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칩4 동맹'은 왜 중국의 '발작버튼'인가

입력 2022-07-26 19:10
수정 2022-07-26 19:10
<앵커>

최근 반도체 투자심리를 흔드는 단어가 하나 있습니다. 바로 미국이 주도한 반도체 4국 동맹, 이른바 '칩4'인데요. 중국이 연일 예민한 반응을 쏟아내면서 제2의 사드 사태가 재현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도 나오고 있습니다. 미국이 추진 중인 반도체 지원법 의회 통과가 임박하면서 '칩4 동맹'이 핫이슈로 떠오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 건가요?

<기자>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어젯밤 코로나19로 격리 중임에도, 화상 회의를 통해 미 의회의 반도체법 처리를 촉구했습니다. 그만큼 중요한 어젠다인거죠.

'반도체법'은 미국 내 반도체 생산 확대를 위한 보조금 520억 달러, 우리 돈으로 약 68조 원을 기업에 지원하는 법안입니다. 그동안 미국 의회에서 진통을 겪었는데 슬슬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르면 다음 달 중 미 의회를 통과할 전망입니다.

혜택도 중요하지만 눈여겨 볼 부분은 미국 정부의 지원을 받으면 향후 10년간 중국 같은 우려 국가에 반도체 투자가 금지된다는 내용입니다.

'칩4 동맹'이라고 불리는 한·미·일·대만 4개국 동맹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는 것도 사실상 이 반도체 지원법과 같은 맥락에서 진행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아직까지 구체적으로 시기나 형태가 정해진 건 아니지만, 미국의 요구 속에 한·미간 물밑 조율이 이뤄지고 있는 상황입니다. 미국의 확실한 입장은 우리 편한테 엄청난 혜택을 주려고 법까지 만들었으니, 다른 데 가서 놀면 안된다는 겁니다.

<앵커>

아직까지 구체적인 것은 없지만 사드 사태를 겪었던 우리 입장에서 '칩4 동맹'에 대한 우려는 상당히 큽니다. 사실상 우리나라가 미국의 제안을 거부하기는 어렵다는 관측이 지배적인데, 왜 그런가요?

<기자>

거부할 수 없는 이유는 한 마디로 '칩4'는 경제 동맹이 아닌 실질적인 안보 동맹이기 때문입니다.

미 의회 통과를 앞둔 반도체 지원법의 근거를 보면 명확합니다. 근거가 되는 법안이 바로 미국의 국방수권법(NDAA)인데요. 단어 그대로 국방과 안보에 관한 법이죠.

이 국방수권법(NDAA)이 지난해 1월 통과되면서, 반도체 연구개발과 투자에 미 연방정부 자금을 투입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생겼습니다. 그 토대 위에 반도체 지원법이 마련됐는데요. 그러니까 반도체가 안보 자산이기 때문에 연방정부 예산으로 미국 내 투자와 생산을 지원한다는 거죠.

현재 미국이 추구하는 반도체 동맹 역시 안보 차원에서 진행되고 있다는 겁니다. 경제 동맹이 아닌 안보 동맹이라고 보면, 혈맹인 한-미 간에 사실상 거절할 명분이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입니다.

<앵커>

문제는 중국입니다. 중국이 보복에 나설 경우 우리 반도체 산업이 위기를 맞을 수 있을 것이란 우려가 나옵니다. 어떻게 전망되고 있습니까?

<기자>

가장 먼저 우리나라가 '칩4'에 참여할 경우, 중국이 한국 반도체 수입 제한에 나설 것이란 관측이 나옵니다. 하지만 가능성은 현저히 떨어집니다.

현재 우리나라 전체 반도체 수출 가운데 60%가 중국으로 향합니다. 그만큼 중국에 수요가 많다는 얘기겠죠.

올해 1분기 기준으로 세계D램 시장에서 삼성과 SK하이닉스의 점유율은 69.8%에 이릅니다. 여기에 3위 마이크론까지 합치면 95.6%가 우리나라와 미국의 단 세 개 업체에서 만들어집니다.

중국이 수입제한을 했다가는 아예 D램 자체를 구할 수가 없어지는 상황에 직면할 겁니다.

위탁생산, 즉 파운드리도 마찬가지죠. 삼성전자와 대만 TSMC·UMC, 여기에 미국 글로벌 파운드리까지 4개 회사의 전 세계 점유율이 82.7%에 달합니다. 중국 SMIC의 점유율은 5.6%에 불과하죠.

반도체로 보복에 나설 경우, 중국은 첨단산업의 미래를 포기해야 하는 상황에 놓입니다. 중국 정부라 해도 쉽지 않은 선택입니다.

<앵커>

하지만 다른 산업에 대한 우회적 보복은 가능하지 않을까요? 사드 사태 때도 그랬던 것 같습니다.

<기자>

가장 우려되는 부분입니다. 반도체 전문가인 이종호 과기부 장관은 최근 "칩4는 반도체에 국한된 이야기지만, 어느 쪽을 선택했을 때 다른 산업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어 신중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우회적 보복이 충분히 예견된다는 거죠.

중국은 과거 사드 보복 당시 '한한령'이라고 불리는 우리 콘텐츠나 문화·예술에 대한 규제로 보복에 나선 바 있습니다. 공식 통계는 없지만 한 연구에 따르면 당시 피해가 연간 8조 5천억 원에 달했다는 분석이 나올 정도였습니다. 유통사업을 하던 롯데는 결국 철수했고, 베이징 현대차 판매량이 일년 만에 66%나 줄기도 했죠.

하지만 그 때와 달라진 점은 중국이 다른 산업으로 보복을 한다고 해도 그럴 수 있는 분야는 과거보다는 많이 줄었습니다. 이미 불매운동 대상이 될 소비재 역시 수출이 많이 줄어 중국이 보복할 수 있는 선택지가 줄어든 건 분명합니다.

<앵커>

중국에게도 마땅한 대책이 없는 상황이다보니 적지 않은 후폭풍이 예상됩니다. 정말 '칩4 동맹'이 어쩔 수 없는 우리의 선택이라면, 중국과의 갈등을 최소화하는 게 정답일텐데 어떻게 해야할까요?

<기자>

중국은 지난 2018년 오는 2025년까지 자체 생산 반도체 비중을 3분의 2 이상으로 키우는 것을 목표로 하는 '제조 2025'을 발표하고 본격적인 반도체 굴기에 나섰습니다.

하지만 미국의 엄청난 견제 속에 목표 달성은 상당히 어려운 상황이죠. 그 속에서 우리 반도체 산업과 기업들이 반사이익을 본 것도 사실입니다. 지금 그 청구서를 받았다고 할 수 있죠.

사실상 반도체 분야의 모든 핵심 역량을 독점한 4개국이 합친 '칩4 동맹'은 현실화될 경우, 반도체 분야에서 석유업계의 OPEC과도 같은 영향력을 같게 될 겁니다.

전체적인 맥락에서 중국이 느낄 공포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부분입니다.

때문에 '칩4 동맹'을 투트랙으로 풀어갈 필요가 있다는 조언들이 나옵니다. 국가 외교적 차원에서는 안보 동맹이라 어쩔 수 없다는 점을 강조하면서도, 기업 차원에서는 협력을 오히려 강화하는 방식이죠. 다소 어색하지만 현실적인 대안으로 보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칩4 동맹'의 형식보다 내용을 잘 만들어가야 합니다. '칩4 동맹'이 구체화되는 과정에 적극 참여하는 대신 우리가 처한 지정학적 특수성에 대해 양해를 구하고 중국과의 협력을 위한 통로를 열어두는 게 중요합니다.