기업이 맡고요.
원자로를 제외한 2차 계통은 전력 계통이라고 하는데, 이 전력 계통에 속하는 터빈 건물 시공과 보조 기자재 공급을 한수원이 따낸 겁니다.
2차 계통은 전력 발전소라면 다 가지고 있는 겁니다. 원자력과 화력의 차이가 없다는 거죠. 사실상 이번 수주가 원전 수주가 아닌 건설 수주라는 지적을 받는 이유입니다.
때문에 원전 설계 기업인 한전기술로서는 참여하고 싶어도 참여할 거리가 없는 겁니다.
실제로 한전기술은 지난해 3월부터 한수원이 주도하는 '팀 코리아'의 일원으로 참여해 엘다바 원전 사업을 따내고자 공을 들였지만 한국경제TV 취재 결과 한전기술은 이번에 참여하지 않습니다.
<앵커>
원자로를 수출하지 않는 이상 한전기술은 할 일이 없다?
<기자>
그렇습니다. 한전기술은 국내 유일의 원전 설계기업입니다. 원자력발전소 종합 설계와 원자로 계통 설계 기술을 보유했고요.
한국표준원전 'OPR1000', 차세대 원전 'APR1400', 그리고 중소형 원전인 'SMART'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원자력발전소 노형을 설계했습니다.
원자로 설계와 원자력 관련 매출이 전체 매출의 70%를 넘을 만큼 원전 의존도가 높습니다.
한국수력원자력이 발주하는 국내 물량은 모두 한전기술이 단독으로 수주한다고 보시면 되고요.
해외 수출 건 역시 한국전력 등 전력그룹사가 구성한 컨소시엄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한 마디로 우리나라가 원전 사업을 따내기만 하면 한전기술의 일감으로 이어지는 구좁니다.
따라서 새 정부의 탈원전 정책 폐기에 따른 수혜를 가장 많이 입을 것으로 기대를 모았는데요.
하지만 시작부터 상황이 꼬인 셈입니다.
<앵커>
그래도 새 정부 들어 해외를 겨냥한 원전 세일즈가 적극적이지 않습니까?
공사가 멈췄던 국내 원전 건설이 재개될 조짐도 보이고요.
그러면 한전기술이 엘다바가 아니라도 돈을 벌 수 있는 것 아닙니까?
<기자>
돈은 벌기까지 시간이 걸린다는 게 문젭니다.
일단 윤석열 정부가 오는 2030년까지 10기의 원전 수출을 공약했는데요.
현재 우리나라가 참여를 저울질하고 있는 체코와 폴란드, 사우디아라비아 원전 물량이 4기, 금액으로는 60조원에 달합니다.
당연히 이 굵직한 사업들을 한수원이 따내면 한전기술이 설계를 맡을 가능성이 높죠.
하지만 현재 진행 속도가 가장 빠른 체코 두코바니 원전조차 우선협상대상자와 최종사업자 선정은 2년 뒤인 2024년에나 이뤄질 전망입니다. 착공은 2029년이니까 실적 반영은 더 늦어지겠죠.
또한 국내 원전 중에서는 공사가 중단됐던 신한울 3호기와 4호기의 건설 재개가 유력한데, 역시 관련 매출 반영 시점은 빨라야 2024년으로 예상됩니다.
전문가들은 새 정부의 탈원전 폐지 정책이 시장 수혜로 이어지기까지는 현실적인 시차가 존재하고, 이는 한전기술뿐만 아니라 국내 원전 관련주 전체에 해당한다고 입을 모읍니다.
<앵커>
최근 한전기술이 국민연금의 블랙리스트에 올랐다는데, 이건 무슨 얘깁니까?
<기자>
정확히는 국민연금의 비공개 중점관리기업에 지정된 겁니다.
국민연금은 현재 한전기술의 지분 7.5%를 보유한 2대 주주인데요. 주주권 행사 시작 단계인 '비공개 대화'에서 중점관리사안이 개선되지 않았기 때문에 비공개 중점관리기업으로 단계를 높인 겁니다.
그렇다면 국민연금은 왜 한전기술을 모니터링하기 시작했느냐. 한전기술과 국민연금 모두 확답을 피했지만 지난 2012년 한전기술이 수주한 가나 타코라디 발전소 증설 사업 관련 부실이 원인으로 꼽힙니다.
한전기술이 사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부실시공이 드러나 1천억원이 넘는 추가 건설비가 발생했고, 시공사와의 법적 다툼을 벌인 결과 860억원 가량의 손실을 떠안았습니다.
이 중 상당 금액이 이미 실적에 반영되긴 했지만 아직도 관련 소송이 진행 중인 점을 감안하면 기업 가치를 훼손할 만한 불확실성이 남아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만약 한전기술이 이번에도 이렇다 할 개선 여지를 보이지 않는다면 국민연금은 공개 중점관리기업에 한전기술의 이름을 올릴 것이고, 나중에는 주주제안을 비롯한 적극적 주주 활동에 나서게 됩니다.
결국 한전기술은 주주 가치 제고를 위해 어떤 대책이든 내놓아야 하는데, 당장 실적도 그렇고 회사를 둘러싼 환경이 녹록지 않은 상황입니다.
<앵커>
또 어떤 리스크가 있나요?
<기자>
오버행 이슈가 있습니다. 사상 최악의 적자를 기록하고 있는 모회사 한국전력이 보유한 한전기술 지분을 내년 말까지 매각할 계획인데요.
한전이 매각할 한전기술 지분은 14.77%, 금액으로는 4천억원에 달합니다.
하지만 증시 변동성이 높은 상황에서 적자에 허덕이는 한전이 협상에서 우위를 차지하기는 어려워 보입니다.
벌써 한전이 보유한 한전기술의 지분 가치가 지난해 말 대비 30% 이상 하락한 상태인데다,
한전이 과거 낮은 할인율로 한전기술 지분 매각을 추진했다 실패한 경험이 있는 만큼 헐값에 처분할 가능성이 높다는 게 IB업계 관계자들의 분석입니다.
<앵커>
잘 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