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대 파운드리(반도체위탁생산) 업체 대만 TSMC의 기술 개발 총책임자 출신으로 중국에 스카우트됐던 반도체 업계 거물이 자신의 선택을 '일생의 실수'라며 후회했다.
TSMC를 떠나 중국 반도체 굴기의 핵심 회사인 SMIC(中芯國際·중신궈지)에 몸담았던 장상이(76)는 미국 캘리포니아 소재 컴퓨터역사박물관(CHM)과의 역사 구술을 위한 면담에서 이 같이 말했다고 12일 대만 중앙통신사가 보도했다.
그는 "사람의 인생 중 때로 바보 같은 짓을 저지르곤 한다"며 "SMIC에 합류한 것은 바보 같은 일 중의 하나였다"고 말했다.
장상이는 대만이 주도하고 있는 세계 파운드리 업계의 거물 중 한 명으로 통했다.
대만 출신인 장상이는 미국 프린스턴대와 스탠퍼드대에서 전자공학을 전공하고 1997년 TSMC에 들어가 첨단 반도체 개발 업무 총책임자 자리까지 올랐다가 2013년 퇴직한 인물이다. 퇴직 후 그는 중국 본토로 건너가 중국의 반도체 굴기에 힘을 보태는 데 적극적 역할을 했다.
장상이는 친정인 TSMC와의 관계를 고려한 듯 2016년부터 2019년까지 SMIC에서 핵심 경영진이 아닌 독립이사를 맡았다. 그러나 2019년 투자 계획이 20조원에 달했던 중국의 신생 파운드리사인 우한훙신반도체제조(HSMC)의 최고경영자(CEO)로 자리를 옮기면서 중국의 반도체 굴기에 적극적으로 가세했다.
사기 논란 속에서 HSMC가 좌초하자 장상이는 2020년 말 이 회사를 그만두고 SMIC 부회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당시 업계에서는 화웨이와 더불어 미국의 핵심 표적이 돼 다층적 제재를 받아 어려움에 빠진 SMIC가 장상이 영입을 통해 첨단 미세 공정의 돌파구를 마련하려 한다는 관측이 제기된 바 있다.
그러나 두 번째 SMIC 시절 역시 순탄치 않았다. 장상이가 핵심 경영진으로 합류하자 2017년부터 SMIC를 이끌던 같은 TSMC 출신 량멍쑹 CEO가 이에 반발해 사직 의사를 밝히는 등 SMIC의 최고 경영진 간 내부 갈등이 표면화됐다.
결국 사내 권력 다툼 끝에 장상이는 1년도 채 버티지 못하고 '개인 사유'를 이유로 작년 11월 SMIC에서 또 나왔다.
장상이는 이번 구술 면담에서 자신이 지금 미국 국적을 갖고 있다는 점 때문에 SMIC에서 신뢰를 얻을 수 없는 분위기였다고 토로했다.
그는 또 미국의 제재로 SMIC가 선진 공정 장비를 구할 수 없어 7㎚ 공정 제품을 생산하지 못하고 있다고 전하기도 했다. 그러나 최근 업계에서는 SMIC가 미국의 제재 속에서도 이미 7㎚ 제품 양산에 이미 성공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장상이는 작년 말 SMIC에서 퇴직했고 이번 구술 면담은 지난 3월 이뤄졌다는 점에서 그의 평가가 현시점에서 SMIC의 최첨단 공정 운영 능력을 온전히 반영하는 것은 아니라고 볼 수 있다.
(사진=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